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와 트로트의 만남
"BEHIND TIME" A MEMORY LEFT AT AN ALLEY
한영애가 새 앨범을 발표한다. 1985년 자신의 첫 독집을 발표한 이후 3년 혹은 4년에 한장 꼴로 새 앨범을 발표해온 그녀는 앨범 한장 한장을 낼 때마다 시대와 발맞추어 걸어왔다. 한영애 음악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포크와 블루스로부터 시작해서 3집과 4집에서는 ROCK적인 요소를, 99년에 발표한 5집 < 난.다 > 에서는 테크노를 시도하고 있다. 남들에 비해 유달리 긴 준비기간은 항상 현재진행형의 음악을 보여주고 싶은 그녀의 욕심이다. 그리고 다시 4년이 지나, 새로운 세기에 처음으로 발표하는 이번 앨범에서 한영애는 느닷없이 과거로 손짓을 하고 있다. 포크도 블루스도 아닌 트로트. 일제시대로부터 1950년대까지의 향수어린 노래를 그녀만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한영애의 노래
어느 장르의 음악과 만나건, 그녀가 노래하면 온전히 한영애의 것이 된다. 가장 흑인적인 음악인 블루스를 해도, 60년대 말의 백인 히피문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포크를 부를 때에도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항상 한영애라는 오리지널리티를 갖게 된다. 가슴속 어느 곳에 응어리진 한스러움을 토해내는 것과 같은 그녀의 목소리. 듣는 이들을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것과 같은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노래에는 그런 힘이 있다. 선사시대 어느 여사제의 주문과도 같이, 지친 영혼을 위무하는 그런 힘이다.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갖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그런 한스러운 정서를, 그녀는 노래로 불러내고 다시 노래로 위로한다. 그것이 어떤 음악과 만나건 그녀의 노래가 가장 한국적이면서, 또한 가장 세계적이 되는 이유이다
그런 한영애가 해방 전후, 그리고 6.25 직후까지의 우리 음악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니다. 그시절의 음악들. 우리의 불행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잠시라도 위로를 던져주었던 그 음악들이야말로 우리네 정서의 뿌리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영영 잊혀질 지도 모르는 그 노래들을 기억속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우리를 돌아보는 일은, 한영애가 해야한다. 라고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양 싶다.
한스러운 역사속의 노래를 통한 한판 씻김굿
앨범의 편곡과 프로듀싱은 젊은 음악창작집단 ‘복숭아’가 맡았다. 달파란, 장영규, 방준석,이병훈 등 네명의 실력있는 음악인들이 모여 가요계와 영화음악계로부터 동시에 주목을 받고 있는 이들은, 음악을 통해 오랜 선배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우리 시대에 가장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뮤지션인 이들이 반세기가 더 지난 시절의 음악과 만나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소리꾼인 한영애와 만난 결과물이 이 음반이다. 이 음반을 통해 옛것은 더 이상 지나버린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 속으로 다시 녹아든다. 과거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 시절을 불러내어 위무하는 것. 대한민국의 눈물 많은 역사에서도 가장 한스러웠던 그 시절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녀는 한판 씻김굿을 펼치려 하는지도 모른다.
신선한 해석과 편곡의 이색적인 앙상블이 매력적
윤심덕의 드라마틱한 삶으로 더욱 유명한 < 사의 찬미 >, 일제시대의 대표적인 곡 < 강남달 >로부터 시작해서, < 황성옛터 >, < 굳세어라 금순아 >, < 목포의 눈물 > 등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음악들과 함께, 이 음반을 통해 처음 2절까지 완벽하게 녹음된 < 부용산 >, 지금도 애창되는 정감 어린 동요인 < 따오기 > 등 1925년부터 1953년까지의 다채로운 노래들이 선곡에 포함되었다. 특히 복각음반을 통해 재발굴한 < 꽃을잡고 >는 원곡이 가진 아방가르드한 매력을 그대로 잘 살려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흥겨운 스카 리듬을 도입한 < 선창 >이 귀에 쉽게 들어오며, < 오동나무 >에는 버블 시스터즈, < 강남달 >에는 어어부프로젝트의 백진이 각각 FEATURING 하여 앨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과감하게 새로운 해석을 도입한 다른 곡들과는 달리 < 목포의 눈물 >과 < 타향살이 >는 원곡 그대로의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앨범의 하일라이트는 < 애수의 소야곡 >과 < 외로운 가로등 >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오래된 멜로디를 모던한 감각으로 풀어낸 <애수의 소야곡>은 원곡과는 달리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느낌을 준다. < 외로운 가로등 >은 블루지한 기타와 재즈의 느낌을 주는 클라리넷, 그리고 잘 정돈된 스트링 어레인지가 어우러져 이색적인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이 두 곡에서 한영애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 자료제공 : MUSICW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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