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Camping Two Decades]
지속적인 노력이 만들어 낸 야심찬 사운드!!
좋은 음악에 대한 기준은 다소 주관적이고 모호한 데가 있어 숫자 계산하듯이 명확하게 답을 내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좋은 음악들의 경우 분명 일정하게 수렴되는 공통적인 지점들이 존재합니다. 비록 시대에 따라 감성에는 다소 변화가 있을지언정 선호되는 스타일, 뮤지션들에의해 창작된 좋은 멜로디와 리듬, 이를 멋지게 구체화 시켜주는 사운드 메이킹과 레코딩 퀄리티는 이전에나 지금이나 거의 고정적인 불변의 요소입니다. 하지만 관점과 기준, 그리고 선호도가 다소 변화된 요즘에는 전문 스튜디오를 통해 이루어지는 양질의 녹음이나 믹싱, 마스터링에 그 가치를 두지 않고 홈 레코딩, 혹은 프로젝트 스튜디오에서 간편하면서도 (의외로) 괜찮은 녹음장비들로 앨범을 발매하기도 하지만, 좋은 음향공간을 가진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는 울림, 뛰어난 해상도와 볼륨감, 악기간의 상호 간섭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녹음, 믹싱, 그리고마스터링은 여전히 변치 않는 미덕입니다.
프로젝트 오리진(OriJIn)은 바로 그러한 가치를 지키고 추구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는 국내 아티스트입니다. 또한 그는 뛰어난 음향 엔지니어이기도 하고 다수의 음향 장비와 건축 도구에 관한 특허를 가지고 있으며 음향 설계뿐 아니라 좋은 음향 장비를 수입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현재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음향 전문 업체 ‘사운드트리’를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한데 이처럼 다양한 그의 모습들 중에서도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한 천직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역시 음반 작업입니다. 90년대 후반부터 국내외에서 다양한 음반창작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2011년부터 ‘오리진’이라는 프로듀서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주로 디지털 음원과 CD로 자신의 곡들을 소개해왔습니다.
(현재 멜론, 지니, 벅스등 국내 음원사이트에서 정식 서비스 중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싱글이나 EP앨범의 형태로 음반을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12곡의 정규앨범으로 프로듀서 ‘오리진’의 음악적 정수를 오롯이 담아냈습니다. [Camping Two Decades]라는 타이틀로 발표한 이번 앨범은 제목 그대로 프로듀서 오리진이 프로로 활동했던 20년 간의 시간을 돌아보며 음악으로 스스로를 정리하기 위해 준비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앨범의 수록곡 거의 전부를 혼자서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미디를 통해 신디사이저와 샘플들을 작곡, 연주, 편집해서 각 트랙의 악기들을 하나하나 디자인하고 그 소리로 작곡된 음과 리듬을 표현해 곡들을 완성해 나가는 방식인 이른 바 ‘원맨밴드’인데 혼자만의 힘으로 음악 전체를 모두 조율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현대의 산물인 ‘미디’를 활용한다 하더라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일단 모든 악기의 사운드적 특성, 특유의 음색과 맛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편곡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다 프로듀싱에 대한 노하우와 비전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야만이 가능한 작업입니다. 직접 악기로 다루지 않았을 따름이지, 미디를 통해 이 모든것을 이렇듯 제대로 구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된 일이며 일단 시간과 노력이 무척이나 들어가는 일입니다.
