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의 재발견 장효석 3집 [Walk The Talk]
한국의 대중음악 씬에서 연주자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가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진 국내 대중음악의 성향 하에서 연주자들은 대부분 인기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 보컬리스트들만 바라보며 음악을 평가하고 호감을 보내는 대다수의 대중에게 전문 연주자는 조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문 연주자나 연주 그룹의 음악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일이 잦아진 편이다. 천편일률적인 보컬리스트들의 창법과 건반 중심의 팝 사운드에 싫증을 느낀 대중이 연주자가 중심이 된 다른 스타일의 음악에 매료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주자가 주연인 앨범은 여전히 큰 약점을 안고 있다. 보컬이 만들어 내는 선명한 멜로디의 곡에 비해 대중의 귀에 빠르게 각인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의 귀에 이미 멜로디가 각인된 레퍼토리들을 연주 앨범에 담는다면 어떨까?
국내 최정상의 연주력을 인정받아 온 색소폰 연주자 장효석은 자신의 세 번째 정규 앨범 [Walk The Talk]을 통해 연주 음반과 대중적 기호의 접점을 찾아낼 수 있는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Girl’s Generation’이 대중적 기호의 접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 이 곡은 이승철의 히트곡 ‘소녀시대’의 멜로디를 색소폰으로 그린 곡으로, 이승철을 기억하는 중년의 대중들은 물론 이승철의 곡을 리메이크한 걸그룹 소녀시대의 팬들에게도 쉽게 어필할 수 있는 넘버다. 일견 대중성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곡 선정으로 보이지만 음악을 직접 들어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원곡의 멜로디를 그대로 재연하고 있지만, 필리 소울을 연상시키는 따뜻한 소울 그루브가 곡 전체를 감싸면서 장효석 주연의 온전한 싱글 넘버로 매력을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멜로디로 대중에게 어필하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과 매력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
앨범에는 ‘Girl’s Generation’ 말고도 친숙한 멜로디의 여러 곡이 장효석 스타일로 재해석되어 담겼다. 정엽의 대표 발라드 ‘Nothing Better’, 전람회의 ‘취중진담’, 봄여름가을겨울의 ‘Banana Shake’ 등을 색다른 재즈 넘버로 접할 수 있다는 건 팝 기호의 대중에게도 즐거움이 되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싱어송라이터 김현철이 보컬 및 키보드 피처링으로 참여한 타이틀곡 ‘Finding you’를 비롯, 더원, 버블시스터즈 등이 보컬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들 또한 팝 대중이 이번 앨범에 빠르고 쉽게 매료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수준 높은 보컬리스트들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전개되는 장효석의 색소폰 멜로디에서는 조연을 살려주는 절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Song Review
장효석의 이번 앨범을 통해 실력파 연주자가 대중음악씬에서 속된 표현으로 ‘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인맥의 향연’이라 해도 무방한 수록곡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1. Banana Shake
봄여름가울겨울이 1996년 발표한 ‘바나나 셰이크’의 커버곡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직접 편곡에 동의하고 응원을 전했다. 훵키 스타일의 퓨전 재즈곡으로 과하지 않은 경쾌함이 앨범의 문을 여는 곡으로 안성맞춤이다.
2. Walk The Talk (feat. T.S.T)
앨범 제목과 곡의 제목이 같다. 장효석이 오랫동안 공연과 녹음 세션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는 T.S.T(트럼펫, 색소폰, 트럼본)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서로 다른 관악기들의 음색이 교차로 이어지며 다채로움을 전한다.
3. Girl’s Generation (소녀시대)
원곡자인 이승철이 흔쾌히 리메이크를 허락해 앨범에 수록될 수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악기 편성이 두터워지면서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고조시킨다. 후렴구에서 누구나 원곡의 가사를 흥얼거릴 수 있다는 점에서 흥겨움이 배가된다.
4 Let Me Out (feat. Bubble Sisters)
담백한 팝 멜로디의 곡으로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는 버블 시스터스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장효석의 색소폰이 곡을 이끌고 경쾌한 베이스 연주가 곡의 흥겨움을 지속시키는 조화로운 곡이다.
5. Finding You (feat. Kim Hyun Cheol)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김현철이 피처링 뮤지션으로 참여하여 목소리를 보탰다. 재즈 친화적인 김현철 특유의 세련된 터치가 매력적이다.
6. Interlude
‘휴지부(interlude)’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는 3분 23초 길이의 온전한 트랙이다. 엇박과 전자 악기를 활용한 의도적인 변형이 돋보인다.
7. The Day We First Met (우리 처음 만난 날, feat. The One)
‘나는 가수다 2’로 뒤늦게 빛을 보고 있는 걸출한 보컬 더원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색소폰 사운드가 보컬을 따라 잔잔하게 흐르다 더원의 보컬과 함께 폭발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8. Nothing Better
곡의 주인인 허니듀오(정엽, 에코브릿지)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어렵지 않게 앨범에 실렸다. 원곡과 마찬가지로 여심을 녹이는 부드러움이 곡의 매력이다.
9. In Vino Veritas (취중진담)
스테디 넘버로 자리하고 있는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색소폰 연주로 풀었으며, 곡의 주인인 김동률도 커버를 흔쾌히 허락하고 응원을 전했다.
10. The Light In You (feat. Koo-K)
가볍게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절제된 훵키 넘버.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이고,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사운드가 절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11. Little Drummer Boy
12. Silent Night, Holy Night
연말의 따뜻함을 만끽할 수 있는 친숙한 두 곡의 캐롤이 보너스 트랙으로 담겨 있다.
2012.10 대중음악평론가 이용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