새로운 음악이 태동하던 1970년대 중반 신촌엔 당시 엄인호, 이정선, 김의철 등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자유롭게 취미로 시작한 음악을 한영애는 직업처럼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 시절 때부터 천성이던 거친(?)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 당시 신촌 일대에서 이름을 떨치던 김의철에 의해 "해바라기"멤버로 발탁되어 정식적인 음악세계로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다. "해바라기"의 리더였던 김의철이 건강의 악화로 탈퇴하면서 또 한명의 거물인 이정선에게 바통을 넘긴 통기타 그룹 "해바라기"는 1집과 2집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내게 된 것이다. 이 시기와 비슷하게 한영애는 자신의 솔로 앨범을 내지만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식 발매되지 못했다. 후에 모 음반사에 의해 자신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발매 된 음반 역시 실패하게 된다. 이때가 1978년 즈음… 한영애는 이때 가수활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친구의 대학 연극 졸업작품의 뒷풀이 마당에서 우연한 기회에 연극무대 제의를 받게 된다. 한영애의 연극인으로의 활동은 극단 "자유극장"에서 시작되었다. 무려 6년 동안 가수 활동을 중단한 채 연극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그 후 3년 동안의 휴식기간을 가지며 한영애는 음악을 잊지 못해 결국 가수의 무대로 돌아 오게 된다. 1986년 "여울목", "건널 수 없는 강" 등의 노래를 담은 "한영애 솔로 1집"을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으면서 가수로 복귀한 한영애는 수많은 개인 발표회와 신촌블루스 모임에 참가하며 각종 콘서트 활동을 한다. 2집을 거쳐 3집까지 공식 앨범을 발표하고 그녀는 63빌딩에서 아.우.성이라는 개인 발표회를 갖고 이 콘서트 실황을 앨범으로 발표하였다.
한영애는 이 시점을 그 전까지 자신의 음악에 획을 근 시기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음악적 전기를 맞고 싶어했다. 올해 7월 5집을 발표하기까지 한영애는 그녀의 의지대로 심플한 음악을 시도하였다. 어느새 한영애는 중견의 소리를 들어도 될 정도의 음악활동을 해왔다. 아.우.성 앨범을 기준으로 그 전의 험난한(?) 그녀의 음악활동에서 한영애는 긴 터널을 통과해 왔다. 힘들었다면 힘들었을 그녀의 음악은 이제 쉼을 얻었다. 음악을 아는, 음악활동을 할 줄 아는 한영애의 음악은 이제 넉넉함 과 여유로움이 묻어 난다. 아.우.성 앨범을 발표한 후 개인 콘서트, 다수의 연극과 옴니버스 위주로 활동하는 그녀는 이제 한국 블루스계의 여성 보컬로서 굵은 한줄기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 ....
여보세요 거기 누구없소 어둠은 늘 그렇게 벌써 깔려있어 창문을 두드리는 달빛에 대답하듯 검어진 골목길에 그냥 한번 불러봤어 날 기억 하는 사람들은 지금모두 오늘밤도 편안히들 주무시고 계시는지 밤이 너무 긴것같은 생각에 아침을 보려 아침을 보려하네 나와 같이 누구 아침을 볼 사람 거기 없소 누군가 깨었다면 내게 대답해주
여보세요 거기 누구없소 새벽은 또 이렇게 나를 깨우치려 유혹의 저녁빛에 물든 내 모습 지워주니 그것에 감사하듯 그냥 한번 불러봤어 오늘을 기억 하는 사람들은 지금 벌써 하루를 시작하려 바삐들 움직이고 오늘밤도 편안히들 주무시고 계시는지 아침이 정말 올까하는 생각에 이제는 자려 이제는 자려하네 잠자는 나를 깨워 줄 이 거기 누구없소 누군가 아침되면 나좀 일으켜주
손을 내밀면 잡힐 것 같이 너는 곁에 있어도 언제부턴가 우리 사이에 흐르는 강물. 이젠 건널 수 없네. 내가 다가가면 너는 또 멀리 강뚝 뒤로 숨어서 아름다웠던 지난 날들을 흘려보내고 소리도 없이 웃네. 그리워해도 보이는 것은 흘러가는 강물 뿐. 건너려 해도 건널 수 없이 멀어져가서 이젠 보이지 않네
어젯 밤에는 꿈 속에서 그 사람 만났는데 좋아한다고 말을 하고 싶은데 부끄러워 못했네 오래간만에 꿈 속에서 그 사람 만났는데 너무 반가와 아무 말도 못하고 꿈이 깨어 버렸네
오늘 밤에도 다시 꿈을 꿀까 보고싶은 사람아 오늘 밤에도 다시 꿈을 꿀까 못 다한 말 많은데 오늘 밤에도 꿈 속에서 그 사람 만난다면 작은 소리로 아주 작은 소리로 좋아한다고 해야지
오늘 밤에도 다시 꿈을 꿀까 보고싶은 사람아 오늘 밤에도 다시 꿈을 꿀까 못 다한 말 많은데 오늘 밤에도 꿈 속에서 그 사람 만난다면 작은 소리로 아주 작은 소리로 좋아한다고 해야지 작은 소리로 아주 작은 소리로 사랑한다고 해야지 작은 소리로 아주 작은 소리로 좋아한다고 해야지 작은 소리로 아주 작은 소리로
내게 있어 한영애, 이소라, 이상은, 양희은 이런 가수들의 음반은 그냥 믿고 살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다. 이런 가수들은 뭐랄까, 기본치 자체가 높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예외없이 평균 이상의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 기본치란 무엇인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좋은 곡과 가사를 쓸 수 있는 능력, 또는 만들지는 못해도 좋은 곡을 선별하여 그것을 자기만의 목소리로 소화하는 능력, 뛰어난 조력자(세션맨)들을 규합시킬 수 있는 카리스마, 음.....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9위(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음반리뷰를 순차적으로 올립니다. 총50주 동안 연재할 예정이고, 32명의 필자가 참여합니다.*별점은 해당 필자의 의견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률적으로 매긴 평점입니다.)2007년을 기준으로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인 한영애는 1959년생.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거의 볼 수 없지만, 매일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DJ이기도 하다. 김정미, 김추자 등의 유형과는 사뭇 다르긴 하지만, 고음역의 미성이나 청아한 음역이 아닌 여성 가수의 존재와 가치를 확실히 각인시킨 타고난 ‘노래꾼’이다. 드라마틱한 노래 실력이 눈에 띄어 연극을 권...
2007년을 기준으로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인 한영애는 1959년생.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거의 볼 수 없지만, 매일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DJ이기도 하다. 김정미, 김추자 등의 유형과는 사뭇 다르긴 하지만, 고음역의 미성이나 청아한 음역이 아닌 여성 가수의 존재와 가치를 확실히 각인시킨 타고난 ‘노래꾼’이다. 드라마틱한 노래 실력이 눈에 띄어 연극을 권유받아 아예 전공을 하기도 했고, 혼성 포크팀 해바라기의 멤버와 음악친구 모임처럼 시작됐던 신촌블루스의 초기 멤버이기도 하다. 마스터테이프에 불을 지르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비공식 솔로 1, 2집(각기 77, 78년에 출반)을 제외한다면, 86년에 공개된 공식 1집 ‘여울목’에서 타이틀 곡과 블루스 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