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 1 / Side 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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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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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가운데서 불어 나오는
바람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그 바람에 온 몸을 웅크려야 했던 기억이 있나요 용기를 내라는 따스한 그녀의 한 마디가 한번 실패쯤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그녀의 위로가 내겐 늘 겨울바람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려 들던 시절, 아침이면 습관처럼 검정 물들인 야전 잠바를 어깨에 걸치던 시절, 이유도 없이 문득 문득 외로움에 가슴 떨던 시절 그녀가 없는 내 옆자리는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하얀 분필가루가 어깨위에 내려앉던 답답한 강의실, 쉬는 시간이면 환기통 없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태우곤 했습니다 다들 축복이라 말하는 젊음이 양어깨를 누르는 짐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녀 앞에선 더더욱 그랬습니다 남자다운 당당함에 끌렸다는 그녀 앞에서 늘 고개를 수그린 내모습 어떠했을까요 한결같은 웃음으로 따스함을 아끼지 않던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으니까요 사흘이 멀다 걸려오던 전화가 뜸해지면서 그래 넌 여대생이니까 지독히도 옹졸했죠 그동안의 정성은 그저 동정이었을 거라고 못가진자를 향한 가진자의 여유였을 거라고 여러 밤 잠못들고 뒤척여야 했습니다 내가 먼저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그녀에게 결별을 선언하던 가을날 낙엽은 유난히도 서럽게 떨어져 내렸습니다 메마른 나뭇가지가 외로워 보여서라며 난 밤새 술잔을 안고 울었습니다 그녀가 보고파서가 아니라 시린 가을 하늘에 눈이 부셔서라며 그리고 시간은 쉽사리도 흘러갔습니다 텅 비어버린 가슴으로 시험을 치르던 날 흰 눈이 이렇게 차가울 수도 있구나 내 아픈 느낌 앞을 막아선 한아름 꽃다발 그 앞에 마주 웃고 있는 그녀의 하얀 미소 그녀는 그렇게 열린 가슴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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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3:37 | ||||
3. |
| 3:58 | ||||
초록색 쉐타가 잘 어울리는 그 애
그 애의 특징은 웃을때 콧잔등에 잔뜩 잔주름이 진다는 것입니다 하얗지는 않지만 까맣지도 않은 너무나도 평범한 피부를 가졌고 투명하고 맑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너무 어른같은 말을 할 줄 아는 아이여서 그 당돌함에 오히려 내가 당황하고 마는 웃음이 많지만 침묵할 땐 그 깊은 우수가 나를 가슴 저리게 만들었던 종잡을 수 없었던 아이 윤지수 윤지수는 그 아이의 이름입니다 오늘 나는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그 애가 내게서 떠나버린 후, 두계절이 지나서 우연히 발견한 그 아이의 웃음이 담긴 얼굴 그 앤 축제가 한창이던 교정 구석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포졸복을 입고 있었죠 여학생들이 만들어놓은 주점 앞에서 몽둥이를 하나 들곤 말썽을 피우는 남학생들을 쫓아내고, 손을 탁탁치며 씨익 웃음을 보이던 그애를 만났습니다 연극에 빠져 날뛰던 나의 숙제를 밤새껏 깨끗이 정리해와 충혈된 눈으로 내 몸 걱정을 해주고 안스러운 눈빛으로 격려를 해주던 아이 자신의 화장술을 뽐내며 내 무대 분장을 해주겠노라고 큰 소리를 땅땅 치고 광대같은 내 얼굴에 그만 자기가 자지러질듯이 웃다가 넘어져서 한동안 쩔뚝쩔뚝 걸어다녀야만 했던 그아이 헤질대로 다 헤어진 내 카키색 군복 잠바의 단추를 패션이라는 이름하에 가지각색으로 달아놨던 아이 누군가가 쳐다보면 영화배우 처음 보냐며 까르르 소리내어 웃던 아이 교정 게시판에 여행갈 사람을 구한다고 사진과 함께 당당하게 붙여놨다가 지원자가 없어서 사진을 떼었더니 그제서야 지원자가 줄을 섰다고 슬퍼하던 그 아이 내가 가슴 시리도록 사랑했던 아이 윤지수 혹시, 어디선가 지수를 만나신다면 윤지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를 만나신다면 초록색 쉐타가 어울리는 표정이 예쁜 그런 여자를 만나신다면 저 대신 웃어주시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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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 3:22 | ||||
5. |
| 4:00 | ||||
전, 어렸을적 꿈이 수영선수였어요
