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미의 전성시대를 견인한 명반
1973년 발표된 김정미의 네 번째 음반이자 정규 3집은 신중현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음을 증언하는 명반이다. 윤도현 밴드의 리메이크로 유명한 <바람>의 원곡이 수록된 앨범으로 유명하다. 이 앨범을 통해 자신만의 색채가 강렬하고 독특한 사이키델릭 가창력을 선보인 김정미는 비로소 ‘제2의 김추자는 이제 제 1의 김정미로 바꿔야 한다.’는 언론의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냈다.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그녀의 대중적 인기도 수직 상승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김정미의 전성시대를 견인했다.
이에 서울의 중심인 무교동과 명동의 밤업소들에서 그녀를 모셔가기 위한 러브콜이 강력해졌다. 당시로는 고액인 월 개런티 80만원에도 모셔가기 힘든 특급가수로 급부상했던 것. 인기가수로 떠오르자 김정미의 집안에선 오히려 험한 연예계에 내놓은 귀한 딸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배가수 김추자의 여러 가지 불미스러웠던 각종 사건을 기억했기 때문. 그녀의 어머니가 매니저처럼 방송과 밤업소 그리고 공연 무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자택으로 걸려오는 각종 전화도 2중 3중으로 거른 뒤에야 본인을 바꿔줄 만큼 철저한 보안조치를 취했던 것은 이 앨범이 발표된 1973년의 김정미 인기를 방증한다. 글래머 여대생 가수 김정미는 각종 신문과 잡지의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고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면서 전도유망한 신인 여가수로 주목받았다.
인기가요차트에 진입한 타이틀곡 <바람>
1972년 세 번째 음반이자 2집 격인 베스트 음반 발매 이후 신중현과 김정미 콤비는 차기 앨범 제작을 위해 1년여의 준비과정을 가졌다. 전작에서 단 한 곡의 신곡도 발표하지 않고 숨을 골랐던 이들은 신곡 창작과 더불어 더욱 정교하게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가다듬는 음악적 연구에 몰두했다. 1973년 같은 해에 정규 3집 ‘바람’과 세계적인 사이키델릭 명반으로 정평이 난 정규 4집 ‘NOW'의 연속 발매는 달콤한 결과물이다. 총 10곡을 수록한 김정미 정규 3집은 앨범 발매 이후 타이틀곡 <바람>이 방송사와 주간지 그리고 대중가요 노래책의 인기가요차트 상위권에 등극하는 히트를 기록했다. 신중현과 엽전들은 1975년에 연주곡으로 리메이크했고, 1997년 ’A Tribute To 신중현‘앨범에서는 강산에가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이 노래의 존재감을 회복시켰다.
6곡이나 수록된 신중현의 창작 신곡
김정미 정규 3집에는 전작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신중현의 창작 신곡들이 대거 6곡이나 발표되었다. 최대 히트곡 <바람>을 비롯해 <추억>, <불어라 봄바람>, <비가 오네>, <어디서 어디까지>, <마음은 곱다오> 등 신곡들의 존재는 이 앨범의 가치를 높여준다. <불어라 봄바람>, <비가 오네>는 김정미 4집에 다시 수록되었고 <마음은 곱다오>는 김추자가 리메이크했다. <추억>과 <어디서 어디까지> 2곡은 리메이크 기록이 없는 오직 이 앨범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신중현 창작곡들이다.
<당신의 꿈>은 포크가수 양희은이 1972년 사이키 포크 앨범으로 먼저 발표한 명곡이다. 김정미 버전은 맑은 감성의 포크 질감 음색과는 차별되는 섹시한 분위기인지라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다. 신중현밴드 더 맨의 박광수가 1972년 최초버전을 발표한 <아름다운 강산>은 말이 필요 없는 한국 록 명곡이다. 김정미에 앞서 신중현사단 가수 김성철도 취입했었다. 신중현과 엽전들, 신중현과 뮤직파워, 이문세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대열에 동참하며 존경심을 표했지만 이 노래가 국민가요로 사랑받게 된 것은 이선희의 공로가 크다. <고독한 마음>은 김정미 첫 독집과 2집 격인 베스트 음반에 이어 3집에도 연속되는 진기록을 세웠고, <나도 몰래>는 양희은이 김정미보다 먼저 발표했다.
복고문화와 더불어 재평가된 김정미의 존재가치
이 앨범은 1972년부터 국내 제작이 시작된 카세트테이프로도 발매되었다. 카세트테이프 재킷은 LP와는 디자인부터 확연하게 차별되어 별개의 음반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수록곡은 순서만 다를 뿐 LP와 카세트테이프는 전곡이 동일하다. 김정미 정규 3집의 LP 재킷 디자인도 범상치 않지만 카세트테이프 버전의 재킷을 장식한 김정미의 환상적이고 몽롱한 분위기의 사진은 이 앨범의 진한 사이키델릭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김정미의 존재와 노래의 매력을 지금의 대중에게 확실하게 알린 것은 윤도현밴드일 것이다. 1999년 발매한 그들의 4집 ‘한국 Rock 다시부르기’에서 <바람>을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한 것이 결정적이다. 흥행호조로 1975년에도 재발매가 되었던 김정미 3집은 세월이 한 참 지난 2002년 Shin Jung Hyun MVD에서 CD 버전으로 처음 재발매했다. 이후 2006년과 2007년 포니캐년코리아에서 CD를 다시 발매했다. 2008년 리듬온에서 트리롤지 한정본 박스 LP를 통해 재발매되면서 김정미의 존재는 ‘한국 사이키델릭의 여제’로 부활했다.
김정미 음반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히트앨범
이 앨범은 김정미가 남긴 음반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히트 앨범이다. 전작들을 통해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선보인 김정미의 섹시한 음색은 이 앨범 이후 1970년대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상업적 성공까지 거두었다. 단순히 관심과 화제몰이에 성공을 거둔 첫 독집 발표 이후 비로소 사이키델릭에 최적화된 가창력과 춤 솜씨를 인정받은 김정미는 언론들에 의해 점차 ‘제 2의 김추자가 아닌 김추자를 능가하는 대형가수 재목’으로 인식의 전환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음악과 흥행 모두를 잡는 성공적인 반응에 고무된 제작자 킹박은 곧바로 신중현-김정미 콤비의 최대 명반인 4집 ‘NOW'까지 발매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