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생 때 한참 피아노 배울 때라 피스라고 하는 악보집을 많이 샀었는데
그 때 이상은의 '더딘 하루'도 샀었다. 당시 내 수준에는 좀 어려운 곡이었지만
노래까지 따라 부르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앨범은 테이프로도 안 갖고 있음. 이 앨범에서는 오직 이 노래만 연습했다.
지금 생각나서 찾아보니까 보나마나 구할 수 없겠지 싶어 찾...
이상은을 설명함에 있어 성별 구분과 여성 뮤지션의 희소성을 강조하는 건 재평가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던 1990년대 후반부터 사실상 무의미했다. ‘더딘 하루’(1991)부터 ‘Asian Prescription’(1999)까지의 흐름에서 일관성 있게 증명한 양질의 결과물들은 성별 구분 없이 그 자체로 전대미문이었기 때문이다. 균일하게 뛰어난 완성도는 개별적인 해석이 용이했고 이상은을 스타일리스트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였으며 이를 근거로 했을 때 1990년대 그녀와 동일 선상으로 간주할 만한 이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상은을 여전히 ‘담다디’로 기억하는 대중과의 간극이 발생하는데, 공신력 있는 음악매체의 부재가 낳은 불편함은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 다시 말해 신보가 발표된 시기에만 ...
20년 전 제 9회 강변가요제에서 그가 선머슴 같은 외모로 껑충껑충 ‘담다디’ 춤을 출 때만 해도, 지금처럼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 가수 이상은(38·사진) 얘기다.
아이돌 스타로 그저 그렇게 묻혀져 버릴 뻔 했던 그는 강을 건너 다른 세계에 발을 디뎠다. 싱어송라이터로의 노선 변경이었다. 3집 앨범 ‘더딘 하루’(1991년)부터다.
그의 가수 경력 20년은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20년간 13장의 순도 높은 앨범을 냈다. 이제서야 그 길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상은. “그래, 이제 네가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알 것 같다”라는 대중의 인정을 받고 있기에, 그 여정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그는 말했다. 다음달 7일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있는 ...
지금 RJ죠는 에코송을 들으면서 끄적여 본다. ... 에코::Echo [명사] 1 울려 퍼져 가던 소리가 산이나 절벽 같은 데에 부딪쳐 되울려 오는 소리. ‘메아리’로 순화. 2 반사 따위의 작용으로 충분한 진폭과 명확한 지연 시간을 갖고 되돌아온 파(波). ‘반향(反響)’으로 순화. 3 레이더에서, 표적에 반사되어 되돌아온 신호. 또는 그 신호에 의하여 레이더 스코프의 스크린 위에 그려지는 궤적. 4 목소리의 울림을 좋게 하기.....
이상은....이상은.... 이상은....제가 기억하는 담다디의 주인공속의 이상은으로 써야 좋을까 그녀의 앨범에 초첨을 맞춰 음악적으로 써야 좋을까 고민하다 순수하게 제가 기억하는 쪽으로 택했습니다. RJ-YO가 기억하는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어보자면 정확히 1988년 강변가요제 였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인 전 추석때문에 춘천 외가댁에 갔었고 거기서 우리집과는 다른 미닫이문이 달린 TV에서 강변가요제를 생방송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어린 제가 봐도 그.....
13번째 앨범.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뮤지션. 언더와 오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원하는 결과물을 취하는 자유인. 그녀는 자유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대중가수에서 진정한 뮤지션으로 거듭났던 그 동안의 디스코그라피는 이제 지겹다. 더 이상 '공무도하가'라는 대작의 한계에서 이상은을 평가하는 것도 옳지 않다. 분명 그 이후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그녀는 확실히 음악적으로 발전했다. 청아한 어쿠스틱 사운드로 전체를 일궈낸 이번 앨범은 무조건 들어보.....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0위(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음반리뷰를 순차적으로 올립니다. 총50주 동안 연재할 예정이고, 32명의 필자가 참여합니다.*별점은 해당 필자의 의견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률적으로 매긴 평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든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마련이지만 막상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의 변화를, 혹은 변화의 필요성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이런 태도는 그 변화의 빌미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강압적으로 부여받은 때가 많았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 초반에 벌어진 이상은의 획기적인 변화는 적잖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종종...
