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렉트로닉 음악의 새로운 미래
90년대 말은 국내 일렉트로닉에게 의미 깊은 시기였다. 클럽과 프로모터, 레이블, DJ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다양한 음악이 소개되었으며, PC 통신을 중심으로 교류도 활발했다. 또한 본격적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을 생산하는 프로듀서들도 등장했다.
Re:Born 프로젝트에서 “1세대 음악가”로 분류되며 원곡을 제공한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그리고 12년 여가 지난 지금, 당시와의 교차점들이 눈에 띈다. 페스티벌의 개화와 굵직한
무브먼트들, VST와 모바일 장비로 인해 효율이 높아진 프로듀싱과 라이브,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기반으로 한 교류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이 프로젝트에 리메이크 곡을 제공
한 아티스트들을 비롯해, 프로듀서 혹은 DJ 겸 프로듀서들이 약진하고 있다. 이 앨범은 같은 출발점, 다른 조건에 선 두 시대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도이다.
잘 꾸려진 리메이크 앨범이 그렇듯, Re:Born에는 재해석을 읽는 재미와 독립된 곡으로서의 완성도를 함께 잡은 곡들이 빼곡하다. 달파란의 “Winds Of Whistle Hill”은 특유의
서늘하게 꿈틀거리는 원곡을 사일런트(Silent)가 날카로운 애시드 사운드로 스트레이트하게 풀어냈고, 다층적인 노이즈 사운드로 독특한 질감을 낸 데이트리퍼(Daytripper)의
“Homibhat”는 지맨(Zeeman)에 의해 묵직하고 딥한 댄스 튠으로 변신했다. 초기 캐스커(Casker)의 동양적인 신비가 감도는 “Topaz”가 시온즈(Sionz)에 의해 보다 확실한
굴곡의 클럽 앤썸이 된 것도 그 예이다.
원곡들의 발표 후 오랜 세월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금 만들어진다면 전혀 다른 모습을 기대해볼 법하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곡들도 있다. 서로 다른 속도감의 레이어들이 겹쳐
지는 아스라한 감성의 곡, 모하비(Mojave)의 “Youth”는 트렌디한 사운드를 탄탄하게 쌓으며 속도감의 차이를 주무르는 맥시멀 레이시오(Maximal Ratio)의 곡으로 재탄생했다.
짜릿한 질주감으로 히어로물을 연상케 하는 전자맨(Junjaman)의 “출동! (Come OnAnd Help Me)”는 소년(Sonyeon)에 의해 한층 더 독기 어린 다크 히어로물이 되었고,
퓨쳐아이트로니카(Futureyetronica)의 미래적이면서도 어딘지 상냥한 “MoonWorker”는 히든 플라스틱(Hidden Plastic)의 손끝에서 화사한 사운드로 출렁인다.
한편, 같은 아티스트의 여러 곡이 어떻게 다르게 재해석됐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를 안겨준다. 독특한 질감의 브레이크비트와 청명한 사운드의 세인트바이너리
(Saintbinary)는, 데미캣(Demicat)과 바가지=바이펙스13(Bagagee=Viphex13)이 두 곡을 재해석했다. 데미캣의 "Cry"는 세인트바이너리가 2000년대 ‘감성 일렉트로닉’의 한
모델을 제시한 맥락을 느껴볼 수 있는 곡이며, 바가지=바이펙스13의 "Shadows"는 어둡고 축축한 공간감 위로 단단하게 흐르는 비트가 매혹적이다. 당대에도 파격적이고 다채로
운 행보를 보였던 가재발(Gazaebal)의 곡들은, 유머러스함을 살리면서도 아슬아슬한 선까지 질주하는 킹맥(Kingmck)의 “Compuless”와, 묵직하면서도 아련하게 날아오르는
제이패스(J-Path)의 “Wings”가 좋은 대조를 보인다. 반면 위협적인 사운드와 미니멀한어프로치로 듣는 이를 압도하던 트랜지스터헤드(Transistorhead)의 두 곡은 자넥스
(Xanexx)와 수리(Soolee)가 각각 “Bull”과 “A-3”를 맡았는데, 다른 스타일의 아티스트가 다른 결과물을 내놓았음에도 사뭇 닮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상적인 질감의 사운
드를 기반으로 선이 굵고 매우 공격적인 곡을 만들어냈다는 부분인데, 다른 어떤 수록곡들보다 원곡의 의도를 수직으로 이어받았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로컬 씬에 만족하는가. 답은 다를 수 있다. 애정과 바람이 있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숙명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
가의 발걸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 앨범이 단순한 과거 우려먹기나 신구세대 힘겨루기가 아닌 이유가 그곳에 있다. 우리에게 존재했던 과거를 분명하게
짚고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살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Re:Born은 또한 과거의 맥락에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 클럽 씬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며 점쳐보게 하는 앨범이다.
- 미묘 (음악가, krrr.kr 운영자)
* 서울 일렉트로닉 시티SEOUL ELECTRONIC CITY 믹스클라우드(http://www.mixcloud.com/
MapoElectricCity/)에서 본 음반과 관련된 방송을, 영기획YOUNG,GIFTED&WACK 사이트 (http://younggiftedwack.com)에서 1세대 음악가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