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예상했을까.
찬(CHAHN)에 대한 글을 쓰며10년 전을 떠올렸다. 찬과는 환경공학과 동기로 만났다.
당시 우리에겐 몇 가지 교집합이 있었다.
같은 나이, 학생회, 그리고 밴드 음악.
당시 내MP3에 있던 쿡스의 노래를 함께 들었던가, 오아시스의 노래를 따라 불렀던가.
기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며 보여준 손가락의 굳은살도 떠오른다.
사실 나는 찬의 스무 살 언저리밖에 모른다. 우리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무언가를 오래 그린 사람은 서로를 찾게 되는 걸까.
스스로 의심하고 불안을 견뎌온 사람들은 어느 교차점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걸까.
환경공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나와 음악을 하는 찬이 다시 만난 것처럼 말이다.
찬은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찬이 쓴 가사는 현실에 기초한 동화처럼 읽힌다.
슬프지만 아름답다. 여기에서 찬의 음악적 장르를 설명하는 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찬은 자신의 이야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를 뿐이다.
지금 찬의 음악에서 스무 살 언저리의 찬을 끌어올렸으나,
앞으로 자신의 감정을 어떤 이야기로 치환하느냐에 따라 장르는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찬은 누구나 노력해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말한다.
일주일 내내 일을 하며 포장 박스에 가사를 쓰던 찬은,
밤새 컴퓨터와 씨름하던, 새벽까지 마이크를 붙잡던 찬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에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
찬은 이제 막 세상에 음악을 내놓았고, 이야기는 이제부터 쌓여갈 것이다.
조금씩 다르게, 아주 오랫동안.
글 김혜원 피처에디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