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은 또 다른 전설을 낳는다. 이렇듯 이어지는 전설의 행렬은 세대를 뛰어넘고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마침내는 영원의 계보를 이룬다. 음악 신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특정 장르의 대표주자가 골든 로드에 진입하는 순간, 같은 열차에 동승했던 추종자들은 오리지널을 뛰어넘겠다는 공통된 캐치프레이즈 아래, 일보전진을 위한 필사의 노력을 쏟아 붓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좌절과 절망을 견디다 못해 대열에서 탈락, 낙마의 슬픔을 곱씹지만 소수의 실력파들은 결국에는 살아 남아 치열했던 서바이벌 게임의 승자로 역사에 그 이름을 아로새긴다. 카피 캣의 초라했던 신분 아닌 정통 후계자의 새 옷을 입고, 지금 막 개막된 뉴 제너레이션의 음악 필드를 선두에서 리드하고 견인한다.
일본 록, 줄여서 제이 록J-ROCK 신에서도 지금껏 수많은 레전더리 밴드들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광을 누려왔다. 특히 1990년대의 개막정확히 말하자면 1989년과 함께 트렌드의 물꼬를 텄던 비주얼 록VISUAL ROCK은 왕성한 활동 에너지를 자랑했던 여러 아티스트들 덕에 지금도 일본 록 계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 모두는 비주얼 록을 창조하고 효시의 뿌리를 완성했던 그룹 엑스 제팬X-JAPAN의 그 거대했던 음악 왕국을 뛰어넘겠다는 일념 하에 광활한 음악 필드를 풀 엔진으로 마구 질주하고 누벼왔다. 그러나 몇몇 후예 밴드들을 제외하곤 그저 전국적 명성에 그쳤을 뿐, 그에 비견될만한 음악적 상아탑을 쌓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몇몇들 중 최고의 돋을새김으로 꼽히는 록 공동체가 바로 루나 시LUNA SEA이다. 비주얼 록의 인기 화염이 절정에 달했던 1990년대 초 중반까지 엑스 재팬을 포함, 글레이GLAY, 라르크 앙 시엘L'ARC EN CIEL 등과 함께 이른바 '비주얼 록을 이끄는 4두마차'로 군림했던 루나 시는 2000년에 공식 해단식을 갖기 전까지 내놓았던 6장의 정규 음반을 통해 비주얼 록이 지닐 수 있는 최대치의 매력을 마음껏 방사, 제이 록 신의 자이언트 그룹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우뚝 세웠다. 또한 1992년의 메이저 데뷔작 [IMAGE]를 시작으로 1994년의 3집 [MOTHER]를 거쳐 1998년의 마지막 음반 [SHINE]까지, 발표했던 작품 모두가 족족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안착하며 상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거두어들였다.
-SHORT BIO OF LUNA SEA-
최초 루나 시는 고등 학생이었던 제이J, 베이스, 1970년생와 이노란INORAN, 기타, 1970년생이 1986년 의기투합하면서 힘찬 출발 총성을 울렸다. 루나 시 아닌 루나시LUNACY라는 밴드 네임 하에 음악의 바다에 첫 배를 진수한 그들은 1989년 신야SHINYA, 드럼, 1970년생와 스기조SUQIZO, 기타, 1969년생가 당시 속해있던 그룹 피노키오의 해체 후 가입하고 같은 해 5월 슬로터에서 탈퇴한 류이치RYUICHI, 1970년생가 보컬로 들어오면서 5인조 라인업 체제를 완비, 미래 슈퍼 밴드로의 도약을 위한 시금석을 마련했다.
그리고 1990년, 라이브 무대를 통해 착실히 경험치를 쌓아갔던 그들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콘서트 도중 밴드의 출중한 실력에 반한 엑스 재팬의 기타리스트 히데HIDE가 그들을 픽업해 요시키YOSHIKI에게 소개, 엑스 재팬 산하의 엑스터시 레코드와 계약을 따내게 되었던 것. 프로 뮤지션으로서 첫 걸음을 내디딘 그들은 요시키의 제안에 의해 그룹 명을 'LUNA SEA'로 변경한 뒤, 셀프 타이틀 인디즈 앨범 [LUNA SEA]를 내놓고 서서히 팬 베이스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후 장차 일본 록 계의 큰 별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예견 속에 [MCA 빅터]로 소속사를 옮긴 루나 시는 설명했듯, 처녀작 [IMAGE]로 스타트로 끊은 뒤 더욱 맹렬한 속도로 히트의 주변부를 잠식해나갔다. 마치 정상이 아니면 마음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6장의 정규작과 1999년의 실황 앨범 [NEVER SOLD OUT] 등을 통해 오리콘 차트 상층부를 마치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오르내렸다. 그들의 활약상은 바다 건너 국내에도 전해져 이 땅에서도 꽤 많은 추종자군郡이 잇따라 발족식을 가졌다. 이처럼 한일 비주얼 록 팬들에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추억을 남기고 2000년 해체한 루나 시의 멤버들은 현재 각종 솔로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과의 질긴 연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루나 시만의 메인스트림 음악 문법을 제시한 걸작 [MOTHER]-
사실 루나 시는 발표한 6장의 음반 모두를 준작俊作 이상으로 뽑아내며 꾸준한 음악적 완성도를 자랑했던 밴드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딱히 하나만을 꼽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굳이 최고의 고평高評을 획득했던 단 한 장을 선택하라면 대부분 [MOTHER]의 손을 들어줄 정도로 그룹 히스토리 속에서 본 앨범이 갖는 지위는 특별하다. 당시 삼강구도를 형성했던 글레이, 라르크 앙 시엘 등과 명확히 대별되는 루나 시만의 음악적 특장이 바로 이 때부터 알찬 내실의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글레이가 밝고 멜로디컬한 분위기를 표방했고, 라르크 앙 시엘이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소리샘을 간판으로 내걸었다면, 루나 시만의 장기는 스트레이트하고 격정적인 록 사운드였다. 이 때문에 여성 팬들이 압도적 다수를 형성했던 라르크 앙 시엘과는 달리 루나 시는 남성 팬 층의 비율이 그래도 높은 편에 속했다. 태생적으로 비주얼 록이 성비 불균형 병을 앓고 있었던 점을 고려해보면, 루나 시의 이러한 성비 면에서의 쇄신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케이스였다. 그들이 주목을 끌게 된 또 다른 이유다.
