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최창수(崔昌洙), 후에 강문수(姜文秀)로 이름을 고쳤다가 레코드취입가수로 등장하면서 남인수(南仁樹)로 이름을 고쳤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배우 최삼숙(崔三淑)의 아버지인 최창도(崔昌道)와 형제간임.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강씨네집에 재가하면서 강문수로 이름을 고쳐 본명이 강문수로 기입되기도 한다.
가정생활이 곤란하여 일본에 건너간 남인수는 1930년대중엽에 가수를 지망하여 서울로 건너와 《시에론》의 문예부장이였던 박영호의 추천으로 《눈물의 해협》, 《비 젖은 부두》를 취입하였다.
그후 《오케》레코드회사로 전속을 옮기고 수많은 노래를 불렀는데 그의 대표곡에 속하는 《애수의 소야곡》은 《눈물의 해협》의 가사를 고쳐서 취입한 작품이다.
《오케》레코드회사의 기둥가수였던 남인수는 《물방아사랑》, 《낙화유수》, 《서귀포 칠십리》, 《울며 헤진 부산항》, 《꼬집힌 풋사랑》, 《애수의 제물포》, 《천리타향》, 《유랑선》, 《청노새탄식》, 《인생간주곡》, 《방랑극단》, 《꿈인가 추억인가》, 《감격시대》, 《안개낀 상해》, 《무정천리》, 《집 없는 천사》, 《포구의 인사》, 《일자상서》, 《인생선》 등 수많은 노래들을 불렀다.
※ 남인수가 부른 대부분의 노래들은 조영출 작사이며 박시춘 작곡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