그래서 쪼금, 아주 쬐금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뭐 한강을 건너갈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녀는 말이죠 아주 쪼그맣고 예쁜 입술로 즐거운듯 조잘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물에 대한 얘기라면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정신없이 어깨를 흔들어가며 얘길했죠 평소엔 말이 없고 그저 넉넉한 몸매만큼 넉넉한 미소로 답하던 그녀가 어찌된건지 물과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영 딴판이 되어버리니까 뭐, 그렇다고 수다스러울 정도라는 건 아닙니다 비가 너무 좋아요 그냥 그래요 난 비가 내리면 어쩔줄 모르겠어요 네, 옷이 한벌이라서 그러냐구요? 아니예요 그냥 그냥 그래요 아, 그럼 술도 좋아하냐구요? 별로예요 하지만 전 맥주보다는 쏘주가 더 좋아요 물론, 쏘주보다는 양주가 더 좋구요 제 주량요? 각기 제 병으로 3병 정도예요 맥주, 소주, 양주, 3병, 얼마 안되죠 네? 제가 배가 나온 이유를 알겠다구요? 그리 곱게 생기지는 않았어도 한꺼번에 두 팔로 안아지지 않을만한 허리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어도 전 그녀가 맘에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그녀 맘에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 수영은 물론이고 술도 한잔이며 영원한 천국이였구 비는 더욱 더 싫어했으니 고민이 아닐 수 없었죠 그러나 전 그녀는 사로잡고 싶었으니 할 수 없었습니다 큰 결심을 하고 다 털어놓기로 맘을 먹었죠 그래서 전 해가 어슴프레하게 지는 저녁 으슥한 한강변으로 그녀를 데리고가 보트를 탔습니다 분위기를 적당히 잡은 후 죽기 살기로 고백을 하리라 근데, 그런데 말이죠 스쳐가는 바람처럼 와 닿는 생각, 아시죠? 제가 수영을 못하는 것 만약 이 보트가 그녀와 나의 불균형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뒤집혀지기라도 한다면 아, 그 때의 그 초라한 몰골 비참한 나의 최후 허우적거리는 나의 나의 정태씨 갑자기 일어나면 어떡해요 어~~ 제가 깨어났을 땐 그녀는 제 옆에 앉아 있었고 전 그녀와의 쓰디쓴 이별만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이죠? 그녀가 제게 던진 말은 그말은 말이죠 정태씨, 너무 너무 멋져요 전 감격했어요 전 정태씨처럼 그렇게 물 잘 먹는 남자는 첨 봐요 너무 맘에 들어요 아, 전 정말 행복한 사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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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 1 / Side B | ||||||
1. |
| 4:28 | ||||
2. |
| 3:26 | ||||
3. |
| 3:17 | ||||
창밖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내 눈빛같은 밤입니다 어깨를 안고 지나가는 연인들 부럽다는 느낌마저 잃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난번 밤을 새워 쓴 편지가 가방속에 담긴지도 어느새 한 달이 가까워져 옵니다 내 용기 없음이 부끄럽기보다는 울컥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 당신의 창백한 미소를 만나기 위해 난 늘 달립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노라면 어김없이 단정한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당신 난 습관처럼 멀찍이서 당신 뒤를 따릅니다 아무런 예고없이 어느날 갑자기 시작되는 게 사랑이라고 그건 책에나 나오는 얘기인줄 알았는데 난 요즘 이름도 아니 그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당신의 모습 그 하나 때문에 춥습니다 겨울 바람 때문이 아니라 목안으로 감추어야 하는 달콤한 언어들 때문에 가슴이 시립니다 내일 아침엔 용기를 내리라는 다짐이 또 다른 내일로 미뤄지면서 사랑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일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책상 위에 구겨진 수많은 백지가 바로 그렇게 구겨진 내 마음이란 생각만으로 겨울 밤은 깊어가고 내일은 정말 하나뿐이길 이 밤 기도합니다 단 하나뿐인 내일엔 당신의 웃음 앞에 마주서길 기도합니다 겨울밤에 이루어진 이 얘기가 당신의 온 가슴에 옮겨지길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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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 3:55 | ||||
5. |
| 3:25 | ||||
아주 어려서부터였어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난 전나무 꼭대기 위에 별을 달곤했죠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내가 전나무에 별을 얹을때면 난 나의 소원을 말하곤 했어요 맨처음 별을 달았을 때 난 왕자가 되고 싶었죠 어여쁜공주와 결혼하는 그때의 별은 유난히 크고 빛나보였습니다 부모님은 말씀하곤 하셨죠 "얘야, 크리스마스 추리의 별에 니 소원을 빌면 꼭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난 별을 달았어요 몇 년쯤 지난 후에 내가 별을 달때 난 산타클로스가 되는 내 소원을 말했죠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과 사랑을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별은 그때에도 빛났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무등을 타지 않고 별을 달게 됐을 때 난 외교관이 되고싶은 소원을 얘기했습니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죠 그리고 지금, 이젠 내 키만한 전나무에 나의 별을 답니다 나의 소원은 한 여자아이의 사랑을 구하고 있어요 공주나 왕자가 아닌 매일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치는 내 크리스마스 추리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그 여자아이와의 사랑을 원합니다 별은 어느때보다도 크고 빛나보입니다 난 어린시절 부모님이 해 주신 말씀을 믿어요 "크리스마스 추리의 별에 니 소원을 빌면 꼭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나에게 꿈을 갖게 했떤 크리스마스의 별 지금은 내 작은 소원이 내가 원했던 모든 것임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