자! 이 앨범에 담긴 곡들 중 트럼펫과 색소폰 솔로를 들으며 이게미디로 만들어진 거라고 쉬이 예상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필자 역시 음악을 들었을 때 연주자가 직접 악기로 솔로를 한 것으로 의례히 짐작했을 만큼 여기에 담긴 관악기소리는 무척이나 그 느낌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전혀 미디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었다고 생각지 못했죠. 관악기들 블로잉의 뉘앙스가 이렇게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는데 요즘 미디 기술이 많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이렇게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연출해내는 건 전적으로 오리진의 노하우라고 생각되며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담겨진 음악들은 기본적으로 퓨전과 애시드 재즈의 범주에 포함된 법한 곡들입니다. 재즈 중에서도 비교적 대중들과의 접점이 많은 장르이긴 하지만 과거 80~90년대처럼연주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 지금 시대에서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것은 창작자가 상업적 이권보다는 순수한 음악적 시도와 열정에 더 큰 무게중심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리진은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과거 데이브 그루신이 수장으로 있던 명문 퓨전 레이블인 GRP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의 작품과 같이 깔끔하고 세련되면서도 사운드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균형감이 잘 잡혀있도록 하는 것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열두 곡 중 새롭게 쓴 곡은 총 네 트랙이며 나머지 여덟 트랙들은 기존 자신이 만들고 발표했던 세션에 소리를 다시 다듬고 일부 트랙을 새로 녹음하여 재탄생 시켰습니다. 8년이란 시간에 걸쳐서 발표된 곡들이기에 수록곡 간 약간의 성향 차이는 있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스타일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했고 이를 완성도 있게 만들기 위해 그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했다는 것이 절로 느껴질 만큼 곡 하나하나에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필자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들었던 곡을 몇 개 골라 이야기하자면 우선 세 번째 트랙인 ‘De Jaha’라는 곡을 꼽고 싶습니다. 이 곡은 일렉트로닉과 힙합이 한데 어우러진 비트에 트럼펫과 색소폰이 부유하듯 그림을 그려가는데 여기에 더하여 플룻과 일렉트릭 피아노가 다소 서로간에 거리감을 둔 채 연주됩니다. 일정한 구성과 흐름이 반복된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메인 테마가 쉬이 귀에 안 들어올 법도 하지만 전체 사운드의 흐름과 그루브를 염두에 두고 들으면 아주 멋지게 와 닿을 수 있을 겁니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오리진의사운드 메이킹 능력이 결코 범상치 않다는 걸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곡에 이어지는 네 번째 트랙 ‘Still So Young’ 은 음악적으로도 앞 트랙에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이국적인 코러스가 월드뮤직의 잔향을 추가로 풍겨냅니다. 그런가 하면 일곱 번째 트랙인 ‘Noodle Party’는 앨범 전체에서 가장 록적인 어프로치가 강한 곡입니다. 기타의 어택이 강하게 사운드를 주도하는 가운데 미디로 연출된 브라스가 곡의 임팩트를 더해줍니다. 이 곡은 열한 번째 트랙인 ‘Choko In The Summer’와 더불어 전문 세션맨 (베이스와 기타)이 동원된 트랙들 중 하나입니다. 아홉 번째 곡인 ‘Summer Sunset’은 복고적인 업템포 스윙의 밝은 분위기 가득한 흥겨운 넘버인데 여기에서도 브라스 파트가 곡의 전면을 이끌어갑니다. 물론 미디로 연출된 것이죠. 열한 번째 곡인 ‘Choko In The Summer’는 앨범 전체에서 가장 펑키한 리듬이 강조되어 있는 가운데 와우 기타가 감칠맛 나는 그루브감을 더해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중반부에 기타 세션 솔로가 좀 더 길게 나와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하지만 곡의 사운드는 아주 시원시원합니다. 이렇듯 총 열두 개의 트랙 중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제외한 열곡이 수록되어 있는 이 앨범은 프로듀서이자 작,편곡가인 오리진의 역량과 그간의 노력을 무척이나 잘 느낄 수 있으며 그가 무척이나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들을 자유분방하고 능숙하게 넘나들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줍니다. 혼자서 이 정도의 사운드를 구현해냈다는 점만으로도 호의 어린 평가를 내릴만한데 곡 자체의 음악적 매력 역시 훌륭하게 와 닿습니다. 이 앨범이 오리진 혼자의 능력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앞으로 더 깊고 넓게 펼쳐질 가능성에 방점을 둔 다면이 앨범은 더 좋게 받아들여지고 인정 받을 요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어떻습니까? 음악에 대한 뜨거운 창작 열정을 가슴에 20년 간 변함없이 간직한 채 계속해서 새로운 소리를 찾아 도전을 해나가는 모습이 멋지지 않습니까? 제겐 젊은 시절 반짝하는 재능을 보여주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다수의 음악인들보다 이렇게 음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은 채 계속 다듬고 발전시켜가는 오리진 같은 뮤지션이 훨씬 더 호감이 갑니다.
글/ MMJAZZ 편집장 김희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