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국의 작곡가.
주요작품 《4분 33초》(1952) 《Imaginary Landscape No.4》(1951) 《Variations I》(1958)
20세기는 사상 초유의 거대한 전쟁이었던 ‘제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세계의 냉전화와 전시체제의 분위기는 음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음악은 새로운 소재와 아이디어의 사용 그리고 독창적인 음의 세계를 개척하려 하는 여러 형태로 등장했고 지금 우리는 이를 ‘현대음악’이라 정의한다. ‘현대음악’을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는 음악이라고 했던가. 근본적 조성을 부정하는 12음 기법, 셋 이상의 조성을 동시에 사용하여 조성적 성격을 흐리게 하는 다 조성 음악, 구체적인 사물이나 배경의 소리를 녹음, 조작, 재생하여 구성하는 구체 음악 등 이전 시대에 지켜져 왔던 수많은 음악 내적 규정을 벗어나는 많은 현상들로 인해 더 이상 현대음악을 무엇이라 정의하긴 어려울 듯 하다.
일반적으로 표를 사서 음악회장을 찾은 관객들은 멋진 연미복을 입은 연주자가 들려줄 아름다운 연주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러한 ‘일반적’ 기대를 단숨에 무너뜨린 ‘괴짜 작곡가’가 있다. 현대사회의 일면을 반영하는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음악 안에서 표현해 낸 사람 존 케이지. 그가 바로 그 독특한 인물이다. 그의 작품 ‘4분 33초’ (1954)는 3악장으로 구성된 피아노곡이다. 그런데 연주시간 4분 33초 동안 연주자는 어떤 건반도 건드리지 않았다. 단지 피아노 밑으로 기어들어갔다가 나오는 둥 엉뚱한 행동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바깥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과 웅성대기 시작한 청중의 소리가 전부였다. 그런데 정작 작곡가는 아무런 동요 없이 이렇게 말한다. “아무 연주도 하지 않았다니요. 악보를 보면 피아노 뚜껑을 연다…등등의 수많은 악상기호가 적혀있습니다” 라고. 이 얼마나 황당한 답변인가. 하지만 이 ‘황당한’ 연주와 답변은 존 케이지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12년 9월 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1934년부터 1937년까지 12음기법의 대표적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로부터 작곡을 배웠다. 이듬해에는 <피아노를 위한 곡>을 작곡해 순수음악계에 ‘전자음악’을 소개하면서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의 선두를 섰다. 1942년에는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고 마더웰, 로젠버그와 함께 잡지 <Possivillity>를 창간했다. 또한 <짐노페디>로 잘 알려진 에릭 사띠와 ‘변기’를 작품으로 전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르셸 뒤샹의 이론에도 잠시 심취했다. 한편 자신의 음악에 감성적인 요소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그는 1945년에 만든 작품 <위험한 밤>의 창작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랑이 불행으로 끝나면 외로움과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된다” 라고.
한편 블랙 마운틴 대학에서 열렸던 강연회에서 그는 팝아트의 선구자 로버트 라운센 버그와 함께 처음으로 ‘행위예술’을 소개했다. 그리고 백남준과 함께 참여했던 1960-70년대의 국제적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운동과 ‘팝아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음악뿐 아니라 아방가르드 예술전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그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다. 여기서 그는 ‘고른음’과 ‘고르지 못한 음’을 동등하게 취급함으로써 이에 맞는 악기의 새로운 주법을 고안해냈다. 또한 이 작품의 악보는 도형모양의 독자적인 기보법으로 되어있는데 피아노 파트는 그가 생각해 낸 84종류의 새로운 기호로 채워져 있다. 이 도형악보는 종이 대신 투명한 플라스틱을 사용했는데 그는 여기서 임의로 여럿 악보를 겹침으로써 발생하는 불확실한 기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1951년 발표한 <Imaginary Landscape No. 4> 는 두 사람씩 배정된 12개의 라디오 수신기를 존 케이지가 ‘역(易)’ 에 의해 정해진 방식에 따라 이것을 조정한다. 곧 각 수신기에서 나오는 음악, 강연, 드라마 등의 다양한 소리가 혼합된 것이 바로 이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쯤이면 존 케이지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창 연주가 최고조에 이르러 카덴차 부분이 나오면서 피아니스트가 갑작스럽게 오른손 주먹으로 검은 건반을 왼손 주먹으로는 흰 건반을 내려치는 기상천외한 연주로 청중을 놀라게 하는 작곡가. 임의로 피아노 악기를 조작해(prepared-piano) 연주에 이용하는 등 음악에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 그의 작품세계를 금방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 지금까지 ‘음악이란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는 것’이라 여겨온 ‘선입견’의 문을 조금 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by denke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