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는 오태호와 홍성민이 몸담았던 그룹으로, 단 한장의 앨범만 발표한 것 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해체된 팀이다. 홍성민이라는 이름은 '기억날 그날이 와도' 를 노래했던 사람이라면 금방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고, 오태호라는 이름을 얘기하면, 잘나가는 가수 이승환을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승환과 함께 '이오공감' 이라는 타이틀로 앨범 발표도 한 바 있으며 이승환에게 많은 곡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때때로 이승환의 라이브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 오태호. 그가 어느정도 유능한 음악인인가를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음악들이 이승환이라는 90 년대 인기 정상(?)의 가수를 탄생시켰고, 한 때는 실력있는 작곡가로 인정받기도 했다는 사실에서, 그가 몸담았던 '공중전화' 의 음반에 관심이 가질 않을 수 없다. 그룹 '공중전화' 의 단 한장의 독집은 그런 의미로서 쓸만한 음반이라 생각된다.
'공중전화'의 독집에 대한 당시 음반 회사의 홍보책자의 기사를 뒤적거려보면 '소프트락 의 새장을 연다' 는 제목으로 쓰여진 글을 읽게 된다. '소프트락' 이라고 정의한다면 좀 애매모호한 장르로 생각되는데 단지 하드락에 상반된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멜로딕 락이라고 말할수도 있는 어덜트컨템포러리 스타일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했던 외국 가수들을 떠올려보면 제네시스 출신의 필콜린즈나 에어 서플라이 등이 쉽게 생각난다. 어쨋든 그건 중요하지 않고.
국내 가요에서 소프트락을 지양했던 그룹들을 얘기하라면 단번에 떠오르는 그룹이 있다. 권인하가 리드했던 '우리' 라는 그룹. 역시 86 년쯤에 단 한장의 앨범만 발표하고 해산했지만, 꽤 쓸만한 그룹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외, '동물원' ( 물론 락 그룹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 이나, 홍성석이 몸담았던 '우리세상', 홍성석과 부활의 김태원이 만들었던 'Game' 등이 있다. 물론 '소프트락' 적인 요소는 이승환이나 신승훈 등의 많은 가요 음악에 자취가 남아있다.
공중전화의 맴버를 좀 더 살펴보자. 이미 소개한 오태호는 68 년 생으로 '공중전화' 활동 당시 20 살의 어린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에서의 기타 연주는 수준급. 홍보지에 소개된 것을 보면 퓨전 재즈와 리리트너 ( 리 릿나우가 오리지널 영어 발음이라고 하더만 ), 잉위 맘스틴을 좋아한다나, 게다가 신촌 블루스에서도 잠시 있었다고 한다. 그 외 맴버들은 당시 모두 26 살. 홍성민은 언더그라운드 그룹 '광복군' 출신이고 ( 그런 그룹도 있었던가 ), 드러머 김완영은 그룹 '진' 의 출신으로 강변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았다고 한다. ( 혹시나 해서 집에 있는 강변가요제 판을 뒤져보니 제 4 회 강변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았음. 당시 대상은 대단한 미모였던 손현희의 '이름없는 새'. )
- 문동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