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밴드의 데뷔앨범 '
??;5(주색만찬)'은 한마디로 한국적이다. 백두산, 아시아나, 강산에, 윤도현밴드, 그리고 최근 블랙홀의 새 앨범에 이르기까지 서양 음악인 락(Rock)에 우리의 소리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앨범 첫 트랙에서 마지막 트랙까지 우리 가락이 주를 이르며 자연스럽게 스며든 음반은 고구려밴드가 최초의 시도라고 평할 수 있다.
강원도 정선 토박이로 어려서부터 정선아리랑을 듣고 자라온 보컬 이길영은 '소외된 자들의 마당쇠'라 스스로를 칭하며 서구 보컬들의 샤우팅 창법보다는 판소리나 국악에서 영향 받은 깊은 소리를 토해낸다. 고구려 밴드 사운드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 이 창법은 락음악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나, 락음악에 처음 입문하려는 초심자들도 거부감없이 그들의 음악에 다가설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블랙신드롬의 기타리스트인 김재만의 프로듀싱 및 엔지니어링에 의해 완성된 이번 앨범은 전통 국악에 하드락과 락발라드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몇몇 곡에서는 프로그레시브락을 연상시키는 진보적인 작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날로그적인 따뜻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 레코딩하려고 노력했으며, 서양악기인 일렉기타 사운드와 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인 해금의 조화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오랫동안 국악을 연구한 양안복의 기타는 멜로디컬하면서도 국악기의 느낌을 표현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묻어나는 플레이를 선보이고, 블루스와 재즈, 뉴에이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심명보의 키보드는 고구려밴드 음악에 진보적인 요소를 더해준다. 프로포즈, 가나안 등 대표적인 국내 밴드를 거친 전성진의 힘과 기를 겸비한 드러밍과 안치환, 서영은, 풍경 등 다양한 세션경력을 자랑하는 서민석의 역동적인 베이스라인은 고구려밴드 사운드에 무게를 더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충분하다.
우리나라 전통 굿의 일부인 '비나리'를 개사하여 만든 첫 곡 <비나리>는 고구려가 세상의 제일이라는 의미의 주술적인 가사와 사운드가 어우러진다. 앨범 최고의 트랙 중 하나인 <주색만찬>은 봉산탈춤의 대사를 인용하여 인생의 덧없음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곡으로 빅토르최를 연상시키는 이길영의 독특한 창법과 드라마틱한 사운드가 절묘한 구성의 묘를 이루고 있다.
흥겨운 펑키락과 곡 중 삽입된 농악 사설이 눈길을 끄는 <체인지 더 코리아>는 부조리한 현대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애절한 사모가 <에미>는 구슬픈 멜로디에 애타는 듯한 보컬이 어울어져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한다. 국악의 자진모리 장단을 응용한 <때밀어다오>는 통렬한 사운드와 함께 외치는 '분노들이여 때밀어다오'라는 다소 직설적인 가사로 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멀리 있는 님을 그리워하다 꿈속에서 만나게 된다는 <몽중연가>는 몽환적인 사운드와 후반부의 코러스라인이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극대화시킨다.
현대인들의 부조리를 비판한 <투우>는 고구려밴드식 헤비사운드의 정수이며, <주색만찬>과 더불어 앨범을 대표하는 트랙인 <아라리>는 '정선아리랑'을 그 모티브로하여 아낙네들의 애환을 노래한 곡으로 '2004년 대한민국 창작 국악 가요제' 금상 수상곡이기도 하다. 반 헤일런 스타일의 멜로디컬한 하드락 <태워버려>는 직선적인 사운드가 일품이며 양안복의 기타테크닉과 전성진의 파워드러밍이 두드러진다. 서정적인 락발라드 <희생>은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슬픔을 호소력 있는 보컬로 노래하여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곡이다.
이처럼 완성도 높은 고구려밴드의 데뷔 앨범은 인스턴트 식품처럼 획일화되고 가벼워진 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앨범으로서, 새로운 음악의 등장을 갈구하던 대중은 물론, 자신들의 아우라를 상실한 채 트랜드와 상업주의에 물든 다른 뮤지션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우리 고유의 소리를 서양의 락 사운드에 신명 나게 버무려 낸 이들의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성시권 / 음악 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