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본명 : 김명옥, 1957년 10월 1일~)는 1980년대 〈빙글빙글〉등 댄스곡으로 큰 인기를 얻은 한국의 가수이다.
동두천 미군기지 부근의 레코드 가게집 딸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미8군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국민학생이었던 1967년엔 이미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엘레지의 여왕》에서 이미자의 아역을 이듬해 윤복희의 일대기를 다룬 《미니 아가씨》에서 윤복희의 아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청소년 시절에는 〈해피돌즈〉라는 그룹의 보컬로 베트남 위문공연을 비롯하여 미군부대 무대에서 활동했다. 1978년 〈해피돌즈〉가 해산되고, 나미라는 예명을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솔로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의 밴드와 함께 하는 이름은 〈나미와 머슴아들〉이었다.
나미는 콧소리가 강하기 들어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활동하며〈영원한 친구〉, 〈슬픈인연〉,〈빙글빙글〉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1989년 6집과 함께 〈인디언 인형처럼〉이 유행했다. 나미는 새로운 시도를 위해 1990년 붐붐과 함께 〈나미와 붐붐〉을 결성하여 인디언 인형처럼을 히트시킨다. 붐붐은 신철과 이정효로 이루어진 더블 DJ로 독립된 활동을 하고 있었다.[1] 이들은 검은 옷, 바가지머리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춤과 랩을 했고, 토끼춤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매니저였던 최봉호씨와 두 아들을 두었고, 이들 중 정철은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 ....
스쳐며 흘러간 그림자. 마음 깊은곳에 남아 머뭇거리네. 강물은 흘러서 사라지지만 떠난 그대는 왜 내게 남아 있는지 피리 불며 떠난 그대 나의 아픔은 눈을 뜨고 끝없는 나의 방황에 눈물이 흐르네. 이젠 다시 아무말 않으리 흘러간 세월이야 소리 들으려해도 어디론가 흘러가는 바람소리 뿐. 피리불며 떠난 그대 나의 아픔은 눈을 뜨고 끝없는 나의 방황에 눈물이 흐르네 이젠 다시 아무말 않으리 스쳐간 바람이야. 이젠 다시 아무말 않으리 흘러간 세월이야 소리 들으려해도 어디론가 흘러가는 바람소리 뿐.
하늘이 온통 하얗게 물든 날에 내 너를 만나리라. 메마른 네가슴에 사랑의 꽃 한아름 안겨주리 알알이 음- 엮어진 슬픈 매듭 하나 둘 풀면서 저 험한 세상 의지하며 아름답게 한 세상 살아가리. 나도 한번 사랑해야 겠네 나도 한번 살아봐야 겠네. 이 푸른날에- 나도 한번 사랑해야 겠네. 나도 한번 살아봐야 겠네. 이 푸른날에-
한번 떠나가면 다시 못오는 님 님이 떠난길에 검은 머리 풀고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 별이 되었나 우 - 우 이별의 강이 깊어 못오시는 님 그리움의 산이 높아 못오는 님 세월은 바람이 되어 흐르고 눈물은 어느새 말라버렸네 그대 사랑이란 이름으로 작은 별이 되어 울고있나 모두 잠이 들어버린 세상. 누가 그리워서 울고 있나 새벽 하늘엔 슬픈 별 하나. 이별의 강이 깊어 못오시는 님 그리움의 산이 높아 못오는 님 세월은 바람되어 흐르고 눈물은 어느새 말라버렸네. 그대 사랑이란 이름으로 작은 별이되어 울고 있나 모두 잠이 들어버린 세상 누가 그리워서 울고있나 새벽 하늘엔 슬픈 별 하나.
