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의 바이오그라피를 뒤져보면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다. 하지만 라스 베이거스 출신의 보컬 브렌든 우리에는 그래봐야 1987년생, 미국식 나이로 스물셋밖에 되지 않은 팔팔한 청춘이고, 그의 밴드 패닉 앳 더 디스코는 고교시절 결성됐다. 같은 학교(Palo Verde High School)를 다니고 있던 시절, 전 멤버 브렌트 윌슨Brent Wilson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브랜든 우리에는 “너무 설익은 밴드”에서 기타를 맡고 있던 재원이었다. 결국 브랜든은 브렌트가 주축이 되는 밴드로 옮겨가 연주하는 동시에 코러스를 맡게 되는데, 그가 가볍게 노래하는 순간 만장일치로 보컬이 바뀌었다. 앨범계약을 이루고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될 무렵 브렌트가 “탈퇴는 내 의사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나중에 법정에서 만나자”고 성토하고, 두 번째 앨범까지 함께 연주하던 라이언 로스Ryan Ross와 존 워커Jon Walker마저 떠나게 될 때까지, 브랜든은 노래로 무대의 중앙을 그리고 그룹의 중심을, 나아가 뮤지션의 아이덴티티를 지켰다.
유행하는 매체가 바뀌고, 동시에 세상도 빠르게 바뀌는 오늘날, 패닉 앳 더 디스코 같은 이력을 가진 밴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2000년대 중반 신예 뮤지션의 데뷔 창구가 되었던 ‘퓨어볼륨’ 세대이고 ‘마이스페이스’ 세대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성격과 기능의 차이는 있지만 퓨어볼륨과 마이스페이스는 루키가 완성한 음악을 등록해 평가와 호응을 기다리는 커뮤니티라는 점에서 같았다. 퓨어볼륨에서는 ‘계약 직전의 신예뮤지션’ 톱텐으로, 마이스페이스에서는 ‘가능성있는 신예 인디 뮤지션’ 톱으로 랭킹된 그들의 음악에 깊게 주목했던 영향력있는 인물은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의 베이시스트 피터 웬츠Pete Wentz로, 이 새내기들의 신선하고 탄탄한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고 온라인으로 인연을 맺다가 여행 차 라스 베이거스에 찾아온 후 그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레이블(Fueled by Ramen)에 패닉 앳 더 디스코를 소개했고 계약을 이끌었다. 여기서 처음 공개했던 그들의 첫 번째 앨범 [A Fever You Can't Sweat Out](2005)는 미국에서만 1.6백만 장, 전세계 세일즈 2.2백만 장을 기록했다.
데뷔 앨범으로 즉시 유럽과 북미 투어가 이루어졌고, 때로는 공연장의 사나운 청중으로부터 폭탄을 맞기도 했다. 훌리건 유사의 2006년 영국 레딩 페스티벌Reading Festival의 무자비한 관중은 물불 안가리고 그들에게 플라스틱 물병을 던지기 시작했고, 브랜든이 정통으로 맞아 잠깐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무대에 섰고(“그런다고 내가 갈 줄 알아?” 하는 패기의 대응과 함께), 그밖의 예정된 공연은 변함없이 지속됐으며 앨범작업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리거나 젊었고, 나이다운 공격성과 능동성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2집 [Pretty. Odd.](2008)는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돌진이 극단적으로 터진 작품이다.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에 고전에 대한 이해가 탑재된, 그리하여 웅장하게 펼쳐진 거대하고 실험적인 록 오페라를 완성했다. 만드는 동안 상당한 진통이 있었으리라 판단되는 중후한 앨범이었다.
지난 1년간의 이야기
일찍부터 만나 함께 데뷔하고 함께 절정을 맛보았던 멤버 둘, 라이언과 존은 음악적 견해차로 팀을 떠나 최근 새 밴드 영 베인스The Young Veins를 결성했다. 설명에 따르자면 남아있는 브랜든은 “보다 팝적인 음악”을 원했고, 떠난 라이언은 “보다 복고적인 음악”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합의로 헤어졌다 한들 결별이라는 변화는 모두에게 작은 상처와 불안과 혼란을 고루 안겨주었을 것이고, 그랬던 경험은 곧 음악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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