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레시브마샬아츠록그룹에서 포스트힙합록그룹으로의 대 변신, 5년만의 불싸조 신보’
‘애절한 발라드 감성과 스웩이 공존하는 未來 명반 예고!’
"랩 뮤직은 제대로 된 방법으로만 쓴다면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방식으로 사용될 경우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제임스 브라운
[4집 제작의 辯: 한상철]
한국힙합은 현재의 한국 상황의 축소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우리 밴드가 충실한 힙합의 팬이기도 하지만 여러 의미에서 이번 음반의 제목은 <한(국힙)합>이 됐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힙합이라는 것이 한국화 되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묵묵히 지켜봐 왔던 세대이기도 하다.
-90년대 무렵, 힙합은 부잣집 친구들, 혹은 외국에서 전학 온 친구들이 주로 들었다. 왜냐면 대부분의 힙합 음반들은 2000년도 즈음에 와서야 국내 정식발매가 이뤄졌기 때문이다-조금만 덧붙이자면 어셔, 아웃캐스트 베스트, 삼성뮤직에서 나온 ATCQ같은 것들은 클린 버전으로 발매됐다. 그 무렵 유일하게 스눕 둑의 초기 두 장만이 MCA에서 '무삭제 발매'라는 광고와 함께 발매됨-. 정식발매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수입음반을 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90년대 중반에는 인터넷/PC 통신을 사용해 MP3를 다운받는 청소년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때문에 우탱클랜의 <Wu-Tang Forever>나 투팍의 <All Eyez On Me> 같은 두 장짜리 앨범을 사려면 그때 돈으로도 거진 3, 4만원씩을 지불해야만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 힙합은 마치 미국의 8, 90년대처럼 음지에 위치한 이들의 탈출구가 됐다. 따라서 돈이 많은 아이들은 더 이상 힙합을 들으면서 자신들만의 유대관계를 형성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힙합을 취하는 연령도 낮아졌다. 이는 아마도 접근성 때문일 것이다. 90년대 무렵에는 어린이들이 주로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유행어들을 많이 따라 했다. 하지만 개그 프로그램들이 점차 쇠락/성인화 되어가면서 한국 힙합이 그 틈새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영구 없다"같은 유행어 대신 입에 잘 붙는 Dok2의 랩을 흥얼거리며 돌아다녔다. 나는 학교 앞에 있는 떡꼬치집을 주로 가는데, 거기를 가보면 지금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를 대충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분식집에서 돈을 내면서 "내가 망할 것 같애?" 같은 Dok2의 랩을 읊조리곤 했다. 90년대에 개그맨이 되겠다는 어린이들이 많았던 만큼 지금은 랩스타가 되려는 이들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한국화 과정이 진행되어갔고 그러면서 '랩 레슨'이라는 것이 생겼다. 에릭B 앤 라킴에 의하면 랩은 길거리에서 배우는 거라 했는데 방안에서 진행되는 랩 과외에선 대체 무얼 가르치는지는 궁금하다. 이런저런 이력이 적혀있는 랩 과외 공고를 볼 때마다 새삼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에 다시금 놀라게 되곤 한다.
-인기 케이블 랩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랩퍼들이 미국엘 갔는데 정작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한명뿐이고 다른 심사위원들이 그것을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들의 가사에는 능숙한 본토 발음의 영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정작 생활영어가 안 되는 것을 보면 일전에 한국의 수능영어에 나오는 문법들 대부분이 쓸모 없는 영어라 비판하던 어느 미국인의 지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인기 랩 오디션은 마치 공무원 고시처럼 통과만 된다면 이후의 (행사) 수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가히 ‘힙합고시’라 호칭하는 것이 크게 어색하지 않다. 자연히 재수, 삼수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고 거기에는 상중하로 등급을 나누는 우열반 형식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스눕둑 앞에서 랩을 하겠다고 마이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미대사관 앞에서 부채춤을 추는 무리와도 데자뷔된다. 겉핥기 수준의 불필요한 영어 몰입교육, 우열반, 안정적인 밥벌이를 위해 비웃음을 감수해야 하는 것, 빨리 끓어오르고 빨리 식어버리는 패턴 등 한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들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처럼 본의 아니게 힙합은 여러모로 현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됐다.
-옛날에는 가난했지만 힙합으로 인한 성공 이후 갑자기 생긴 현물을 자랑하는 양상의 경우, 본토에서도 그렇게 한다고 얼버무리고는 있지만-이를 셀프-메이드라 칭함- 사실 이는 신문지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신규 사업 광고라던가, 일순간에 얼마를 벌었느니 하면서 자신의 금전적 상태를 자랑하는 대박 가게 창업자의 인터뷰들이 먼저 겹쳐진다. 신문지면에 등장하는 광고들의 업종들은 다양하다. 거기에 힙합을 추가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피트 록처럼 형체를 못 알아보게 샘플을 잘라 쓴다던가 아님 역 재생하는 식의 샘플링을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몇몇 한국 힙합 뮤지션들 중 행사나 음원 수익을 통해 어마어마한 돈을 만지면서도 정작 유명한 곡을 게으르게 통샘플하고도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 사례들이 있는데 이 역시 무척 한국적인 것 같다. 한국의 대형사고들이 유독 큰 기업들이 터지기 직전까지 쉬쉬하다가 일어나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흑인들의 문화와 한국적인 문화의 교집합점을 한번 생각해봤다. 흑인 갱들이 총을 쏘는 가사들이 더러 있는데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 역시 군복무 도중 총을 사용해 봤으며, 미국의 흑인들이 노예제도를 겪었다면 한국인들 역시 일제 식민지 경험이 있다. 과거 미국 힙합에서 다뤄왔던 여성관련문제들 또한 한국사회와 많이 닮아있다. 우리 역시 얼추 힙합의 민족인 셈이다.
-이미 많은 한국 랩퍼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최근에 드디어 크리스찬 랩 스타가 생겼다. 그동안 이게 왜 안나오나 싶었다.
"힙합은 더 이상 신선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전혀 없다. 모든 것은 돈에 의해 움직이고... 그들의 앨범에 더 이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앙드레 3000 (아웃캐스트)
불싸조의 2016년 작 [한(국힙)합]은 작년(2015)년 여름 이틀 동안 무대륙에서 레코딩됐다.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의 기타연주자 박현민(a.k.a. ninaian)에 의해 녹음됐으며, 퍼커션 연주자 정상권(a.k.a. Quandol)의 연주 경우 본 작이 힙합 앨범인 만큼 불싸조의 이전 작을 위해 과거 그가 녹음했던 소스들을 샘플링해 재활용했다. 무엇보다 드러머 김선엽의 합류로 인해 우리는 더욱 힙합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서명훈(a.k.a. nuh)의 그루브감 또한 보강됐다. 앨범 작업을 하면서 영향 받았던 힙합 클래식들은 다음과 같다. 본 앨범과 함께 듣기를 권장한다.
* Ultramagnetic MC's [Critical Beatdown] (1988)
* 2 Live Crew [As Nasty As They Wanna Be] (1989)
* Black Sheep [A Wolf In Sheep's Clothing] (1991)-사실 저번 앨범에서도 여기서 샘플링을 했다-
* Main Source [Breaking Atoms] (1991)
* Slick Rick [Behind Bars] (1994)
* Dead Prez [Let's Get Free] (2000)
* ‘신세대 록 클래식 MC 시리즈 3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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