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내며
작은 아주 작은 노래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1977년, 암울했던 유신의 폭압에 숨을 죽이고 있던 관악에서 '건강한 대학인의 노래'를 찾는 젊은이들의 메아리가 울려 퍼진 지 2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고뇌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지금 생각하면 매우 소박하고 간결한, 바로···처럼 말을 끝까지 마무리 짓지도 못하는,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용기 있고, 아픔을 가슴에 새긴노랫소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시대의 아픔과 격동의 역사에 앞장서면서 수없이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야 했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슬픔과 기쁨, 희망을 함께 하는 노래들을 만들어 내고 불렀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공연과 10집에 이르는 노래책 작업 등을 통하여 노래운동의 성립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자부하여 왔습니다. 또한, 이러한 노력과 움직임은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벽',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을 통하여 여러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아픔과 변신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 80년대 초반, 사회 참여적 저항가요를 부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벌인 내부 논쟁을 거치며 스스로의 노래운동의 첫걸음을 다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1987년 7, 8월 노동자의 계급적 진출을 겪으며 과학적 이념과 철학을 더욱 더 분명히 체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90년 대에 이전시대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노래운동'의 고유과제를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이 속에서 면면히 이어진 "고뇌하는 마음으로 노래를..."은 건강하고 진보적인 노래들을 만들고 부르는 끊이지 않는 청년정신으로 이어져 내려옵니다.
이제 단지 노래운동의 '씨앗'으로 남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에 그치지 않으려, 하나의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기 위한 또다른 모색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다시 현실로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그 20년의 역사를 발딛고 4반세기의 동문들이 모여 더욱 성숙한 자기 모습을 세상에 내 놓으려 움직여 보았습니다.
이 음반의 제작은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과 그 뒤에 남겨진 많은 자취들을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한 장의 음반에 어떻게 응축시킬 수 있을지, 또 과거의 감성을 이제 30대가 된 그 시대의 당사자들이, 혹은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후배들이 99년 현재의 순간에 어떤 의미로 해석하고 빚어낼지에 대해 또다시 '고뇌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많은 분들이 함께 느끼고 평가해 주신다면 지난 1년 간의 저희의 고뇌가 더욱 의미있고 보람되리라 생각합니다.
<b>A tribute to 1977~1996</b>
메아리 초기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ORIGIN 1,2를 만든 후에 80년대로 불리워지는 메아리가 '노래운동'을 시작하고 활동하던 시절의 노래들을 모아서 음반을 만들자는 요구가 생겼다. 당연한 요구였다. 20년대의 메아리를 정리하는 마당에 메아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그 시절의 노래들이 빠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아니, 피하고 싶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비롯한 여러 음반에서 다시 불리워졌던 노래들을 똑같이 한 번 더 녹음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시절에 거리에서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부르던 그 느낌들을 되살릴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노래들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글쎄, 우리는 노래의 무게와 의미에 가위 눌리지 않고 솔직하고 즐겁게 표현하는 음반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 시절에 바치는 꽃 한다발이 아니라 지금은 작고 보잘것 없더라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씨앗 하나를 헌정(Tribute)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고, 잘해야 한 주에 한 번 모이기도 힘들었던 우리에게는 솔직함조차 힘겨운 일이었고 돌이켜보면 아쉬운 구석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실망스럽지도, 평가가 걱정되지도 않는다. 그 시절의 느낌과 감동을 주지 못하더라도 다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삶과 진실의 노래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는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1977~1996의 시대에 바치는 이 조그만 씨앗이 언젠가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신병훈(89)
<b>녹음후기</b>
1998년.
20년의 결코 짧지 않은, 그리고 20년을 거쳐간 수많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들을 엮어 왔던 노래들을 당시 끄집어 부르고 기록한다. 이제 지나간 시간속에서 느낄 수가 없어져 버린 그 무시무시한 노래들이 당시의 역사를 엮어 왔었던 우리들의 입으로 어떻게 재편집될까라는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었다. 이 음반에 담겨진 목소리와 음색과 편성은 original은 결코 아니다. 같은 사람이라해도 당시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
역사에 대한 무게감보다는, 오늘 우리들의 목소리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라도 1998 오늘이라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작업이었다.
또한, 말많은 메아리... 지나간 노래에 대한 온고지신의 미덕의 여유감이 이제는 있을까?
터무니 없이 부족한 예산과 아무도 매달리지 않는, 그렇기에 더욱 상업적일 수 없는 기록작업의 순간순간이 계속 지나갔다. 트랙 전체적으로 풍미하는 낯선 이미지들이 오히려 이 무거운 기록들을 "한 번만은 해볼만하다"라고 자극하고 있었던 것 같다. 거의 혼자 지키던 녹음실을 "갈아만든 배" 한두병들고 나타난 창학이형이 고마왔다. 어렵게 와서 "노병은 결국 늙어없어지고 만다."라는 진리를 깨우쳐 주고나서 시계만 보면서 집에 갈 걱정하는 노병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과 바쁜 일정속에서도 기쁘게 참여해 준 동문들의 힘과 그들의 노래에 대한 사랑을 이젠 다른 방식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은 부인할지 몰라도 밤을 새워가며 편곡과 믹싱을 함께해준 고마운 심상현군에게도 그런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음반이 20년이 넘는 세월속에 면면이 이루어져 왔던 한결같은 노래에 대한 정성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우리들의 노력으로 우리들의 노래가 그냥 흘러간 옛노래가 아닌 삶은 풍요로운 인식에 도움을 주는 조심스런 활력소가 되었으면 한다. 또 다른 의문이 남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이 노래들을 듣고 만지는 내 자신이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안정일(9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