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일렉트로닉/인더스트리얼/미니멀리즘…
예상하지 못했던, 그래서 예측을 뛰어넘는 결과물
M.E.D. X OTAKHEE [PSYCHEDELIC WEATHER]
오랜 시간 홀로 작업실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소리를 다듬어 나가며 어렵사리 완성했던 첫 작품 “Smoked Jazz”가 세상에 나왔을 때 열광하는 이들은 분명 있었지만, 사실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봐준 사람이 많았다거나 합당한 관심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작품의 주인공인 프로듀서/음악가 오타키(그는 한국인이다.)는 곧이어 새로운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에는 MC가 필요했다. 그가 음악을 만들면서 떠올렸던 MC들은 그가 평소에 즐겨 들었던 음악 안에 있었다. 당시 그가 자주 들었던 프로듀서 매드립의 레코딩에 자주 등장하는 M.E.D.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프로듀서를 미국 음악 관계자들이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오타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트위터로 멘션을 보냈고, 만들어 둔 음악을 보냈다. 그리고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며칠 후 M.E.D.로부터 흔쾌히 작업을 해보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타키와 M.E.D.의 공동 작업/앨범인 “싸이키델릭 웨더”의 출발점이다. 애초에는 1곡만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M.E.D.가 추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작업에 만족한 M.E.D.는 끝나기가 무섭게 작업을 더 해보자고 제안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두 사람은 어느덧 서로를 신뢰하는 음악적 파트너가 되었고, 빠른 시간 안에 여러 곡을 완성해냈다. 오타키도 M.E.D.도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기대하지 못했을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M.E.D.의 동료인 디제이 롬스와 오타키의 첫번째 작품의 조력자이기도 했던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스크래치가 보태지면서 이 앨범은 완성되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앨범을 앞에 둔 채로 이 음악의 장르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앨범인지, 이 음악가가 얼마나 유명한지 등등을 따지지만 사실 불필요한 일이다. M.E.D.는 만난 적도 없는 태평양 건너 프로듀서에게 프로필이나 포트폴리오 같은 걸 묻지 않았고, 그냥 그가 만든 음악을 듣고 이 작업을 해야겠다고 맘 먹었다. 음악이란 그렇게 듣고 믿고 좋아하면 되는 일이다. 이 앨범 역시 그렇게 들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 장애물을 뛰어 넘으며 만들어진 이 앨범의 작업 과정이 그랬듯, 앨범을 듣는 동안 음악적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것 같은 즐겁고 새로운 경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분명 이 작품은 프로듀서 오타키에게도, 그를 알지 못했던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의미 있는 앨범으로 남을 것이다. ‘국내 음악계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작품’이라고 말했을 때 오타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에서든 해외에서든 누가 듣던 간에 좋은 음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여부다.” (글: 김밥레코즈)
재즈 그리고 소울 샘플링을 기반으로 비트를 만들어 오던 프로듀서 오타키는 변칙적인 작법을 통해 별개의 위치에 도달한 아티스트다. 그는 일반적으로 힙합에서 통용되는 샘플링의 문법과는 비교적 차별점을 두는 편이었는데, 그러니까 힙합의 접근 방식보다는 오히려 뮤지끄 콘크레토(Musique Concrete: 구체 음악) 작업이라 명명할 만한 부분들이 더러 존재했다. 이를 테면 강태환 선생의 연주를 샘플링한 것 같은 대목은 이런 분류를 더욱 명확히 해내는 지점이었다. 뭐 사실 DJ 쉐도우(DJ Shadow)의 몇몇 작품에서도 확인 가능하지만 현대음악/프리 재즈는 꽤나 훌륭한 샘플링 거리이긴 하다. 단, 프로듀서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마치 MPC를 든 선 라(Sun Ra)가 한국의 어느 지하실에서 레코딩한 것 같았던 첫 음반 [Smoked Jazz]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은 오타키는 이번에 더욱 강력한 동반자와 함께 돌아왔다. 미국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는 힙합 레이블 스톤스 쓰로(Stones Throw)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MC MED(aka Medaphoar)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월드클래스 언더그라운드 MC의 보컬 트랙이 비로소 한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힙합 프로듀서의 비트와 만나게 됐다. 사실 바로 앞 문장에서 언급한 '한국'과 '힙합'은 이 음반을 설명할 때 무의미한 단어다. 아무튼 이 두 인물의 조합만으로 놓고 봤을 때도 굉장히 스릴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예측 정도가 가능했다.
