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마리아 칼라스로 불리는 소프라노 김영미는 이태리 정통 벨칸토 창법을 탄탄하게 구사하며 윤기있는 목소리와 풍부한 음역으로 한국성악의 새 지평을 연 성악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유학을 한 성악가이자 토착 오페라 작곡가인 외할아버지 안기영의 피를 이어받은 음악 집안에서 태어난 김영미는 '타고난 재능의 성악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 하고 있다.
김영미는 1973년에 이태리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입학,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79년 베로나콩쿨과 푸치니콩쿨, 1980년 마리아칼라스 국제콩쿨에 우승한데 이어 1981년에 파바로티콩쿨에서 우승함으로써 세계무대의 진출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이때 이미 파바로티로부터 '고음과 저음 이 균형 잡혀있고 박동감과 호소력이 풍부한 가수'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는 그녀는 이후 난파음악상과 보관훈장상을 수여 받기에 이른다.
이후 김영미는 1982년 미국 필라델피아 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에서 파바로티의 상대역으로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이때부터 '라 보엠'의 미미, '나비부인'의 초초상, 그리고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 역으로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 활동한다. 더불어 정명훈이 지휘하는 바스티유 오페라와 내셔널 심포니, LA필하모닉, 콜로라도 심포니등과 협연하였다. 그녀의 이와 같은 활동은 기악이 아닌 성악으로 한국 사람이 세계무대에 진출하기 어렵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한국인도 세계 성악계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었다.
지난 1995년에는 국내 성악가로는 처음으로 자장가 음반 '자장자장'을 출판하여 7만장이라는 판매기록을 세우는 등 그 성원에 힘입어 98년 '자장자장2집'을 내어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995년 2월, 김영미는 Ariccia Pallazzo Chigi Master Class 초청교수로 활동하였고, 1995년<하와이대학 한국학 센터 기금 모금 독창회> 1996년<아카데미 뮤지컬 키지아나 페스티벌>에서의 협연 등 세계 무대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97년 2월에는 2년만에 국내 무대에서 콘서트를 가졌고, 3월에는 KBS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오페라 콘서트 <오텔로>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98년에는 이탈리아 로마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오페라와 '마탄의 사수'를 협연하였고, 2000년 3월에는 토쿄 신국립오페라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하였다. 또한8월에는 북경에서 한국 초연 창작 오페라 '황진이'를 공연하였다. 2001년에는 LG 아트센터에서 성공적인 독창회를 펼쳤으며, 현재 한국 예술 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 : 김영미 리사이틀 보도자료 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