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hn Dae-Soo has long felt that "where you live is not as important as what you are." Born and raised in Korea, this young singer/composer now reflects that his music may have been the spark that ignited the contemporary music movement in his homeland. Hahn, who left Korea in the late '70's for the USA, notes the changing times and tunes in his country. "There's a growing vitality and acceptance of pop and rock music in Korea....and a lot of great musicians are ready to make this movement a reality." His own songs were, and still are, reality on the changing Korean scene. Hahn's "One Day," "Wind And I" and "Last Dream," in concert and on record, have raised the pop music consciousness of college students throughout Korea. "Open up those windows / Let's awaken the world / With your narrow eyes / To the Land of Happiness / We shall march," the lyrics of a Hahn song, has become a campus anthem for young Koreans who are building a new nation. It's an anthem that could only spring from the talents of this unique singer/composer.... made from the mix of Korean and American cultures and alive with the special harmony of today's Pacific basin beat. Hahn acknowledges this when he refers to himself as a "cultural mixed breed." And his songs still echo with a deep love of his homeland and his desire to "heal the wounds through music." His songs do exactly that with their regard for the old and their special feeling for the new. Influenced by many of American Pop/Rock musicians, Hahn Dae-Soo can see the changes that are now sweeping the Asiatic/Pacific nations. It's a new wind, a time for new music.... music that he has now brought to the USA with the hope that it will also be heard by the youth everywhere as it is in Korea.
1. 잘 가세 내 친구 내 사랑 뜻없는 미소 남기며 시간따라 가을 따라 그리움 없이 바람은 사자와 같이 울고 외치는 이 밤에 나는 또 고개 숙여 홀로 걷네 2. 추억에 피여진 거리도 머리 구석에 남기며 쥐고 싶던 옛 생각도 연기와 같이 눈물도 슬픔도 없이 단지 아픔만 남긴 채 구름 아래 저 언덕을 홀로 향하네. 3. 잘 가세! 내 친구 내 사랑! 흘린 땀도 어제였소 정든 얼굴 웃던 얼굴 꿈에 맡기며 찬 바람 살 바람 아래 옷도 벗겨진 나의 맘 내일 가고 오늘 오면 다시 찾으리!
1 밀리는 파도의 끝이 없는 소리여 회전의 꿈의 인상 보면서 여행하는 맘이여 밤이여 유혹의 이름 뒤에 버리고 벗겨진 맘의 그림자 처럼 나를 둘러 쌓여 줘 * 후렴: 인도하세 구름의 배를 타고서 끝의 끝을 따라 시간도 없이 2 아 보이네 거짓에 무너진 옛 세상이 해지기 전에 잠든 운명이 내 눈 앞을 막고 있네 * 후렴
1. Set aside all my days and I sink to your thoughts Make a mind that I'll go throught my pinning pains Realize that your love will last forever more And I know I'll live till i die
* When all my song's been sung I'll see my grass of green When all my fight's been fought I'll hear your joyous screams till that day
2. 해가 내려가면 그대의 생각 소식도 이유도 없는 추억들 고통의 가시밭 안에 눌린 밤 나는 또 홀로 외치네
1 저 넓은 정원 뒤를 잇는 장미 꽃밭 높고 긴 벽돌 담의 저택을 두르고 앞문에는 대리석과 금빛 찬란도 하지만 거대함과 위대함을 자랑하는 그 집의 이층방 한 구석엔 홀로 앉은 소녀 * 후렴: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슬픈 옥이여 2 백색의 표정없는 둥근 얼굴 위의 빛 잃은 눈동자는 햐얀 벽을 보며 십칠년의 지난 인생 추억없이 넘긴 채 명예와 재산 위해 사는 부모님 아래 아무 말도 없이 아무 반항도 없이 * 후렴 3 햇빛에 타고 있는 팔월 오후에 권태에 못이겨서 집을 떠났다 오랫동안 못본 햇님 그대 참 그립군요 울려라 종소리여 나는 자유의 몸이요 난 살고 싶소 난 세상을 볼래요 * 후렴: 4 복잡한 사회 속에 옥이는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서 사랑과 미움 속에 끓는 청년을 보았소 길가에 허덕이는 병든 고아도 보았소 배반된 남편 꿈 깨어진 나그네 * 후렴: 5 바람찬 바닷가로 옥이는 나서서 밀려오는 파도에 넋을 잃은 채 인생의 실망 속에 자신 찾을 수 없이 꽃잎도 파도 위로 수평선을 따라서 저 초원도 가고요 저 눈물도 썰물도 * 후렴:
"뉴욕은 개판이야! (New York is dog table! Hahaha!)"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는 모든 것을 멈춰야만 했다. 다행히 점차 마스크를 벗고 있는 2023년의 오늘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분야를 제외하고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시절로 완벽하게 정상화되기에는 아직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인류에게 잔인한 시간이었다. 팬데믹이 만연했던 그 시기에 노년의 음악인 한대수는 < 하늘 위로 구름 따라 >(2020)라는 새로운 작품을 발매했다. 왠지 그 자신조차도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분기탱천해 뉴욕에서 서울로 날아와 변함없는 창작열을 불 지폈다....
