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농업학교를 다니다가 서울 부기학교로 전학하여 문학에 뜻을 두고 세계고전들을 탐독하면서 시도 쓰고 극작품들도 썼다고 한다.
1938년초에 《콜럼비아》레코드회사의 가사작가로 입직한 그는 극작가의 수업을 위하여 채규엽, 박향림, 미쓰꼬레아가 레코드취입으로 일본에 갈 때 같이 따라갔다. 채규엽, 박향림의 권고로 《태평》레코드회사의 실기시험에 참가하여 합격된 후 박영호 작사, 전기현 작곡인 《류랑극단》을 취입하였다.
그는 《태평》레코드회사의 기둥가수로 수많은 노래들을 취입하였는데 그 시기 대표적인 작품들은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설음》, 《두견화사랑》, 《일자일루》, 《마도로스수기》, 《꿈꾸는 항구선》, 《춘소화월》, 《남포불력사》, 《마도로스 박》, 《눈물의 수박등》 등이며 《오케》레코드회사로 전속을 옮기고 《천리정처》, 《아주까리수첩》, 《인생가두》, 《누님의 사랑》, 《고향설》 등을 취입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