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국) - ‘음악 놀이터’ <드럭>의 조그만 창고에서 태어난 크라잉 너트는 거침없이 질주하는 ‘말달리자’로 1990년대 후반 국내에도 인디라는 이름의 주류 음악에 대한 대항마가 엄존하고 있음을 증명한 밴드이다.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들어’라는 후렴구를 뿌려대며 다섯 악동들은 신촌 일대를 휩쓸고 다녔고, 이는 클럽문화의 세(勢)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홍대 신촌의 언더그라운드로 운집했고, 그들을 수용할 라이브 클럽들이 속속 생겨났다. 메인스트림에서도 지하세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관심을 집중했고, 자의반 타의반 인디의 존재와 가능성을 인정했다. TV 가요 프로와 고비용의 뮤직 비디오가 아닐지라도 음악이 생동감 있게 스피커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크라잉너트는 그러면서 우리 음악계에 펑크라는 ‘뉴 록’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의미있는 발자취를 새겼다. 그들은 1970년대 후반 영국을 평정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클래시를 부활시키며 우리에게 없었던 펑크 록의 에너지와 파괴력을 전달했다. 그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미와 고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성 발상은 펑크의 본질, 바로 그것이었다. IMF 판파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시점에 등장한 것도 영국 펑크의 태동 배경과 맞아 들어갔다.
하지만 크라잉너트는 단순히 이 땅에 외제 펑크를 수용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펑크에서 음악적 ‘자유’를 보았다. 펑크의 약속이라 할 3코드와 미니멀리즘에 집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레게와 스카뿐 아니라 폴카와 보사노바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재즈 나 헤비메탈을 못할 게 없었다. 그들은 이런 짬뽕 사운드를 ‘조선펑크’라 명명했다. 펑크의 개량화 또한 국산화였다.
그러한 지향은 한국 젊은이들의 송가가 된 ‘말달리자’로 인해 인디 밴드로는 최초로 10만장이라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1998년 데뷔작, 그리고 주류와 인디를 수시로 넘나드는 유랑(?) 생활을 선언한 이듬해의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에 계속되었다.
이번에 내놓은 3집 <下水戀歌>에서도 크라잉너트의 조선 펑크는 건재하다. 그동안 후지 록 패스티벌 참가, 들국화 헌정 앨범 참여, CF출연 그리고 디지털 영화 <이소룡을 찾아라!>의 주연 등의 활동으로 인해 혹시 펑크 오리지널리티의 소멸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그건 잠시의 기우에 불과했다. 멤버들은 오히려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음악을 볼 수 있는 폭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며 엔터테이너로서의 행보를 즐거워했다. 하기야 인디밴드가 언더에 숨기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앨범은 전작 <서커스 매직 유랑단>보다 더 진일보했음이 나타나다. 타성에 젖는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보인다. 영화<이소룡을 찾아라!>의 메인 테마로 삽입된 동명의 곡은 극적인 곡의 전개가 긴장감을 더하는 스카펑크 트랙이며, 김헤수 이정재 차승원이 주인공을 맡아 개봉한 영화 <신라의 달밤>에서 흘러나온 ‘지독한 노래’는빠른 보컬과 격렬한 리듬 전개가 인상적이다.
몸파는 여성에 대한 노래 ‘붉은 방’은 슬픔을 머금은 아코디언 음색이 주도하는 비가(悲歌)이며,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Honey’는 박윤식이 3인조 여성 록밴드 파스텔의 베이시스트 김선희와 듀엣으로 아주 부드럽게 처리했다. 컨트리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사물놀이 한판 ‘금환식’ 등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곡들이다. 전체적으로는 요즘 분위기를 의식한 듯 복고성향이 두드러진다. 지금까지는 말달리며 ‘앞으로’나갔지만 이제는 이소룡 양귀비 금환식 불놀이와 같은 저 옛날로, ‘뒤로’ 돌아가 거기서 재미와 충격을 채집하고 있는 셈이다. 자칫 잘못하면 퇴행이 될지도 모르는 것을 그들 특유의 스타일로 온고지신을 꾸려냈다.
특히 타이틀곡으로 낙점 된 ‘밤이 깊었네’는 음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곡이다. 부드러운 소프트 록 사운드는 이제까지의 크라잉너트 음악 가운데 가장 쇼킹한 주류로의 전향이다. 이러한 밴드의 태도는 그러나 기회주의나 억지가 아니라 6년 간의 음악 관로이 빚어내는 자연스러 연착륙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 언더와 펑크에의 수절을 강제하기 보다는 도리어 갈채로 화답할 때가 아닐까.
