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빈 [홍라녀]
아주 먼 옛날.
발해 제국의 황제에겐 “홍라녀”라는 공주가 하나 있었다.
황제는 공주를 총애하여, 공주가 원하는 무엇이든 들어주었고, 워낙 예뻐서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게 키웠다.
그렇게 공주가 16세가 되던 해, 황제는 공주에게 최고의 부마를 정해주기 위해 3달에 걸쳐서 사윗감을 물색했고, 그 결과 4명의 젊은 남자들이 후보가 되었다. 한 젊은이는 문인, 또 다른 젊은이는 무인이었다. 그리고 셋째는 집에 거액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거부였고, 마지막 사람은 집안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권세가의 자제였다.
공주는 황제가 뽑은 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퉁소를 불었는데 4명 모두 음악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크게 실망한 공주는 외출 삼아 “경박호”라는 이름의 호수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어부로 살고 있던 한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공주와 어부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정이 들어 가까운 벗으로 사귀게 되었으나 황제는 격이 맞지 않는다고 하여, 크게 반대를 했다. 그리고 황제는 공주가 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가두었다. 궁에 갇혀 지내던 공주는 어부를 그리워하다 끝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황제는 크게 슬퍼하며, 총애하던 공주를 위해 공주를 경박호 폭포에 장례를 지내 주었다.
이 이야기는 발해의 몇 안 되는 전설 중 하나다.
발해.
그곳은 아주 오래전 고구려의 후예가 세운 나라로 확실히 우리의 역사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건 그리 많지 않다. 거기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중요하게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분명 그곳엔 우리의 선조들이 있었다.
아티스트 이유빈은 발해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담아내기 위해 주로 동양 악기들을 사용했고, 빠른 템포의 타악기를 사용하여 마치 말을 타고 만주벌판을 달리는 듯한 느낌을 주어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임을 표현하였다. 또 그는 중국과 일본 등의 여러 나라의 악기를 사용하여, 당시 발해가 당나라와 일본과 교역을 했음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발해에서는 당나라로 유학을 많이들 떠났다고 하는데 그들 대부분 “빈공과”라고, 하는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이 “빈공과”라는 시험은 저 멀리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도 보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역사를 그는 인도네시아의 ‘큰당’으로 표현하였으며, 우리나라 전통 북, 자바라, 징 등 우리 고유의 악기와 우리의 전통 5음계를 사용하여 발해가 우리 역사임을 표현하였다.
아티스트 이유빈은 이번 앨범 『홍라녀』에서 우리의 전통 5음계를 비롯한 동양의 음악적 요소뿐만이 아니라 피아노와 같은 서양의 악기와 더불어 벨칸토 창법 등 서양의 음악적 요소까지 접목하여, 단순히 “동서양의 만남”, “동서양의 조화”가 아닌 “동서고금”을 표현하였는데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단순히 발해 공주 홍라녀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이며, 우리의 역사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후손인 그들의 상무 정신을 잊지 말고, 자주적으로 살아가자!”라는 메시지를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고, 심혈을 기울여 직접 작사, 작곡을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