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는가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그대 이제 음-- 느낄수 있지 내 여윈 가슴 쓸어가는 저 부는 바람 끝을 그래 우린 너무 힘겹게 이길을 걸어왔어 시작도 그 끝도 알수없는 친구여 이제 우리 쉬어가야 겠네 그 숨가쁘게 휘돌아온 우리 삶의 허리 그 어디 쯤에 잠시 멈추어서서 저 빌등 숲사이로 불어가는 바람끝을 잡아봐 자 가만히 눈감고 이젠 느낄수 있을꺼야 그래 이젠 맘을열어 우리 지친 어깨 서로 기대어 우리 맘에 벽사이로 비겨가는 바람소리를 들어와 저 문밖에 두드리는 소리 이제 저만치 다가오리니 그래 이젠 가슴을 펴 우리 긴 호흡으로 걸어봐 그래 이젠 맘을 열어 우리 지친 어깨 서로 기대어 자 우리 이젠 손에 손자고 긴 호흡으로 걸어봐 이제 긴호흡으로 가야해 길가 작은 풀꽃에도 따스한 눈길 주어야지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 귀 기울여 더딘 걸음 일지라 긴호흡으로 나나나
해는 기울어 산에 걸리었고 어둠이 내려와 세상을 덮으니 저문 하늘로 거기 별 하나 떠오는구나.
밤이 깊을수록 어두움도 짙어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 가까우리니 저 어둠을 뚫고 이 땅에 새날이 온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문명화된, 고도의 세련된 문화를 구가하고 있는 듯 보인다. 허나 무릇 해아래 새것은 없음이며 오히려 정신적, 영적으로는 가장 암울한 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 우리는 이제도 이 칠흑같이 캄캄한 밤을 지나 저 어두움의 새벽을 뚫고 마침내 밝아올 새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무화과나무 무성치 않으며 포도나무 열매 없으며 감람나무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 하나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즐거워하리. 그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내 기뻐 기뻐하리로다.
아모스와 같이 농목축업자였던 선지자 하박국, 앞서 그토록 간절히 주의 일을 나타내시도록 기도했으나 정작 그에게 찾아온 것은....... 그는 자신의 모든 비즈니스가 다 망해버린 마당에 오히려 이렇듯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이유는 단 하나 뿐,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또 기뻐할 수 있다면, 즐거이 노래 할 수 있다면 이미 부흥은 임한 것이리라. 그에게 부흥은 그렇게 임하였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 잊지 마소서.
하나님이 위에서 오사 거룩한 자 산에서 오시네. 그 영광이 하늘을 덮고 그 찬송 온 세계에 가득하도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그렇다 부흥은 그분의 일이며 전적으로 그 분께 속한 것이다. 다만 우리는 부흥의 주체가 아니라 부흥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며 무엇보다 그것은 그 분께서 허락하실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더욱 가까운 지금, 첫 부흥으로서의 오순절 그날 이후 지금껏 있어온 어떤 부흥과도 비교할 수 없는 머지않아 온 땅이 마가의 다락방이 될 마지막 부흥이라는 이름의 큰 파도가 밀려 올 때, 동시에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전쟁이며 그때 두려움 없이, 아무 주저함 없이 그 파도를 탈(출정)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저 광야와 메마른 땅 기뻐하며 저 사막의 백합화 피어 즐거워하며 기쁜 노래를 불러 시온의 아름다움 여호와의 영광 그 이름다움 보리라
너희 약한 손 강하게 떨리는 무릎 굳게 하며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곧 다스려 주시리 그가 오사 널 구원하시리
눈먼 자 눈을 뜨고 귀먼 자 귀가 열릴 것이며 저는 자 사슴같이 뛰놀고 모든 혀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와 메마른 땅에 물이 솟아나 사막에서 시내가 되어 흐를 것이라
거기 큰 길이 있어 그 길 거룩한 길 깨끗지 못한 자 지나지 못하리라 오직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자 노래하며 돌아오리라 시온에 이르리라
이 말씀은 워낙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것이나 더불어 마지막 때에 택하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분께 돌아오리라는 예언적 말씀이기도 하다. 더하여 만물의 회복, 그 기쁨을 노래 하고자 했다. 허나 아직 기쁨의 노래를 부르기엔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손은 여전히 연약하며 무릎은 떨고 있는지도........ 우리 앞에 있는 저 거대한 골리앗과도 같은 세상, 그 앞에서 때로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우리....... 더러는 세상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고지에 올라 깃발을 흔들어도 보지만 그것이 기쁨의 노래를 부를 이유는 되지 못한다. 거기 큰 길이 있으니 그 길은 거룩한 길이다. 깨끗지 못한 자 곧 세상과 더불어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자는 지나가지 못할 것이며 신부, 오직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정결한 신부만이 이제 곧 시온의 대로로 오실 신랑 되신 그분과 함께 노래 할 수 있으리라. 그 때를 위하여 우리는 이 노래를 연습해 두어야 한다. 그 날 기쁨의 하늘 혼인잔치를 위하여.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지어다 열방 중에 높임을 받으리라 만군의 여호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이 노래는 영적전쟁(피상적이 아닌 매우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의)에 관한 노래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대적들로 인하여 성을 쌓을 필요는 없다. 이미 저들은 충분히 우리 가까이 있으며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지도....... 그것은 다름 아닌 탐심이라는 이름의 우상이다. 결코 그럴 수 없음을 엄중히 말씀하셨음에도 재물을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믿는, 물신 즉 맘몬의 영의 현현인 자본주의, 말 그대로 자본, 즉 돈이 주인이며 정의라고 말하는 마침내 하나의 세계체제로서 기정사실화 된 이 거대 이데올로기에 포로가 되어버린, 더는 그 하부구조로 편입되어버린 교회........ 이제 교회는 더 이상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교회의 진정한 표지로서의)존재가 아니다. 하여 존경과 신뢰는커녕 비판을 넘어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더러는 고지를 점령한 당당한 승자로 세상부터의 모든 은혜?에 익숙해져 있는, 또한 여전히 목말라하는 체제의 신실한 총아이다. 이 거대한 정글과도 같은 세속도시 빌딩 숲, 교회도 그 중 하나이며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피할 곳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