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로튼애플의 아름다운 귀환
■ Rotten Apple Story
그들의 내공
로튼 애플은 90년대 중반 결성되었다. 탄탄한 연주력과 밀도 있는 그런지 풍 록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기대주로 떠올랐으나 어찌된 일인지 기대주 이상의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비슷한 시기, 함께 기대주로 촉망받던 ‘언니네 이발관’이나 ‘델리스파이스’가 거대 밴드가 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2000년 발표한 데뷔 앨범 『Rotten to The Core』는 주목할만한 앨범이었다. 그런지를 표방하는 팀들은 많았지만 이 앨범
처럼 옴팡진 사운드를 들려주는 팀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 앨범의 수록곡 중 「Ultima Under World」와 「Y」는 국제적
인 음악 사이트 MP3.com 싱글 차트에서 3위와 5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만약 당시 한국의 뮤직 비즈니스가 국제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면 지금 소개하는 로튼 애플의 신보는 CBS/Sony나 Time Wanner의 카달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들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다른 밴드들에게 로튼 애플은 함께 공연하기 꺼려지는 팀으로 낙인이 찍혔었단다. 아무리 조악한 시스템이더라도 강력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로튼 애플의 앞과 뒤에 연주하는 팀들은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었고, 밴드는 보이지 않는 질투의 시선을 느껴야만 했었단다. 연주력이나 사운드의 질에 있어서 로튼 애플은 당대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놈의 군대가 문제다. 한참 상한가를 달리던 로튼 애플의 리더 김상민은 Rock 음
악의 R자도 모르는 국방부로부터 입대영장을 받게 된다. 어지러운 감정이 반영된 것일까? 분노에 가득찬 싱글형식으로 발표
한 두 번째 앨범 『Quad Factory』는 로튼 애플의 앨범 중 가장 강력한 사운드를 내뿜은 앨범이었다. 「IMF」, 「BOT」에
서 들려준 김상민의 목소리는 마치 허기진 들개처럼 난폭하고 거칠었다.
그로부터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06년 가을 로튼 애플은 세 번째 작품 『It’s OK』를 발표하면서 다시 강호로 나섰다. 엄청난 내공에 고수들의 칼끝이 파르르 떨림을 느낀다. 하지만 정작 분노로 가득찼던 로튼 애플 본인들은 편안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음악으로 바뀌었길래 그런걸까? 도대체 뭐가 다 좋다라는 것일까?
■ Rotten Apple EP 『It’s OK』
시원한 질주의 쾌감
로튼 애플의 새로운 EP 『Lo-Fi, It’s OK』를 처음 듣는 이의 감상은 우선 시원하다는 것이다. 깔끔한 디스토션 기타와 폭발하는 합주가 듣는 이의 잡념을 멀리 날려버리고야 만다. 록음악 최대 미덕인 시원한 질주의 쾌감을 이 앨범은 한껏 머금고 있다. 쾌감의 8할은 안정된 연주력에서 나온다. 록음악에 익숙치 않은 청자라도 악기들 사이의 응집력을 느낄만한 탄탄함이 이들의 최대 강점이다.
로튼 애플 음악은 분명 그런지의 탁한 흙냄새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짧은 인트로인 「Hunting Dog」에서 들려주는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는 90년대 초반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던 그런지의 원형 그대로다. 지난 두 장의 앨범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런지 형식에 있어서 로튼 애플은 가히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It’s OK」라는 타이틀곡으로 옮겨가면서 들려주는 질주감은 로튼 애플만의 고유한 사운드다. 아니, 한국적 그런지의 원형으로 추대 받아도 모자라지 않다. 너바나(Nirvana)와 펄 잼(Pearl Jam)이 조금은 심약한 외국청년들이었다면 로튼 애플은 강인한 정신과 활달한 유머를 가진 한국청년들이란 말이다.
나도 저 밴드에서 연주하고 싶다
이런 로튼 애플만의 양식미는 코러스로 넘어가기 직전의 짧은 협주 (「It’s OK」)나 느슨한 인트로를 박차고 등장하는 트윈 기타의 유니즌 플레이(「This is Who I am」)에서 뼛속 깊이 각인된다. 이런 스타일리쉬한 록음악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 천번 이상 스윙 연습을 통해 자기 스윙을 만드는 타이거 우즈나 이승엽처럼 지겹도록 몸으로 연주한 사운드가 표출되는 것이다.
때문에 로튼 애플의 공연을 보면 맛깔나는 연주에 입맛을 다시게 된다.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그들만의 그루브를 느끼게 하고, 멈추고 달리는 잘 짜여진 음악의 구성은 끝끝내 젊은 심장에 불을 지르고야 마는데, 결국 감탄의 목소리와 함께 나도 저 밴드에서 저런 연주를 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치밀게 한단 말이다.
김상민의 변신
김상민은 로튼 애플의 알파요 오메가다. 독하게 음악 한다는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그의 카리스마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로튼 애플의 전체적인 인상 또한 김상민의 독특한 보이스 칼라로 결정되는 것이 사실인데, 데뷔 앨범에서 한국의 ‘에디 베더’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김상민의 보컬은 펄 잼의 그것과 항상 비교되곤 한다.
데뷔 앨범이 한국의 펄 잼으로서의 충실한 재현이었고 싱글 『Quad Factory』가 거기에 분노를 덧입힌 것이었다면 『It’s OK』에서 김상민의 목소리는 드라마를 가진 보컬로 한 단계 성숙했다고 판단된다. 30대가 가까워 온 록커의 여유일까? 아무튼, 로튼 애플식 발라드인 「Sweet Butterfly」에서 들리는 김상민의 목소리에는 호방한 절규 외에 설득력 있는 감수성이 진하게 느껴진다.
타이틀곡 「It’s OK」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마지막 트랙은 김상민 보컬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한 순간도 감정을 표출하지 않지만 시종일관 우수에 젖은 톤으로 노래하는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시 10년이란 세월은 강산도 변하게 하나보다. 김상민이 이렇게 조용하게 노래할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우수에 차 있더라도 로튼 애플 음악의 본령인 거친 흙 같은 토대는 버리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귀환
로튼 애플은 실력에 비해 평가 절하된 아티스트의 대명사이다. 그 질박한 운명을 비웃으며, 혹은 달관하며 2006년 새로운 앨범을 던져놓았다.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모두 괜찮다고 말하는 EP 『It’s OK』에서 드디어 실력을 인정받고 비상할 것인지? 그런지의 아류라며 또다시 폄하된 평가를 감수해야 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로튼 애플 자신들은 그 누구보다 신나게 연주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진정 아름다운 로튼 애플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비단 나 하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