세상을 살면서 누구든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마련이지만 막상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의 변화를, 혹은 변화의 필요성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이런 태도는 그 변화의 빌미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강압적으로 부여받은 때가 많았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 초반에 벌어진 이상은의 획기적인 변화는 적잖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종종 거론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상은은 스스로 변화의 길을 걷고자 했으며 마치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는 투의 자기 세상에 푹 빠져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상은은 아직도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결코 삶을 만만히 보는 자만심에서 비롯되지 않았을 ...
이상은에 대해 일관된 지지를 보내던 평단의 반응이 엇갈리기 시작했던 건 9집 [Asian Prescription](1999)였다.(물론 전작인 8집 [Lee Tzsche](1998) 역시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 앨범의 국내발매는 [Asian Prescription] 이후인 2000년에나 이루어졌고, 상대적으로 이상은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묻힌 앨범이기도 하여 이 앨범에 대한 얘기들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Asian Prescription]에 대한 주된 공격이유는 이상은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강박관념'에 있었다. 너무나 자의식이 충만하고 신비로워하고 싶어하는 이 앨범에 대해 어떤 이들은 부담스러워했고 그걸 공격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상은의 '강박관념'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사람들이 ‘리채’에 관해 떠올리는 바는 제각각이다. <담다디>나 <사랑해 사랑해>를 부르던 키 큰 여자애가 훌쩍 자라 아티스트가 된 사실에 놀라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보다 조금 더 안다는 사람은 <언젠가는>이란 명곡을 흥얼댈지 모르겠다. 주류 대중음악 이외에는 관심 밖인 이들에겐 ‘아이돌 스타였다가 예술가로 변신한’ 여가수 정도로 인식될 것이며, 코스모폴리탄이니 보헤미안이니 하는 평단의 휘황찬란한 수식어에 기겁을 하는 사람도 존재할 법 하다. 반면, 그녀에 대한(혹은 음악에 대해서만) 농밀한 애정도를 과시하는 이들도 있다. 혹자는 이상은의 음반 [공무도하가]를 두고 “한국 남자 가수들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어떤 팬은 “우리의 마음이 많은 곳을 여행하게 ...
때아닌 절판앨범들의 재발매 붐이다. 작년 유앤미블루(U & Me Blue)의 앨범이 재발매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들뜨게 하더니, 이제 절판앨범의 대명사로 인식되던 이상은의 앨범들까지 재발매되면서 CD로 발매됐던 앨범들 중에서 구하기 힘든 음반들은 얼마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얼마 전에는 부활의 1, 2집과, 삐삐밴드의 앨범들까지 패키지 상품으로 재발매가 되었다) 이상은의 앨범은 우선 3집 [더딘 하루](1991)부터 5집 [이상은](1993)까지 재발매가 이미 되었고, 6집 [공무도하가](1995)와 7집 [외롭고 웃긴 가게](1997)는 예전 레코드사와 관계정리가 끝나는 대로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입소문으로만 돌던 앨범들이 재발매가 된다면 매니아들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상대적으로 그 해...
웬 난데 없이 이상은? 그것도 최근의 앨범이 아닌 옛날 구닥다리?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랬다고... 초기 작품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그녀를 알 수 있으리라.. 이상은이라는 가수를 우리들이 알게 된지가 어느덧 10년이나 되어버렸다. 글쎄.. 요즘의 10대들이야 뭐 많은 기억이 없겠지만 88년 당시의 이상은은 지금의 HOT나 젝스키스등과 그리 다르지 않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었다. 88년 강변가요제 대상으로 음악판에 뛰어든 이상은은 당시 그 큰 키로 이미지로 박혀 버린 것이 참 아쉬울 정도였다. 강인원과의 1집과 2집 작업으로 꽤 많은 히트곡을 내고 난 후, 뉴욕으로 유학을 갔고.. 미국에서 작업한 3장의 앨범을 낸다. 그리고 이 이후 그 큰 키만큼이나 훌쩍 커버린, 많이 변해버린 앨범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