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두수의 네 번째 음반이 2002년에 발매되기 전까지 김두수는 그저 몇몇 사람만이 아는 뮤지션이었다. 그 이유는 그의 활동이 일반적인 대중매체를 이용한 활동이 아니었으며, 그나마도 그의 건강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어올 수 없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엄밀히 따져볼 때 그 음악성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소위 ‘언더그라운드 포크 3인방’으로 불리는 나머지 뮤지션들인 이성원, 곽성삼 역시도 비슷한 경우에 해당하는 뮤지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김두수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다시 거론되게 된 것은 그의 3집 음반 [보헤미안]이 발매되었던 1991년이 조금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 음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집단은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청자들이 아니라, 해외의 프로그레시브록 마니아들이었다.
1980년대의 심야 FM 프로그램들은 수많은 유로피안 프로그레시브록 열혈 추종세력을 양산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러한 마니아층을 겨냥한 프로그레시브록 음반들이 수입되었고 또 라이선스 음반발매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어느 특정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 집단들이 늘 그렇듯이 이들은 정작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반들의 구매가 용이해지자, 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남들이 갖지 못하는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기 위한 욕구의 또 다른 표출이랄까. 어쨌든 이들의 레이다에 걸린 음반 가운데 하나가 바로 김두수의 3집 [보헤미안]이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진행과 악기의 편성, 또 냉소와 온화를 함께 간직한 목소리 등 그 비교의 대상이 없던 독특한 음악세계에, 순식간에 기존 프로그레시브록 마니아들은 매료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음반은 ‘희귀음반’이었다.
하지만 데뷔앨범에 대한 아쉬움은 없지 않다. 그 첫 번째는 재킷의 아트워크다. 1집 재킷은 김두수의 의사와 달리 제작사의 횡포로 앞면과 뒷면이 바뀌어 발매되었다. 원래 뒷면에 작게 들어간 우당 윤해남의 그림을 앞면으로 하고 앞면의 김두수 얼굴이 뒷면에 작게 들어가게 하려 의도했지만, 그 반대가 된 것이다. 때문에 음반에 담긴 독특한 음악성과 달리 당시 발매되던 천편일률적인 ‘가수’들의 음반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녹음에 관련된 문제다. 데뷔앨범은 이미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스튜디오 작업에 ‘7프로’의 시간만이 사용된 음반이다. 1프로는 일반적으로 3시간 30분을 의미한다.
이렇게 양질의 음원을 뽑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사 측에서는 그의 음악에 대중성이 없다는 핑계를 들어 전반적인 음반의 정서에서 벗어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끼워 넣었다. 물론 청자들로서는 김두수식으로 재해석한 이 버전이 색다른 디저트가 되었지만, 어쨌거나 음반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트린다는 생각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또 수록곡 ‘철탑 위에 앉은 새’는 제목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작은 새의 꿈’이라는 ‘건전한’타이틀의 곡으로 바뀌었다. 타의에 의해 바뀌어버린 음반의 첫 곡과, 역시 예전에 같은 손길에 의해 제목이 바뀌어 발표되었다가 가까스로 자기 제목을 찾은 마지막 곡의 위치는 참 아이러니하다. 