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터넷상에서 찾을 수 있는 Pavlo의 자료는 너무도 간략하다. "그리스계 캐나다 태생", "그리스 전통음악(Bouzouki Rhythm-부주키 리듬)과 라틴음악을 혼합해서 연주하는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주노상 수상". 사실 이정도면 Pavlo를 이해하는데 핵심 요점정리는 끝난 셈이다. Pavlo는 1969년 6월 29일 캐나다의 토론토 태생이며, 그의 이름은 그가 그리스계 혈통임을 알려주고 있다. 10대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 받고 부지런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이시기에 작곡과 연주무대를 갖는 등 재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활동에는 여러 제약이 따랐다. 락앤롤 밴드의 멤버로서 선술집 무대라는 열악한 음악환경이 그것이었는데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자 정규교육을 통한 플라멩코와 클래식 기타 학업에 충실했다. 대학 재학시절에는 음악을 전공하면서 클래식 기타계의 여신 Liona Boyd(리오나 보이드)한테 사사(事師)했으며 (후에 그때 인연으로 그녀의 공연 투어에 초대를 받는다.) 학업을 마친 여가 시간에도 라틴 현악기를 위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게을리 하지않고 맹연습을 한다. 졸업 후 여러 직장을 전전하면서도 연주활동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인이자 동료인 가족들이 큰 힘이 되어 주었는데 Pavlo의 매니저와 스탭 역할을 대신하는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Pavlo의 음악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늘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Pavlo는 그리스와 산토리니를 여행하던 와중에 그에게 음악적인 큰 영감을 얻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른 바 지중해의 전통음악이 그의 음악에 전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음악에 [Santorini Sunset]라는 타이틀을 달고 첫 번째 EP 앨범을 발매한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오버그라운드 무대로 진출을 꿈꾸게 되는데 자신의 이름을 딴 동명 타이틀 앨범 [Pavlo]를 발매하고 여러 음반사들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음반사들은 그리스 전통악기나 지중해 전통음악이 귀에 거슬렸고 철저히 라틴 음악으로 편곡할 것을 요구했다. 시쳇말로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는게 예삿일이었다. 이런 요구를 Pavlo는 겸허히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음악 가치관은 고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독립제작으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이후 곧 바로 북미투어를 시작하게 되는데 장소에 상관없이 청중들이 있는 곳이면 공연을 감행했다. 이런 여정 중에 가족들과의 자유시간 동안 즐겼던 그리스 전통 춤에서 영감을 얻은 [Tsiftitelli](그리스어로 벨리댄스를 뜻함)라는 세 번째 앨범을 발매한다. 이때까지 수천장의 음반 판매고를 확인하는데 이는 청중들이 Pavlo의 연주에 대한 답례의 의미를 갖고 있다. Pavlo는 돈 욕심이 없는 편이다. 단지 후속 앨범작업을 위한 제작비, 공연을 준비하는 경비를 마련한다는 것을 음반판매 목적으로 정하고 있다. 드디어 Pavlo가 추구하는 음악 노선과 음악 성향이 정형화된 문제의 출세작 [Fantasia]를 후속 앨범으로 1999년 내놓는다. 이 [Fantasia]앨범은 캐나다에서 골드레코드를 기록하며 2000년 캐나다의 그래미상인 주노상 '올 해의 최고 연주앨범'에 노미네이트 됐으며 각종 유명 TV 쇼와 프로그램들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급기야 미국에 정식으로 라이센스 되면서 빌보드 뉴에이지 차트 6위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한다. 또한 팝스타 R.Kelly가 Pavlo의 음악 샘플을 자신의 노래에 사용하면서 파블로의 이름이 미국 내에서 더욱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세계적인 성공 역시 시작되었다. Pavlo의 음악이 시장성이 없다고 비난하던 이들의 입장이 난처해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 10년 동안 7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전세계를 돌며 매년 150여회의 콘서트를 소화해냈다. 이런 활동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Live at Massey Hall"이란 라이브 앨범을 발매한다. Massey Hall은 토론토에 위치한 명연주를 관람할 수 있는 명소인데 Pavlo의 부친은 이곳을 Pavlo의 음악교육 장소로 활용했다. 그는 Pavlo의 음악 발전을 위해서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어릴적부터 Massey Hall에 데리고 가서 셀 수 없이 많은 공연과 콘서트를 보여줬으며 세계적인 거장 기타리스트인 Liona Boyd, Jose Feliciano, Paco De Lucia등의 작품들을 Pavlo에게 경험시킨다. 그 뒤로 25년이 흐른 뒤 Pavlo는 기타의 명인으로 성장했고 그의 부친을 Massey Hall로 초청하게 되며 명소 공연장의 내부를 거니는 기회와 아들의 음악공부를 위해 소개했던 Liona Boyd, Jose Feliciano, Paco De Lucia들을 아들의 동료로 소개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Pavlo의 부친은 아들이 너무나 대견스러웠고 자신도 이런 보람을 언론을 통해 자랑하기도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