(한대수 선생님이 보내주신 글을 편집해 올립니다)
한대수 2022/01/15
최근에 어느 블로그에 저의 ‘행복의 나라’가 표절이라며 어느 뉴질랜드 가수가 1971년 발표한 노래와 흡사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행복의 나라는 내가 1967년에 만든 곡이고 이에 대한 증거가 많습니다....
한대수라는 가수는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존재이다. 산울림과 더불어 나의 음악 인생을 변경시킨 절대적 인물이기도 하지만, 한대수의 경우는 아예 인간 관계까지도 재정립하게 만들었다. 물론 본인은 잘 모르시겠지만.. 한때 하이텔에서 "한대수 음악 모임 - 행복의 나라"라는 것이 운영되고 있었고, 나는 그 멤버 중 나이가 제일 어리다는 이유로 초대 회장이 되었다. 그 이후 모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지금 maniadb를 같이 운영하는 matia 역시.....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또 만약 그것이 '있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창의성, 테크닉의 뛰어남, 감수성 등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모든 것들보다 우선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유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일 것 같다. 예술가란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어렵게 생각할 게 없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예술적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 밖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음악사적으로 보면, 1968년 한대수 귀국 이래 한국 대중음악신에는 근본적인 두 가지 개념이 대두됐다. 첫 번째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이다. 대중음악에서 진정성을 가진 ‘창작’의 중요성을 인식시킨 것이다. 싱어송라이터의 중요성은 단지 가수 스스로 자기 노래를 만든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뮤지션이 뮤직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진정성을 가진 양질의 작품(앨범)을 생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론’이라는 데 있다. 두 번째는 ‘모던포크’의 도입이다.
히피문화가 절정이던 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한대수는 당시의 음악적 트렌드를 직수입해 자신의 ‘창작 재료’로 활용했다. 당시 대개 뮤지션들은 음악적인 트렌드는 해외의 것을 쫓지만 그 핵심에 ‘창작적인 마인드’가 부족했다. 이에 ...
오늘 한선생님의 늦둥이 양호의 돌잔치에 matia's family와 다녀왔습니다. 양호의 탄생 소식을 접하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다녀온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돌이라니 세월 참 빠릅니다. 환갑의 나이에 첫 아이를 둔 탓인지, 평생 안 하시던 DJ 도 하시고, 또 돌잔치도 여느 돌잔치와 다르게 "콘서트"와 함께 했답니다. (사실 백일잔치도 그랬지요.) 한양호 돌잔치 안내문 뭐 좀 도울 일이 없을까 해서 30여분 일찍 왔으나, 별다른 도울 일은 없었습.....
한국 포크음악의 산 증인 가수 한대수가 라디오 DJ를 맡았다. 한대수는 오는 9월 3일부터 영어방송 채널인 아리랑 라디오(팀장:윤혜영, 지상파 DMB 아리랑 라디오, 위성 DMB 채널 43번, 제주FM 88.7MHz, 서귀포FM 88.1MHz)에서 ‘Golden Goodies’(매일 오후 4~5시 방송)의 진행을 담당한다. ‘물 좀 주소’ 와 ‘행복의 나라’ 등으로 유명한 한대수는 그동안 ‘Golden Goodies’에서 Hanh Dae Soo's.....
