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숭실전문학교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발휘, 기타 연주에 특기가 있었다.
초기에는 기타 연주가로, 가수로 활동하면서 작곡도 하였다.
자신이 작곡하고 자신이 부른 노래는 《청춘은 눈물인가》, 《설음의 벌판》, 《단풍제》, 《밀월의 코스》, 《풍차 도는 고향》, 《내 채찍에 내가 맞았소》, 《개고기주사》 등이다. 작곡은 본명인 김송규로 표기하였고 노래는 김해송이란 예명으로 취입하다가 1939년경부터 작곡도 김해송으로 통일시켰다.
그의 대표적인 작곡은 1937년에 장세정의 취입판인 《연락선은 떠난다》와 아내 이난영의 취입판들인 《다방의 푸른 꿈》, 《꿈꾸는 타관역》, 《이별전야》, 《무너진 황성》, 《올팡갈팡》(아내와 함께 2중창으로 취입), 아내 이난영과 처남 이봉룡이 2중창으로 취입한 《고향은 부른다》, 박향림의 취입판들인 《코스모스탄식》, 《사랑주고 병 샀소》, 《오빠는 풍각쟁이》, 《무정고백》, 《해 저문 황포강》, 백년설의 취입판들인 《고향설》, 《부모리별》, 남인수의 취입판들인 《어머님 안심하소서》, 《일자상서》, 《인생》 장세정의 취입판인 《처녀합창》, 이화자의 취입판인 《관서신부》, 김정구의 취입판인 《서생원일기》, 이인권의 취입판인 《애송이사랑》, 김영춘의 취입판인 《당신 속을 내 몰랐소》, 이은파와 자신이 2중창으로 취입한 《안달이 나요》, 《천리춘색》, 《단풍제》 등 수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