이번에 라이선스의 특혜를 누리게 된 [MOTHER]는 설명했듯, 루나 시의 음악 세계를 정의하는 모든 요소들이 온전히 제 형상을 갖춘 최초의 작품이다. 격렬한 무드의 로큰롤 무브먼트, 예상을 뛰어넘는 곡의 전개, 아름다운 멜로디가 삼합三合을 일궈내며 음악적으로는 물론, 상업적으로도 매머드 히트의 뜨거운 축포를 터뜨렸다. 자연스레 지금까지도 그룹의 시그니처 레코드로 제이 록 계에서 극빈 대우를 받고 있다.
긴박한 느낌의 드럼 비트로 신호탄을 쏘아올리는 'LOVELESS'를 포함해 스피디하게 내달리는 'ROSIER'와 서서히 분위기를 고양하는 'FACE TO FACE' 등, 초반부의 세 곡만 들어봐도 이를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다섯 멤버들이 연출하는 연주 하모니는 '이어 컨택트'라 불러도 좋을 수준의 일사불란한 호흡을 뽐내고 이를 통해 완성되는 사운드 메커니즘은 살아있는 유기체마냥 자연스러운 음의 동선을 그린다. 특히 'ROSIER'에서의 솟구치는 록 미학은 아드레날린을 마구 분사케 하는 루나 시 음악 효과의 결정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다.
이후에도 속된 말로 전곡이 베스트, 빼놓을 곡이 없을 정도로 고품질비주얼 록이니만큼 고화질은 기본 사양이다.의 싱글들이 연쇄 폭발한다. 'CIVILIZE'는 불협화음과 화음을 절묘하게 혼융해 듣는 이들의 청廳감수성을 극적 긴장 상태로 몰고 가고 'GENESIS OF MIND'는 광활한 대지를 연상케 하는 사운드 스케이프를 통해 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동시에 확장한다. 제목처럼 음의 오로라를 불러오는 듯한 'AURORA', 거친 하드 록과 전자 효과음이 병존하며 어두운 미래의 자화상을 그리는 'IN FUTURE', 오리콘 차트 정상을 꿰찬 킬러 싱글 'TRUE BLUE' 등도 세밀하게 조탁된 루나 시만의 음악적 에센스를 대변해주기에 충분한 보석 트랙들이다.
그러나 그룹의 디스코그라피를 통틀어 단연 넘버원으로 거론되는 명곡 'MOTHER'가 없었다면 음반이 그토록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순 없었을 것이다. 곡은 소개되자마자 '루나 시 음악의 집대성'으로 평가 받으며 순식간에 밴드를 제이 록 필드의 극점으로 인도했다. 마니아들이 앨범을 수시로 꺼내 들어 되새김질 하는 이유도 다 따지고 보면 모두 이 곡이 지닌 깊은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MOTHER] 이후에도 루나 시는 [STYLE]1996, [SINGLES]1997, [SHINE]1998 등을 계속해서 출시하며 제이 록 계에서 '생명 연장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뉴 밀레니엄에 접어들어 끝끝내 해산을 발표, '드림스 컴 트루'를 외치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4년이 지난 지금도 팬들의 마음 속에는 그룹의 마스터피스 [MOTHER]가 마치 사금피리마냥 깊숙이 각인되어있다.
그간 컴필레이션 음반의 타이틀에 유독 많이 쓰여 어색할진 몰라도 루나 시 음악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본 앨범 [MOTHER]야말로 '에센셜 루나 시'로 격상되어야 할 명반 중의 명반이다. 무엇보다 이 안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원의 전설이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푸는 것은 다름 아닌 팬들의 몫이다.
- 자료제공: 유니버설 뮤직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