그리고 본 작은 그러한 예측을 이상하게 뛰어넘는 결과물로써 돌출됐다. 약동하는 MED의 랩, 그리고 오타키의 에스닉한 비트는 상호 보완해 내면서 앨범을 듣는 이들을 잠식시켜 갔다. 이는 늦은 밤 약간은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로 들으면 꽤나 멋지게 들린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상태가 그렇다- 선 라의 레코드들이 그렇듯 이 역시 수상한 고대의 신전에 갇혀 있는 이미지 등등을 떠올리게끔 만들기도 한다. 날카롭다기보다는 예민한 샘플링웍 그리고 프로덕션이다.
앨범의 인트로 트랙 'Wurrup'에서부터 앨범의 색을 확고하게 각인시켜 낸다. 무엇보다 곡에는 매드립(Madlib)의 그룹 룻팩(Lootpack)의 멤버로, 그리고 국내 DJ들 사이에서는 훌륭한 훵키 브레익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는 브레익 레코드 [Hamburger Hater Breaks]로 알려진 DJ 롬스(DJ Romes)가 스크래치를 담당하면서 앨범의 퀄리티를 보증해내는 역할을 했다. 무심한 듯 치밀한 비트가 내내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Mass Hysteria'의 경우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듀서인 '당산대형' DJ 소울스케이프의 스크래치를 확인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의외의 명인들이 앨범 안에 고루 포진되어 있다.
두뇌를 강타하는 스네어 연타가 불길하게 엄습하는 'P.E.G.A', 그리고 'Through The Air'에서는 위협적이면서도 확고하게 자신만의 비트를 느리게 새겨 갔다. 'Blank 2'의 경우엔 오히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15 Step'의 인트로 비트 같은 것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굳이 애써 본 작을 힙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음이 이런 예시를 통해 확실시된다. 스크래치로 멜로디를 새겨 넣고 주술적인 스네어의 공명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Psychedelic Weather'는 앨범 자체를 특징짓는 하나의 본보기로써 완수됐다.
'Wurrup'과 'Mass Hysteria'의 경우에는 인스트로멘탈 트랙까지 앨범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비트의 행간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에겐 반갑게 다가갈 것이다. 차가운 절규와도 같은 본 작의 비트들은 아인스튀어첸데 노이바우텐(Einsturzende Neubauten) 류의 초기 인더스트리얼, 혹은 안티콘(Anticon) 소속 아티스트들의 작품들과 교집합 점 또한 얼추 엿보이기도 한다. (중략) 불길한 격렬함 위에 음(音)의 파편들을 파괴적으로 결합해낸 지점에 위치한 레코드다. 또 전반적으로 여백을 제대로 활용해내고 있는 드문 작품인데, 알다시피 이렇게 여백에 집중하는 경우 그 의도를 확고히 관철시키지 못하거나 혹은 정교하지 못할 경우 꽤나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본 작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은 채 하고자 하는 것을 완벽하게 매듭지어냈다. 소란스럽지 않은 장엄함, 그리고 빛이 거의 없는 명상적 세계관이 서서히 청자를 조여 온다. 글: 한상철 (불싸조)
[MED aka Medaphoar]
90년대 웨스트코스트 힙합 트리오 룻팩의 걸작 [Soundpieces]로 데뷔한 이래 콰지모토(Quasimoto)의 첫 앨범, 매드립의 블루 노트 앨범 [Shades of Blue] 등 수많은 중요한 레코드에서 마이크를 잡아왔다. 2005년도에 발표한 데뷔작 [Push Comes To Shove]에는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와 제이 딜라(J Dilla), 매드립 등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명 프로듀서들과 함께하면서 씬을 뒤흔들었고, 2011년에 공개한 [Classic] 역시 매드립은 물론 알케미스트(Alchemist), 카림 리긴스(Karriem Riggins), 탈립 콸리(Talib Kweli) 그리고 알로에 블랙(Aloe Blacc) 등의 아티스트들을 대거 참여시키면서 한 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완수했다. 차분하면서도 특징 있는 목소리 톤과 올드 스쿨 풍의 선명한 랩을 전달하는 MED는 여전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내는 씬의 탑 클래스 아티스트로서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