그대가 떠난후 거리를 걸으면 화려한 불빛이 웬지 낯설게만 느껴져 지나간 추억을 찾으려하지만 너무 슬픈날이 많아서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 사랑이 없으면 잠들지 못하는 나의 허전한 가슴을 누가 채워줄 수 있을까. 비틀비틀 걸어가는 이 거리의 나는 이방인 비틀비틀 걸어가는 이 거리의 나는 이방인 그대가 떠난후 내 곁을 스치는 도시의 바람이 웬지 차갑게만 느껴져 화장을 지우고 거울을 볼때면 슬픈 사랑의 그림자 너무 지쳐버린 내 얼굴 외로운 이 밤이 깊어만 가는데 이젠 아무도 내 손을 다시 잡아주지 않아요. 비틀비틀 걸어가는 이 거리의 나는 이방인 비틀비틀 걸어가는 이 거리의 나는 이방인
차라리 나를 미워하신다면은 잊을 수 있어요 어이해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면 멀어지나요. 이렇게 헤어질순 없는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당신이 떠난 후에야 목 메인 이름 불러 봤어요. 이별이란 아픈 짓을 모두 다 알았어요. 다시는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리 갈테면 내게 남은 미련 마저도 가져가 주세요 밤마다 그림자처럼 내곁에 와서 떠돌다 가는 사랑이여- 이별이란 아픈것을 모두 다 알았어요 다시는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리. 갈테면 내게 남은 미련 마저도 가져가 주세요. 밤마다 그림자처럼 내곁에 와서 떠돌아가는 사랑이여 -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보내는 이 마음을.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이 마음 그댄 몰라. 떠나가는 그 발길이 무거워질까. 돌아서지 못할까봐 아무렇지 않는 듯이 웃음 지우는 이 마음을 그대는 몰라. 보내는 나를 잊지는 나를 미운듯 뒤돌아보며 떠나는 그대 떠나는 그맘 차라리 편할꺼야.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괴로운 이 마음을 잡고 싶어도 잡지 못하는 이 슬픔 그댄 몰라. 떠나야할 그 마음이 흔들릴까봐 미련이 남을까봐 싫어진듯 냉정하게 고개돌리는 이 마음을 그대는 몰라 눈물 감추며 웃음 띤 나를 미운듯 뒤돌아보며 떠나는 그대. 떠나는 그맘 차라리 편할꺼야.
찰깍, 떨어진 동전 그 작은 소리에도 놀라 나의 가슴은 뛰고 있었지. 그대 목소리 들리는데 나는 할말을 잃었네 3분이 지나가도록 입술은 열리지 않아. 그말 한마디 차마 하지 못한 말은 사랑해, 사랑해요. 찰깍, 떨어진 동전 자꾸만 떨려오는 마음 사랑이란 이렇게 힘들까 다시 수화길 놓았네. 이젠 동전도 없어요. 3분이 지나가도록 입술은 열리질 않아 그말 한마디 차마 하지 못한 말은 사랑해, 사랑해요. 찰깍, 떨어진 동전 자꾸만 떨려오는 마음 사랑이란 이렇게 힘들까 다시 수화길 놓았네. 이젠 동전도 없어요.
다시 어둠이 내리면 혼자라는게 나는 싫어 불빛거리를 헤매다 지쳐버리며 잠이드네 그댄 그렇게 내게 남겨둔 인형처럼 쉽게 웃으며 떠나가지마~~~` 나의 마음은 인디안 인형처럼 워워워워워워워워워 까만 외로움에 타버렸나봐 oh, my baby 비가내리는 날이면 아픈 추억이 너무 많아~~ 지난 일들을 잊으려 비를 맞으며 걸어가네~~ 그댄 그렇게 내게 남겨둔 인형처럼 쉽게 웃으며 떠나가지마~~~~ 나의마음은 인디안 인형처럼 워워워워워워워워워 까만 외로움에 타버렸나봐~~ oh, my baby 혼자울고있는 이 안타까운 밤이 깊어가네~ 그댄 그렇게 떠나가지마~~~ 나의 마음은 인디안 인형처럼 워워워워워워워워워 까만 외로움에 타버렸나봐 oh, my baby
다시 어둠이 내리면 혼자라는게 나는 싫어 불빛거리를 헤매다 지쳐버리며 잠이드네 그댄 그렇게 내게 남겨둔 인형처럼 쉽게 웃으며 떠나가지마~~~` 나의 마음은 인디안 인형처럼 워워워워워워워워워 까만 외로움에 타버렸나봐 oh, my baby 비가내리는 날이면 아픈 추억이 너무 많아~~ 지난 일들을 잊으려 비를 맞으며 걸어가네~~ 그댄 그렇게 내게 남겨둔 인형처럼 쉽게 웃으며 떠나가지마~~~~ 나의마음은 인디안 인형처럼 워워워워워워워워워 까만 외로움에 타버렸나봐~~ oh, my baby 혼자울고있는 이 안타까운 밤이 깊어가네~ 그댄 그렇게 떠나가지마~~~ 나의 마음은 인디안 인형처럼 워워워워워워워워워 까만 외로움에 타버렸나봐 oh, my baby
나는 나이에 비해 일찍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연이 많다면 많은 가수다. 처음 日刊 스포츠에서 스타 스토리를 연재하자고 제의했을 때도 맨 처음 생각한 건 나의 그 많은 사연 들이었다. 올해 나이 33. 걸음마를 겨우 배우면서 시작한 음악생활은 거의 30년에 가깝다. 그 많은 세월 속에 숨겨진 나의 이야기들을 이런 기회를 통해 남김없이 얘기하겠다. 그러 면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은 나미라는 한 명의 가수에 대해 조금 더 알 것이고 나 역시 지금 까지 살아온 나의 삶들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나의 본명은 김명옥. 1956년 지금은 동두천시지만 그때는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이었던 미군부대가 많았던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기지 주변에서 조그만 레코드가게 를 운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