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형은 대규모의 슬픔을 소유하고 있다. 아니 슬픔을 자유하고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슬픔을 소비한다는 얘기가 될 것 같다. 슬픔은 빈곤과 무소유에서 기인하는 바도 적지 않고 그 근저에는 존재의 고독도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구자형은 원초적 존재의 고독이랄 수 있고, 그 시선으로 눈 여겨 보거나 무심코 바라보았던 서울 뉴욕 도쿄 등의 풍경과 스쳐가는 사람들, 혹은 사랑했던 이야기들을 그 슬픈 도시의 풍경을 이룩하고 있을 것이다. 이 음반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 혹은 아름다움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