당시 음악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던 ‘동아기획’에서 발매된 두 번째 음반은 김두수에게 있어서 전작과 같은 제작상의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고, 그 결과 역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음반의 아트워크는 LP의 앞면 첫 번째 곡에 해당하는 ‘약속의 땅’, 혹은 뒷면 수록곡인 ‘내 영혼은 그저 길에 핀 꽃 이려니’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듯 메마른 황토흙을 뚫고 올라오는 하나의 식물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식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6현의 기타줄임을 알 수 있다. 길게 늘어진 뿌리에 반해 이제 막 땅 위로 올라온 듯 보이는 줄기 부분이 데뷔앨범의 불만을 딛고 새롭게 꽃을 맺으려는 김두수 자신의 의지와도 같이 보인다. 데뷔앨범과 두 번째 음반의 표면적인 차이점은 아트워크 외에도 수록된 동일한 곡을 비교해보면 더욱 명쾌하다. 데뷔앨범에는 원래의 제목을 사용하지 못하고 ‘작은 새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던 ‘철탑 위에 앉은 새’와 ‘꽃묘(시오리 길 II)’가 이에 해당하는 곡들이다. 두 곡 모두 데뷔앨범에 비해 두 번째 음반 수록 버전이 코러스가 강조되었고, 더욱 치밀한 편곡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철탑 위에 앉은 새’는 노래의 진행 순서를 도치시킴으로 상여가 지나가는 곡 본연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
이후 4집 음반에 ‘나비’라는 타이틀로 다시 수록되는 ‘나비야’는 재수록 버전에 비해 조금 더 빠른 스텝으로 진행되며 컨트리와 토속적인 정서를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LP의 뒷면에 자리하고 있는 ‘황혼 (Part I, II)’와 ‘신비주의자의 노래’는 앞서 김두수의 음악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프로그레시브록 마니아들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트랙들이다. 서리은의 아름다운 스캣이 코러스와 함께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며 이에 이어지는 바람소리와 장중한 오르간 연주가 등장하는 ‘황혼 (Part I)’은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록 밴드들의 심포닉한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낭송을 어쿠스틱 기타와 차가운 음색의 키보드로 서포트하는 ‘신비주의자의 노래’는 독일의 명상음악 계열 음악을 듣는 듯 내면에 침잠한다.
데뷔앨범의 적잖은 아쉬움은 컨트리에서 재즈, 프로그레시브록을 한국적 정서와 이상적으로 융합한 이 음반을 통해 대부분 해소되었고, 비로소 김두수는 노래하는 한 명의 가수가 아니라 총체적인 음악을 관장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했다. 하지만 음반의 발매 직후 이번에는 건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음반은 발매되었지만 그렇게 제대로 홍보되지 못한 두 번째 음반 역시도 글의 첫 부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희귀음반의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3년 뒤인 1991년 발매된 세 번째 음반에서 두 번째 음반의 아트워크에 등장한 한포기의 풀처럼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그의 음악이 그 길다란 뿌리에서 받아들인 자양분을 통해 장성한 나무의 모습으로 완벽한 완성을 이루게 된다.
김두수는 1986년에 데뷔음반을 발표한 포크싱어다. 동시대에 활동하던 이성원, 곽성삼과 함께 토속적인 음악을 포크 멜로디에 실어 표현해 흔히들 1980년대의 포크 3인방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본인은 오히려 의아해 한다. 그가 음반 데뷔한 1986년. 대중음악인에 대한 제재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으리라 생각되는 시기지만, 수록곡 ‘철탑 위에 앉은 새’는 제목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김두수와 임의진의 별책부록 음악회 일시 : 1월 24일(목) 저녁 7시 30분 장소 : 홍대골목 요기가 갤러리 선무당 홈페이지에서 초대권이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글 때문이었는지, 공연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을 정도의 열성 인원들만 모으셨더군요.~ 임의진, 사토 유키에, 인디언 수니, 0.03, 이한주, 김두수 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어쿠스틱 악기들을 주로 사용하시는지라, 셔터 소리 때문에 공연 중에는 사진을 찍기가 뭐해서 곡 끝부분이나 잠깐 멘트.....