박윤식(보컬),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 김인수(키보드)가 일궈내는 편안한 연주 화합은 친구들이기에 가능했고, 비치 보이스 정도는 아닐지라도 뛰어난 보컬 하노니를 자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그들은 치고 달리기만 하던 펑크 키드에서 생각하고 노력하는 아티스트로의 점진적인 이동을 수행한다. ‘말달리자’로 인디의 개막을 고하며 스타트를 끊었지만, 다양성과 자유가 담긴 조선 펑크를 앞세워 인디 속에 함몰되지 않고 수면위로 부상, 비상하고 있다. 이것은 국내에서 인디 밴드가 뻗어나가기 위해 취해야할 생존방식이다. 언제까지 우물안 개구리로 살 수 는 없다.
출처 : http://www.drugrecords.co.kr/
‘음악 놀이터’ <드럭>의 조그만 창고에서 태어난 크라잉넛은
거침없이 질주하는 ‘말달리자’로 1990년대 후반 국내에도 인디라는 이름의 주류 음악에 대한
대항마가 존하고 있음을 증명한 밴드이다.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라는 후렴구를 뿌려대며
다섯 악동들은 신촌 일대를 휩쓸고 다녔고, 이는 클럽문화의 세(勢)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홍대 신촌의 언더그라운드로 운집했고, 그들을 수용할 라이브 클럽들이 속속 생겨났다.
메인스트림에서도 지하세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관심을 집중했고, 자의 반 타의 반 인디의 존재와 가능성을 인정했다.
TV 가요 프로와 고비용의 뮤직 비디오가 아닐지라도 음악이 생동감 있게 스피커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크라잉넛은 그러면서 우리 음악계에 펑크라는 ‘뉴 록’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의미 있는 발자취를
새겼다. 그들은 1970년대 후반 영국을 평정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클래시를 부활시키며 우리에게 없었던 펑크 록의 에너지와 파괴력을 전달했다. 그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미와 고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성 발상은 펑크의 본질, 바로 그것이었다.
IMF 한파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시점에 등장한 것도 영국 펑크의 태동 배경과 맞아 들어갔다.
하지만 크라잉넛은 단순히 이 땅에 외제 펑크를 수용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펑크에서 음악적 ‘자유’를 보았다. 펑크의 약속이라 할 3코드와 미니멀리즘에 집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레게와 스카뿐 아니라 폴카와 보사노바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재즈 나 헤비메탈까지 수용하는등 못할 게 없었다. 그들은 이런 짬뽕 사운드를 ‘조선펑크’라 명명했다. 펑크의 개량화 또한 국산화였다.
1998년 8월 공개된 정규 앨범 1집 “CRYING NUT”은 수록곡인 한국 젊은이들의 송가가 된 "말달리자"의 빅히트로 인디 밴드로는 최초로 10만장이라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게 되었다.많은 이슈를 낳고 본격적으로 인디뮤직에 대한 조명을 받던때도 이때부터 인듯싶다. 1집이 펑크 록커로서의 자의식, 주류 음악 산업계 및 현실 문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직설적으로 발언했다면, 1999년에 공개된 2집[서커스 매직 유랑단]은 이와 비슷하면서도 한층 강화된 또다른 정서가 가로지른다.
타이틀 곡인 "서커스 매직 유랑단"은 러시아 민요풍 도입부터 의도적인 듯 싸구려 냄새를 뿌리면서, 자신들을 '서커스 유랑단의 떠돌이 신사'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가사로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앨범은 전작에 이어 10만장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2001년에 발표된 3집 [하수연가(下水戀歌)]는 탄탄한 팀웍으로 다져진 연주력은 물론이고 밴드 음악이 주는 통일되고 개성적인 면면을 한 곡마다 다양하게 표출했다.특히 타이틀곡으로 낙점 된 "밤이 깊었네"는 부드러운 소프트 록 사운드를 선보이는 파격을 선보였다.
2002년 여름에는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필살 OFF사이드"를 발표하여 윤도현 밴드등과 함께 월드컵 열기를 한층 돋운바 있으며, 연말에는 4명 모두 군입대에 지원하여 입대하기 전 마지막 앨범인 4집 [고물 라디오]를 발표했다. 음반은 긴 시간 동안 활동해온 이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는 타이틀 곡 "고물 라디오"외 다양한 트랙을 배치시켜 여전히 록매니아들을 열광시켰다.
이 앨범을 끝으로 당당히 군에 입대하여 군악대에 열심히 복무하고 있는 이들을 그리워하는 록 마니아들을 위해 2003년 6월 하나의 선물이 도착하는 데, 바로 2장짜리 실황 음반 [Best Wild Wild Live]이다. 인디와 언더의 동의어라 할 '공연'을 생생히 담았다는 점에서 더 없이 값진 이 앨범은 무려 24곡이 수록되어 그룹의 진면목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2005년 제대후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2006년 오케이 목장의 젖소라는 타이틀의 앨범으로 돌아와 명동콜링 이란 타이틀 곡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그 해 겨울 크라잉넛 캐롤송 음반을 발매 하기도하였다.
2007년 ‘안녕고래’ ‘좋지 아니한가ost등으로 활동무대를 좀더 폭있게 넓혀갔으며 2008년 현재도 그들의 끝없는 울부짖음이 무한질주 하고 있는 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