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정 어린 가사, 내성적 온화함과 수줍은 듯한 분위기로 80년대를 뜨겁게 달군 명그룹 “벗님들” 일반인들에게 ‘벗님들’ 하면 ‘집시여인’이나 ‘사랑의 슬픔’이 먼저 떠오르게 되지만 사실 이들의 음악적 진정성을 십분 맛보기 위해서는 초기 시절의 음반만큼 제격인 것도 없다. 데뷔앨범에서 3집까지의 여정은 벗님들에겐 (대중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한 시기였지만 음 하나하나에 각인된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인상은 언제 들어도 그 인간적 훈훈한 온기로 가득차 있다. 이것은 ‘벗님들이라는 밴드명’, 즉 ‘벗’을 다정하게 이르는 우리말에서도 그러한 음악적 지향을 읽을 수 있으며, 초기 작품들이야말로 벗님들의 이러한 취지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벗님들 최고의 히트작인 ‘사랑의 슬픔’과 ‘집시여인’이 각각 80만, 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던 사실로 본다면 이들이 초기작은 수치상으론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당신만이’, ‘그대 곁에’ 등의 초기 작품들이 정서적으로나 작법에 있어 이후 벗님들의 음악노선과 스타일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또한 ‘이치현과 벗님들’ 시기와는 또 다른 스타일의 ‘소박한 맛스러움’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 Re-Issue 음반으로 처음 발매되는 초기 3장(벗님들 1집/ 벗님들의 새노래 2집/ 벗님등‘84(3집))의 의미는 매우 크다. 벗님들의 리더 이치현(본명 이용균)은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나 서라벌고를 거쳐 중앙대 음대에 진학했다. 벤처스와 산타나 등에 심취해 있던 그는 음대 재학 중인 76년경 5인조 그룹을 만들었으나 멤버들의 군 입대로 그룹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대신 이현식과 함께 어쿠스틱 기타 듀엣을 조직, 78년 TBC 해변가요제에 참가했다. 78년 해변가요제는 활주로, 블랙 테트라, 피버스, 징검다리 등 쟁쟁한 팀들을 다수 쏟아낸 국내 대중음악사에 길이 기억될 축제다. 바로 해변가요제에서 이용균과 이현식은 ‘그 바닷가’라는 곡으로 인기상을 수상하며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듀엣보다는 밴드 지향의 음악을 하고 싶었던 이치현은 한국 록뮤직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그룹 ‘라스트찬스’ 출신의 드러머 이순남과 함께 벗님들을 출범시켰다.
데뷔앨범은 보컬 하모니가 돋보인 ‘그대 창가에’를 비롯해 ‘또 만났네’, 매혹적인 가성의 ‘그대 손길’ 등 여러 곡을 수록하고 있다. 그중 ‘또 만났네’는 당시 벗님들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기에 충분한 곡이었으나 ‘사랑과 평화’가 이런 스타일을 먼저 시도해 대중적 인기를 끈 상태라 벗님들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벗님들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당신만이’를 비롯해 ‘꿈속에서’, ‘시골길’ 등을 수록한 2집도 꾸미지 않은 소박한 멋스러움과 맛깔스러움이 함께 한 좋은 작품이었음에도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2집의 대표곡인 ‘당신만이’는 이치현이 82년 당시 사랑하던 사람을 위해 쓴 곡이다. 당시 그룹이 자주 해산되었고 팀을 보강하기 위해 지방에 내려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의 한 야간업소에서 연주하며 동학사에서 거주하고 있던 이치현은 사랑하는 연인 - 그녀는 후일 그의 아내가 된다 - 을 그리워하며 이 곡의 멜로디를 단번에 떠올리게 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하다보니 가사가 술술 나왔고 급히 서울로 와 단번에 곡을 완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당신만이’였다. 감성을 자극하는 빼어난 멜로디, 그리고 시인을 능가하는 노랫말에서 이치현의 문학적 상상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치현(기타), 이현식(베이스), 이순남(드럼)의 3인조 형태이던 벗님들은 이후 이치현의 고교 동창 김준기를 비롯해 김용식(키보드)-오원철(베이스)-김태영(드럼) 등의 5인조 라인업으로 재정비되어 3집을 공개했다. 3집은 향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는 ‘이치현과 벗님들’ 스타일의 사운드를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대 곁에’와 ‘오래전부터’가 그 좋은 예다. 이외에도 흥겨운 로큰롤 풍의 ‘난몰라’와 ‘느낌’ 등에서 이치현이 하고 싶었던 밴드 지향의 소프트록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벗님들의 대중적인 전성기는 1985년도에 발매한 4집음반에서 ‘다 가기 전에’, ‘추억의 밤’, ‘이별의 길목’ 등 여러 수록곡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벗님들’은 소극장을 중심으로 전국투어를 하며 인기를 몰아갔다. 이어지는 5집과 6집 역시 ‘사랑의 슬픔’을 비롯한 빅히트작을 수록하며 벗님들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특히 ‘사랑의 슬픔’은 당시 KBS ‘가요톱10’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많은 대중들의 애창곡으로 자리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처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음에도 벗님들은 이치현과 김준기 간의 불화로 팀이 두 개로 쪼개지고 말았다. 88년에는 김준기 중심의 ‘벗님들’과 ‘이치현과 벗님들’이라는 라이벌이 되어버린 두 ‘벗님들’이 활동하며 팬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치현은 그룹 공연 때 게스트로 연주한 바 있던 ‘비상탈출’을 새로운 벗님들 멤버로 대체했고, 얼마 후 ‘집시여인’의 폭발적인 인기로 김준기의 ‘벗님들’보다 우월한 입장에 서게 된다. 하지만 벗님들은 90년의 고별공연을 끝으로 사라지고, 이치현은 92년에 솔로로 무대에 컴백했다.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트렌드로 자리한 상황에서 컴백한 이치현이 적응하기엔 너무 낯설었다. 그후 경기도 양평과 미사리 등을 오가며 라이브카페를 운영, 팬들에게 80년대의 추억을 선사하기도 했으나 IMF사태, 그리고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라이브 카페문화에 염증을 느껴 미사리를 떠나고 만다. 이후 그는 간헐적인 방송 출연과 앨범 제작을 통해 팬들과의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앨범 수록곡에 전부 이용균이라는 본명이 쓰여 있는 게 “무척 쑥스러워서”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여겨 이치현으로 개명할 만큼, 수줍음 많고 소박한 그의 이미지는 ‘벗님들’ 그 자체이기도 하다. 벗님들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보컬 하모니는 이전까지 한국 그룹사운드에선 듣기 힘든 또 다른 체험이다. 보컬 하모니가 멋져 혹자는 벗님들을 가리켜 ‘한국의 비지스’, ‘아름다운 소프트록 그룹’이란 닉네임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들의 멋진 하모니는 바로 이 초기 세 장의 앨범에서 십분 만끽할 수 있다. 상업적 성공의 달콤함을 맛보기 이전의 순수의 시대를 말이다.
2011년 5월 음악평론가 조 성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