작은 무대 위, 옅은 조명 속에서 피아노 혹은 기타 한 대와 함께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가사를 다소곳이 노래하는 뮤지션. 사람들은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을 본다. 그러나 진실은 무대 뒤를 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운드 담당 프로듀서, 조명 담당 기사, 기획사 사장, 매니저, 메이크업 담당자, 피부 관리사와 성형외과 의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뮤지션의 ‘고독한 이미지’를 위해 움직인다. 오늘날의 음악 산업 시스템 속에서 고독한 예술가라는 것은 애초에 거의 실현 불가능한 소망인 바, 때문에 정말로 고독한 뮤지션들, 즉 진짜로 ‘기타 하나 동전 한 닢’밖에 없는 그들은 시스템 밖에서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그 고독한 작가주의 뮤지션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하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나비는 춤을 추듯 하늘하늘 날아 움직인다. '훨훨 하늘을 날아올라' 꽃들 사이를 헤맨다. '눈멀고 귀 먼' 영혼처럼 '그저 흐느껴' 날아다니는 나비. 거기에 속세의 때와 개체의 삶을 옥죄는 구속이 자리할 곳은 없다. 자유로운 작은 존재, 날개의 작은 떨림이 만들어내는 의지와 생명력. 마치 김두수의 음악과도 같다.김두수는 10여년을 강릉에서 은둔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병마에 시달린 동시에 서울 생활에서 못 볼 것들을 보아온 김두수는 물 흐르듯 돌 구르듯 그렇게 은둔 생활을 택했다. 어쩌면 자신의 노래처럼 '나비'나 '보헤미안'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김두수의 음악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것들보다도 독창적이다. 아니, 한국에서 이런 음반이 나왔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리저리 떠도는...
김두수는 2집 음반을 발표한 직후부터 병마에 시달려서 실질적 활동을 하지 못했다. 간신히 몸을 추스려 이 음반을 녹음했지만 '녹음' 이외의 활동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음반은 최근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의 '최근작'으로 남아 있었다. 그 뒤 김두수는 서울을 떠나 양평을 거쳐 강릉으로 은둔생활에 들어갔으므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음반이 김두수의 '최후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조차 했다.
그래서 음반은 '한국 음반의 컬렉터'의 표적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대표곡이라고 할 만한 "보헤미안"뿐만 아니라 무려 10분을 넘는 대곡 "청보리밭의 비밀"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헤미안"은 '밥 딜런과(科) 닐 영속(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길 떠나는 방랑자의 노래다. '드럼 사운드'라기보다는 '북소리...
모두 아홉 개의 트랙('건전가요'는 제외) 중에서 4분 이상의 곡이 일곱 개라면 한국에서 '음반 팔지 않겠다'는 말이나 똑같을 것이다. 이 음반은 실제로 팔리지 않았으니 이런 법칙에 예외는 없다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 준다. 또 하나의 법칙이 있다면 이런 음반은 싼 가격에 대량으로 팔리지는 않지만 소량으로 비싼 가격에는 잘 팔린다는 점이다. '잘 팔린다'기보다는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서울의 황학동이나 회현동의 '중고 LP상'에 가 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비닐 LP로만 발매된 앨범이므로 이를 전제해서 말하면 이 음반은 '2부 구성'이라는, 영미권 록 음악 황금기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앞면과 뒷면의 첫 곡은 어쿠스틱 기타의 쓰리 핑거 주법에 기초한 곡들이다. A면의 경우 ...
언젠가 한번 1986년을 '한국 대중음악에서 슬픔이 분출한 해'라고 쓴 적이 있다. 그 해는 한영애, 시인과 촌장, 어떤 날의 음반이 발표된 해이고(구체적인 앨범 이름은 생략한다), 이 음반들은 늦깎이들의 실질적 데뷔작으로 오랫동안 참고 머금어 왔던 슬픔을 '이제 드디어' 분출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현식의 3집 앨범이나 들국화 1집 앨범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들국화의 앨범은 한 해 전에 발매되었지만 '파장'이 본격적으로 번진 것은 1985년보다는 1986년이었다). 많이 알고 있겠지만 이 음반들은 모두 '동아기획'이라는 레이블(상표)을 달고 나왔는데, 동아기획제(製) 음반에 대한 일반적인 평은 여기서 간단히 할 성질의 이야기는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김두수의 데뷔작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