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허클베리핀 (Huckleberry Finn) 디지털 싱글 발매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
모든 편견을 넘어선 거부할 수 없는 중독, 허클베리핀
한국인디음악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밴드 '허클베리핀'을 빼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1집 [18일의 수요일]과 3집 [올랭피오의 별]을 올려놓았고, 4집 [환상...나의 환멸]로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상을 수상했다. 대중음악 전문 무크지 [대중음악 SOUND]가 인디음악 전문가 36명에게 설문조사를 해 발표한 '한국 인디음악 18년 역사를 빛낸 명곡 100선'에서, 허클베리핀의 대표곡 '사막'은 '인디 명곡 톱10' 안에 포함되기도 했다.
시대와 현실을 호흡하는 이기용 특유의 상징적인 노랫말들은 강렬한 기타리프와 보컬 이소영의 목소리를 통해 한층 힘을 더한다. 그들의 음악에는 청춘의 쓸쓸함과 세상을 향한 분노,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사람을 향한 진한 애정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들이 왜 한국 인디음악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밴드인지를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5집 [까만 타이거]를 거치며 한층 출렁이는 리듬과 신디사이저의 강렬한 사운드를 더해 팬들과 관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던 그들은, 앨범 활동을 마무리할 시점인 지난 2012년 7월 18일 수요일부터 자신들이 운영하는 홍대 인근의 바 (bar) 'SHA'에서 '18일의 수요일'이라는 이름의 공연을 시작했다. 자신들의 1집 [18일의 수요일]과 같은 이름의 이 공연은, 돌아오는 다음 '18일의 수요일'까지 장장 62주 동안 이어진 장기 프로젝트였다.
매주 수요일마다 매번 다른 구성과 주제로, 짧지 않은 1년 반의 시간들을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5집의 음악적 색깔을 떠올려본다면 쉽게 연결되지 않는 온전한 '어쿠스틱' 공연이기도 했다. 무대에서 보여주던 뜨겁고 락킹한 그들만의 퍼포먼스는 이 시간들을 거치며 정제되고 단련되었고, 많은 음악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새 음반으로 터져나올 것 같아보였던 음악의 결과물들을 뒤로 한 채, 그들은 예상보다 오랜 칩거에 들어갔다.
62주만큼의 시간이, 다시 흘렀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돌아왔다.
늘 곁에 머물렀던 것처럼, 조용하고 무심하게.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
긴 휴식을 걷어낸 허클베리핀이 2015년 11월 18일, 그들의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다.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이번 곡은, 곡을 쓴 이기용의 고민과 지난 시간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가사의 많은 부분이 제주 김녕에서 쓰여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면서 여러방향으로 걸어가기도 하고 깊이깊이 가라앉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바로 저 자신이 그런 시간을 겪고 있을 때 만들어진 곡입니다.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노래가 나오기까지 유독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당시에는 결국 실패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2011년 가을에 만들기 시작해 2015년 가을이 되어서야 완성되었습니다.' (이기용)
기존의 허클베리핀의 음악이 외침에 가까웠다면, 이번 싱글곡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감성의 온도에 있다. 강렬한 신디사이저를 앞세웠던 5집 [까만타이거]의 정서에서 나아가 한층 절제된 느낌으로 진일보한 이번 싱글은, 그동안 허클베리핀이 음악적으로 고민한 지점이 어디에 닿아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신디사이저의 사운드와 강렬한 코러스를 과감히 걷어내고 기타 사운드를 덧입혀 잔잔하게 출렁이는 리듬을 전반에 배치했다. 보컬 이소영은 한층 여유롭고 깊어진 목소리로 돌아왔다. 허클베리핀의 이번 싱글은, 그들이 보낸 제주에서의 시간들을 대변하는 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말을 거는 제주의 바다를 닮았다.
'이 곡을 지난 이틀 동안 수도 없이 들었다. 첫 도입부부터 1분까지, 처음 감상했을 때부터 '멋진 곡'이라는 판단이 섰다. 확실히 허클베리 핀은 '들리는' 곡을 만들 줄 안다. 템포나 속도에 상관없이, 곡의 표정에 관계없이,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팝송'을 써내는 '록' 밴드다.
이 곡에서도 마찬가지다. 키보드와 베이스 연주가 안개처럼 짙게 깔린 뒤에 인상적인 울림을 지닌 북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소리의 저 뒤편에서 다가오고 이내 보컬과 기타가 등장하는데, 전체적으로 과한 연출 없이 3분 30초간 밀도 높은 집중력으로 듣는 이들을 붙잡는데 성공한다. A를 도입부로, B를 후렴구로 놓고 설명하자면, A에서 이 요소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물러서거나 전면에 나서면서 긴장감을 유지하고, B에 이르면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지면서 어떤 풍경 하나를 듣는 이들에게 제시해준다. 그리고 적어도 나에게, 그것은 제주도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홀로 서 있는 어떤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자꾸만 이 장면이 떠올라서 12월에는 제주도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5집 [까만 타이거]의 첫 싱글이었던 'Girl Stop'과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거의 대척점에 위치한 노래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운드와 제목을 포함한 가사 모두 어둡고, 침잠해있으며, 아프고, 쓰라리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체험이건, 결코 잊을 수 없을 강렬함에 맨 몸으로 노출되었던 자가 써내려간 육필 수기 같은 곡이라고 나는 느꼈다. 이 곡이 먼저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6집은 아마도 허클베리핀의 역사상 가장 깊이 있는 앨범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