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라운지'의 퍼스트 레이디, 레드레인이 들려주는 색다른 라운지 음악. 김형석의 '오늘까지'에서 오는 나른함에서 부터 윤일상의 'Fun Fun Fun'과 'Nah Neh Nah'로 대변되는 '파티 라운지 필'까지 만만치 않은 보컬의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그녀의 데뷔앨범 'Chocolate'
우리의 대중음악 역사는 솔직히 서구의 유행음악을 수용하고 이땅의 숨결과 호흡을 맞추는 작업이었다. 지금 파리, 뉴욕, 그리고 스페인 이비자(Ibiza)의 클럽들을 파고든 새로운 경향은 말할 것도 없이 잔잔하고, 소파처럼 푸근하며 그러면서도 사치스러움을 퍼트리는 라운지라는 음악이다. 90년대까지 음악지향을 지탱한 이념과 집합의식이 소멸하면서 개인주의와 명품에 대한 일각의 선로기류가 만들어낸 것일까? 지금의 음악 매니아들은 라운지 뮤직을 통해 그나마 클래시감수성을 충족하고 신선한 음악의 피를 수혈받고 있다. 이비자와 동격이 된, 휴식이라는 의미의 '칠 아웃'이 말해주듯 록 콘서트의 함성, 댄스파티의 열기가 끝난 후의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이라고 할 이 라운지를, 그렇다고 마냥 외제 수입품만으로 안위할수는 없다.
레드 레인이라는 이름의 이 신인 여가수의 앨범은 바로 그 서구 라운지의 한국화, 서울화를 위한 의미있는 도전이다. 하긴 라운지가 이지리스닝에 월드뮤직의 요소가 테크노적으로 결합한 것이므로 월드뮤직의 하나라고 할 우리가요가 본체가 되어 라운지 요소를 투영시켜 토착화로 나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필요한 수순이다.
이 앨범에서 두드러진 부분은 가수의 보컬에 중점을 둬, 통상적인 가요의 형체를 유지하면서 라운지의 감각을 구현한 점이다. 물론 프로듀서들이 음악의 중심에 서있지만 대중적 주목을 재단하는 열쇠는 다름 아닌 가수 레드 레인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앨범의 목표인 '서울 라운지'가 대중적으로 확립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무엇보다 레드레인에게 달려있다는 말이다. 국내 유명작사, 작곡가의 곡을 DJ 신철,과 신재홍이 국내에서 1차로 프로듀스하고 나서 라운지의 본고장인 유럽의 이름난 프로듀서들 (데이비드 비산과 카를로스 캠포스, 미카엘 델타, 르 비트, 미스터 미닛, 필리피 로체, DJ 시켄서, 프랭키 등)과 합작하는 형식을 취했다. 전형적인 가요와 팝을 재료로 하면서, 서구라운지의 정통스타일을 접목하고 태어난 혼혈인 셈이다. 노래는 라운지의 생경함을 주는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몇몇 곡의 경우는 리메이크라는 안전운행을 선택했다. 신중현의 '미련', 김현식의 '기다리겠소', 이기찬의 '널 잊을 수 없게', 바야 콘 디오스의 'Nah Neh Nah', 로라 피지의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 국내영화 정사에서 아스트러드 질베르토의 노래와 연주로 주된 모티브를 이끌어갔던 'Manha De Carnival', 영화 흑인 오르페우스의 테마릴 리메이크한 'If'등이다. 이 외에 김현철의 '사랑해줘', 신재홍의 '만월', 정연준의 '몽유'와 '파도를 훔친 바다', 윤일상의 'Fun Fun Fun', 김형석의 '오늘까지', 심상원의 '먼거리' 등 작곡자의 쟁쟁한 리스트만으로도 앨범의 강렬한 의욕을 읽을 수 있다.
대중적 청각의 수준으로 본다면 라운지라는 정체성을 알든 모르든 무난하게 접할 수 있도록 꾸몄다고 평가된다. 사운드는 유럽 정통파들의 터치의 진가가 나타난 대목으로 유심히 청취하지 않더라도 세련되고 다채로운 '소리샘'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바야 콘 디오스의 유명한 노래인 'Nah Neh Nah'의 경우 빠르기를 감소시키면서, 인도악기를 도입한 뒤감칠맛나는 라운지 댄스로 새롭게 해석해 냈다. 돋보이는 곡은 김현식의 오리지널곡인 '기다리겠소'로 라운지의 풍성한 질감에 편안함으로 채색된 리듬의 볼륨에다, 특히 레드레인의 호방한 보컬이 주도하면서 완연한 라운지 대중가요를 창출하는데 성공했다. 레드 레인은 음의 완벽한 장악력은 아니지만 음색과 확트인 가창은 라운지의 열린 성격과 잘 부합되고 있다. 코러스가 돋보이는 정연준의 '몽유'와 유유자적 분위기의 '파도를 훔친바다'는 그것보다는 빨리 귀를 잠식하지는 않지만, 역시 라운지와 가요의 성공적인 퓨전이다. 레드 레인은 김형석의 '오늘까지'와 김현철의 '사랑해줘'의 나른함에서 부터 윤일상의 'Fun Fun Fun'과 'Nah Neh Nah'로 대변되는 '파티 라운지 필'까지 만만치 않은 보컬의 스펙트럼을 펼쳐내고 있다. 새롭고 고급스러운 소리, 분위기 질감이다. 이 정도면 호텔라운지는 물론 라디오 전파로도 무난하다. 서구에서만 통용될 것 같았던 뉴 트렌드 라운지가 부담없는 가요로 탄생해 우리 귀를 간질인다. 마침내 서울라운지가 스타트를 끊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