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중음악계에 이른바 ‘방배동 씬’이라는 게 이야기되고 있다. ‘씬(scene)’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썼지만, 1980년대 방배동 카페 거리에 모여들었던 일군의 젊은 음악가들을 말한다. 김지환, 하광훈 같은 작곡가가 있었고, ‘작사가 트로이카’라 불리었던 박주연, 지예, 함경문도 방배동을 자주 드나들었다. 이들은 새로운 팝 음악과 (당시 한국에선 쉽게 들을 수 없던) 일본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냈다.
당연하지만 이들이 만든 음악을 불러줄 가수도 필요했다. 김종찬은 변진섭, 최호섭 등과 함께 방배동 씬을 대표하는 가수였다. 지금은 ‘토요일은 밤이 좋아’란 박력 있는 노래로 기억되는 가수지만, 물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목소리는 도시의 무드를 연출하는 데 탁월했다. 이후 성인 취향의 발라드로 더 많은 명성을 얻게 되지만, 그의 첫 앨범은 방배동 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반이기도 했다.
김현철의 「포크송 대백과 Vol.2」가 선택한 ‘비’는 바로 그 시절의 김종찬과 방배동을 소환한다. 1986년 나온 김종찬 1집은 ‘사랑이 저만치 가네’와 ‘토요일은 밤이 좋아’란 히트곡을 만든 2집에 비해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대신에 방배동 사단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하광훈이 메인 작곡가로 전면에 나섰고, 지예, 박주연, 함경문이라는 이후 더 이름을 알리는 작사가들이 노랫말을 썼다.
앨범에선 방배동 씬의 큰형뻘인 조덕배가 만든 ‘내 사람아’가 라디오에서 자주 들렸지만, 김현철이 주목한 노래는 지예와 하광훈이 함께 만든 ‘비’였다. 김종찬뿐 아니라 하광훈과 지예 역시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하는 음악가들이었지만, 기존의 가요와는 다른 스타일의 팝 음악을 만들고 싶어하는 바람이 김종찬 1집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들이 주로 머물렀던, 강남의 도회적인 정서가 이 노래와 앨범 전체에 흩뿌려져 있다.
김현철은 원곡이 가진 메인 테마를 그대로 가져가며 멜로디의 선명함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리듬파워를 대동하고 새로운 리듬의 기운을 입힌다. 여기에 조삼희(기타)와 이태윤(베이스), 이상민(드럼)의 연주는 힙합 비트와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한다. 랩이 나올 때 밑에서 묵직하게 울리는 베이스 연주는 저음의 소리만으로 존재감을 갖는다. 간주의 비브라폰을 연상시키는 키보드 연주까지 더해지면 이는 마치 하나의 훌륭한 재즈 연주처럼 들리기도 한다.
‘비’는 김종찬의 음반에서 LP로 따지면 B면의 두 번째 곡이었다. 타이틀곡이 아니었고, 히트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노래를 기억하고, 이를 새롭게 다시 만들 생각을 하는 음악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김현철이 학창 시절 얼마나 많은 가요를 듣고 그 세례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다. 곡의 마지막 김현철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정처 없이 걸어보면은”이란 구절을 부르며 노래를 마무리한다. 이 멜로디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남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좋은 멜로디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와 멜로디를 다시금 알리는 것, 그가 「포크송 대백과」를 계속해서 진행하려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김학선/대중음악평론가)
김현철 - 포크송 대백과 Vol.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