참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환갑을 목전에 둔 한대수 선생께서 지난 6월 1일 오전 9시 5분, 이쁜 딸을 얻으셨답니다.. :) 태명은 "양호" (한 선생님을 하는 분들은 미소가 절로 머금어질겁니다.) 미국명은 "미쉘 한"이 될거라고 하십니다. 이 소식을 접한 저와 matia family (matia, his wife, his draughter), 그리고 국내 최초의 인디음악 포털 "아름나라"를 만든 정호영씨 5명은 큼직한 과일 바구니를 들고 옥사.....
지난 일요일(9월 9일) 신촌의 모 카페에서 한대수 씨의 첫째 딸인 ‘양호’의 백일잔치가 있었다. 그의 가족들뿐 아니라 그간 음반, 공연, 사진, 책 작업을 통해서 친분을 쌓은 동료와 후배들 그리고 매체 관계자들이 참여한 ‘파티’였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몇몇 뮤지션은 즉석에서 어쿠스틱 기타 몇 대만으로 공연을 연 흥겨운 자리였다.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김도균과 김성민(선글라스)이 합주하는 ‘행복의 나라’가 들렸던 것 같고, 한대수 씨가 사람들 뒤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습을 얼핏 본 것 같다. 그는 17살 무렵인 19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며 ‘사랑과 평화’의 기치 아래 록과 포크를 폭발시킨 히피들과 어울렸고, 한편으론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안고 뮤지션의 꿈을 키웠...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8위(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음반리뷰를 순차적으로 올립니다. 총50주 동안 연재할 예정이고, 32명의 필자가 참여합니다.*별점은 해당 필자의 의견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률적으로 매긴 평점입니다.) 베트남전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기존사회의 관념과 가치관에 대항하고 전복한 히피문화는 ‘청년문화’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되며 큰 사회적 변혁을 몰고 왔다. 무명에 불과했던 신중현이 ‘펄시스터즈’를 발판으로 ‘신중현사단’이라는 철옹성의 구축을 시작한 것이 바로 1968년이다. 그해 트윈폴리오와 더불어 미국서 건너온 한 장발 청년은 한국 포크사에 이정표를 제공했다. 바로 ‘한국 ...
히피문화는 베트남전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됐다. 기존의 관념과 가치관에 대항하던 히피문화는 ‘청년문화’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되며 큰 사회적 변혁을 몰고 왔다. 무명에 불과했던 신중현이 ‘펄시스터즈’를 발판으로 ‘신중현사단’이라는 철옹성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68년이다. 그해 트윈폴리오와 더불어 미국에서 건너온 한 장발 청년은 한국 포크사에 이정표를 제공했다.
바로 ‘한국 모던 포크의 개척자’ 한대수의 등장이다. 그는 외국 히트 팝의 번안곡 부르기에 급급했던 당시 대중음악계에 결정타를 날렸다. 귀국 첫 무대는 TBC TV PD 이백천의 주선으로 출연한 ‘명랑백화점’. 당시 TV에 나온 그의 모습은 자신의 어머니조차 부끄러워 울음을 터트렸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온통 장발의 그가 ...
2007.06.01. 09:05 3.2kg 여아 출산!! 드디어 한 선생님 2세가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환갑 전 소중한 선물을 받으셨다고 흥분되는 목소리로 말씀을 하시는 한 선생님. 출산 당시,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세 번이나 졸도를 하실 정도로 긴장을 하셨다고 합니다. '양호'의 모습을 보니 2년 전 정언이를 신생아실에서 바라보는 당시의 상황들이 스쳐지나가더군요. 은주씨도 '양호'를 보면서 또다시 애기를 가지고 싶다고 하고...^^ 한선생.....
[김동률의 For You] 녹화 현장입니다. 입장할 당시에는 자리가 없어 방석까지 동원하는걸 목격했지만, 한선생님 공연때 즈음 되니깐... 듬성 듬성 빈자리들이 보이더군요. 아마 성시경 등의 앞 공연들을 보고 미리 자리를 뜬 분들이 계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번에는 기존의 밴드 형식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기타, 보컬, 코러스라는 재미있는 구성으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노래 두 곡을 마치고 김동률 님과 간단한 대담을 나눈 후 '행복의 나라'로 아쉽지만.....
