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먼 바다는 아직 일렁이고 있겠지. . .” 정태춘 박은옥, 저 10년의 독백 정태춘 박은옥 제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는 정태춘 박은옥의 정규 앨범 제 11집이다. 이 앨범은 지난 2002년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이후 10년 만의 신보이다.
그 사이에 이들은 거의 칩거에 가깝게 드러나지 않게 활동해 왔으며, 정태춘은 사실상 절필하고 언론과의 접촉도 끊었다.
특별히, 2009년에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기념 콘서트>와 중견 미술인들이 마련한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기념 헌정 전시회>가 있었고 이 때,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정태춘은 2010년 하반기에 다시 집중적으로 새 노래들을 썼고, 2011년 여름과 가을에 녹음 작업을 끝냈다. 그는 앨범 가사집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30여 년을 함께 해 준 아내 박은옥을 위해 다시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새 앨범을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 준 감사한 벗들을 생각하며 녹음 작업을 했다.” 이 앨범은, 이들이 다시 적극적인 발언과 활동을 도모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던지는 새로운 화두의 <노래 모음>이라기보다 이들 부부가 거의 사적으로 주고 받는 다소 우울하지만 담담한 대화로서의 시집의 분위기를 띈다.
가사들은 주로“물”과 관련하고 있다. 인적없는 “바다”, “강”의 풍경이 거의 수록곡 전편에 등장하며, 시적인 서사법이나 운율들은 저 칩거 기간 초기에 발표한 시집 <노독일처(2004년 실천문학>>의 연장선에 있어 보인다. 단지, 그 분노와 직설을 버리고 다시 관조와 서정, 새로운 그리움의 어법으로. 가사로서만 보자면 정태춘은 지금 여기 우리들의 현실 안이 있지 않고 벌써 어느 먼 <물 가>로 떠나 있다. “여기 다시 돌아오시지는 마세요...”(수록곡 <꿈꾸는 여행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저녁 숲 속...에서... 나의 하얀 고래...”를 만나고자(<저녁 숲 고래여>) 하며, “아무도 손짓하지 않는 등대 아래... 하얀 돛배 닻을 올리고 있을까”(<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꿈꾼다.
가사 안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앨범에는 5명의, 이들 부부의 지인들이 등장한다. 시인 박남준과 이원규와 백무산 그리고, 소설가 박민규와 사진가 김홍희. 이들은 지난 10년 사이에 그와 더욱 가까워진 사람들이고 그에게 새로운 노래들의 주인공이 되어주거나 새 노래들을 만들라고 그의 창작 충동을 흔들어 주었던 사람들이다.
수록곡들의 멜로디 라인은 기존의 서정성에서 조금 더 차가워지고 더 가라앉았다. 편곡은 정태춘이 직접 로직 프로그램을 통해 더 청량하고 여백 많은 소리들을 찾아 구성하고 변주했으며 그 중심에는 여전히 어쿠스틱 기타 핑거링이 자리함으로서 그 자신 또는, 한국 포크 가요의 전통적인 맥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린다. 연주는 [정박]의 오랜 밴드 연주자들이 주로 맡았고 특별한 일부 음원은 시퀀싱 프로그램의 것들이 동원되었다.
박은옥은 3곡의 신곡으로 다시 그만의 특별한 색조인 투명한 페이소스로서 얼마간은 몽환적인 풍경과 정황 들을 애잔하게 그려내면서 이 앨범 전체에 깔린 <그리움>의 토대를 만들고 있으며 정태춘은 오히려 그 안에서 5곡의 새 노래들 속에 각기 다른 풍경과 정황들을 제시한다. 더 무겁게 절망하거나 떠나가나 뒤돌아보거나. 노래 가사는 문학이 아니라지만 새 노래 가사들은 더 문학에 가까워졌고, 음악은 시가 아니라지만 새 앨범은 시집에 더 가까이까지 왔다.
정태춘은 이번 앨범에서 작사 작곡과 편곡 (박은옥의 노래 2곡은 [정박]의 오랜 밴드 동료 박만희가 편곡) 외에도 처음으로 얼후(<눈 먼 사내의 화원>)와 일렉 기타(<서울역 이씨>)의 연주, 앨범 쟈켓과 가사지 안의 8장의 사진도 선보인다.
<날자, 오리배...>에서는 가까운 동료들인 강산에, 김C, 윤도현이 독특한 코러스로 함께 참여하였다.
또, 이 앨범에는 지난 1993년에 발표했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더 차분해진 편곡으로 부부가 다시 불러 <헌정 트랙>으로 올려 놓았다.
[정박]과 그들의 소속사 <다음기획>은 이 앨범 발매와 함께 그 기념 콘서트 준비하고 있다.
서울역 신관 유리 건물 아래 바람 메마른데 그 계단 아래 차가운 돌 벤치 위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 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이름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예약도 티켓도 한 장 없이 떠날 수 있구나 마지막 객차 빈자리에 깊이 파묻혀 어느 봄날 누군가의 빗자루에 쓸려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모던한 투명 빌딩 현관 앞의 바람 살을 에이는데 지하철 어둔 돌계단 구석에서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 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바코드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햇살 빛나는 철로 미끄러져 빠져나간다 통곡같은 기적소리도 없이 다만 조용히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에 눈처럼 그 눈물 처럼 사라져 주듯이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탐골 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의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도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워... 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 쯤에선 뭐든 다 보일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훨... 훨... 빨간 신호등에 멈춰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훨... 훨... 훨... 훨...
1992.06
RELEASES
2012-01-26
삶의 문화, Universal (DK0683, 00008809201009)
2012-01-26
삶의 문화, Universal
CREDITS
Performed by 정태춘 & 박은옥 1기 (1984) - 정태춘 : 보컬, 기타, 하모니카 - 박은옥 : 보컬, 기타
요즘 유행하는 노래에 길들기를 무의식적으로 동의한 대부분의 어린 세대들에게 이 음반은 정말 재미없고 따분한 작품일 수밖에 없다. 혹여나 '이 주의 앨범' 코너에 소개됐다는 이유만으로 호기심에 들어 본다고 한들, 인내심은 마지막 곡까지 동행해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는 10대, 20대 초반 음악팬들이 소비하는 노래들과는 또 다른 멋이 존재한다. 그래서 도드라져 보인다.수록곡들은 각각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삶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