촬영일시 : 2005년 10월 10일 (공연은 10.10~12일까지 3일동안) 장소 : EBS 스페이스 녹화 촬영이 없는 첫번째 날... 공연 담당자 분들께 양해를 구한 후 촬영을 진행하였습니다. 거장 시리즈 첫번째. 한대수 선생님 다양한 연령층으로 관객석은 꽉 찼습니다. 인트로 소울 시스터즈, 이우창, 한선생님 등장 호치민!! 키보드 : 이우창 드럼 : 박동식 소울 시스터즈 (신설희, 송지영) 기타 : 김도균 베이스 : 배찬우, 기타 : 김인건 소.....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자녀, 가정, 이런 단어와는 무관한 듯하던 히피 가수 한대수가 아기 아빠가 된다. 그의 아내 옥사나(36)가 벌써 임신 3개월이다. 그는 딱 60세가 되는 내년 여름쯤이면 초보 아기 아빠가 될 예정이다.
지난 9일 토요일 오전, 놀랍고 기쁜 마음에 전화를 했다. 한대수 부부는 일요일에 뉴욕으로 떠나기 위해 여행준비로 분주했다. 임신이야기를 꺼내자 예상 못한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아내 임신 때문이라면 인터뷰 못해요. 아내가 사진촬영도 싫어합니다." 솔직히 자유인 한대수라면 능히 '임신한 아내의 배를 드러내고 자랑스럽게 누드사진을 찍자'고 오버할 것으로 지레짐작했는데 이거 웬 보수적 한대수?
다짜고짜 그의 신촌 오피스텔로 갔다. "임신 소식이 알려진 후 20군데가 넘는 ...
공연 당일 새벽 5시에 멤버들이 모두 모여 광주로 출발. 휴게소를 두 번 거치며 근 여섯 시간의 장거리 여행. 생전 처음 가본 광주는 황사의 여파로 전 시내가 뿌연 모래 먼지로 뒤덮혀 있었다. 한 선생님이 처음 가지는 광주 공연이라, 적어도 공개홀은 당연히 다 차리란 생각으로 관객들을 기다렸지만... 고작 200명이 안되는, 거기에다 대부분 근처에서 배회하시다 오신듯 한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 아줌마들뿐 젊은이들은 거의 찾아볼 .....
- 건강은 좀 어떤가? 음반 자켓에도 부러진 다리의 X-레이 사진이 표지 컷으로 쓰였던데 어떻게 다치게 된 것인가?
5개월 전 한상원과 함께 용평 골프장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중 폭우가 쏟아졌는데, 나무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서 뼈가 부러졌다. 그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죽음은 영원하고 삶은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몸이 한군데만 다쳤지만, 모든 부분에서 불편함이 생기게 된다.
- 1969년 남산 드라마 센터 리싸이틀은, 사실 그때 많은 포크 싱어들이 발표회를 가지곤 했지만 당시까지의 포크 가수들의 콘서트와는 다른 획기적인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기획 의도나, 관객의 반응 또, 처음 시도라는 데에 따랐던 어려움에 대해서.
당시 국내 음악의 대세는 남진, 이미자, 문...
근래 들어, 자타가 공인하는 ‘기인’ 한대수의 재조명이 한창 바쁘게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우선 소문만 무성하던 ‘다큐멘터리 한대수’가 공개됐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외계인스런 면보다는 일상 속에서의 ‘인간 한대수’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한대수 본인의 사진 시집 ‘침묵’도 발간되었다. 아마도 한대수의 캐릭터 때문인지 시건 사진이건 범상치 않다는 평가가 일반적인 듯 하다. (시집을 못 본 분들이라면 지금 소개하는 9집의 첫 트랙을 통해 대강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집과 다큐멘터리 상영에 맞춰 미디어도 언제 외면했냐는 듯이 한대수를 앞다퉈 다루고 있는 모양이다. 8집 [Eternal Sorrow]가 제작자를 찾지 못해 어렵게 발매됐던 일을 떠올린다면, 참 세상이 약아 빠졌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