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20주년 기념 컴필레이션 [인디 20] 보도자료 “뜻 깊은 인디 20년의 자작농 역사를 자축하다”
역사야말로 진정으로 자랑스럽고 무서운 것이라면 일천한 것에서 오랜 시간을 통해 퇴적한 것으로 승격하는 과정은 모든 유무형물의 숙원이다. 예술은 말할 것도 없다. 대중음악부터가 유구한 역사를 기록한 고전음악 진영의 멸시에 시달리다가 100년이 넘는 이력을 축적하면서 엄청난 무게를 얻었다. 서구의 영향 아래 생성된 우리의 인디에 가장 절실히 요구된 제1 원소도 바로 역사였다.
1995년, 주류만이 횡행하던 때, 그것의 일방통행에 대해 회의적 시선이 집결하던 때, 기성에서 탈피한 새로운 음악적 대안에 대한 욕구가 솟구치던 때, 여명을 밝히며 실체를 잡기 시작한 인디는 어리둥절하고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출발했다. 혁신과 시도를 키워드로 삼으며 대안의 영토를 찾던 사람들은 이 흐름과 호흡이 지속적으로 부흥해 보란 듯 역사를 가지게 될 먼 훗날을 불안 반 확신 반으로 상상했다.
감격스럽게도 지금 우리는 인디 20년의 역사를 목격하고 있다. 국내 인디 신은 1995년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추모공연이 클럽 ‘드럭’에서 열리고 크라잉 넛을 비롯한 몇몇 밴드의 난장이 정례적으로 펼쳐지면서 점화되었다. 홍대 신촌의 라이브클럽에서 발진한 인디 음악은 그 사이 지지와 주시 그에 비례한 질시와 냉대가 교차하는 무수한 성쇠 과정을 통해 나름의 지금에 이르렀다. 확실히 우리의 인디는 그간 활동이 간헐적이던 ‘밴드’들이 집단적으로, 공격적으로 세를 불리는 전기를 마련했다. 밴드문화의 정착! 그러면서 크라잉 넛, 노브레인을 거쳐 2000년대 들어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등은 메인스트림에 충격을 가하는 인디의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인디 밴드들의 자생(自生)성은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변화를 갈망하는 음악수요자들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음악은 미디어를 통해 주어진 음악을 막연히 접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 듣는 것’이라는 명제를 또래의 젊은 층에 유통시키면서 인디의 청취 층 확산을 도왔다. 일각의 영리한 언론도 미래의 시장성을 포착해 그것이 회자되는데 부분적으로 기여했다. 아직 시장 지분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그러면서 20년간 ‘정서 지분’만은 확실하게 수확했다. 변화의 샘으로서 인디를 바라봐야 한다는 점은 음악종사자와 대중 누구나 공감하게 된 것이다.
인디 신은 음악의 대전제인 실험과 도전의 장이 실천되는 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의 조건이라는 다양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딱지가 붙는 동시에 어느덧 물림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우리의 K팝 그리고 오디션 프로의 피치 높이기 난투가 점령한 주류 음악으로는 상투성과 작별하는 것, 우리의 다채로운 취향을 담보해줄 다양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인디는 시작점이라고 할 펑크와 뉴 웨이브, 힙합, 얼터너티브, 브릿팝, 랩 메탈, 포스트 그런지 그리고 2010년대 전후로 부상한 약간은 희화화된 음악, 유약한 포크적 사운드 등등 별의별 스타일의 밴드들이 할거하면서 ‘대중’ 아닌 자신의 취향을 중시하는 ‘소중’을 포섭하면서 개체 인증에 성공했다. 자작농이라 할 그들과 함께 음악의 시제는 미래로 향하게 됐다. 자기만의 예술성은 음악가의 기본이다. 그 개성과 독자성으로 향하는 티켓을 인디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만으로 20년의 빛나는 쾌척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 주류 가수들의 일제히 싱글과 미니 판으로 전환했어도 인디 뮤지션들은 지금도 풀 앨범을 낸다. 미련하지만 우직한, 음악성의 보전 작업이다.
크라잉 넛, 노브레인, 황신혜밴드, 이장혁, 피아, 장기하와 얼굴들, 불나방소세지클럽 그리고 유발이의 소풍, 최고은 등 1세대와 2세대 인디 뮤지션 20팀이 인디 20년을 자축하는 앨범이다. 당연히 앨범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렇게 인디 뮤지션 각자가 다르고, 이토록 개성과 에너지에 충만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고 그런’, ‘그게 그거’와 같은 말은 애초 반입이 금지 된다. 자랑스럽다. 이 척박하고 무망한 세상에 20년을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남은 작업은 음악 판의 체질 개선을 간접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소중의 세를 불리면서 상승을 계속하는 것. 앞으로의, 그리 길지 않은 역사가 해결해주리라고 확신한다.
-글 : 임진모(음악평론가)
[인디20] 인디20 파트1
홍대 인디 씬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년이면 갓난아이가 성인이 될 나이다. 그 20년 동안 우리 인디 씬은 기뻐도 했고, 넘어져도 봤고, 행복하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희로애락의 20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니, 감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야속하기도 하다.
[인디20]은 그 성인식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씬'도 한 명의 음악가와 같아서 20년의 세월이 지나면 노쇠하고 쇠해지기 마련인데 이 앨범을 듣고 있으니 그 세월의 법칙은 한국 인디 씬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팔팔하고, 힘이 넘치고, 유머가 살아있고, 무엇보다 창작의 활기가 뜨겁다. 90년대 후반 전성기보다 관심을 덜 받고 있다는 푸념도 들리곤 하지만 음악적 완성도는 그 때에 못지 않은 것 같다. 아니, 그 이상이다.
홍대 인디 씬의 시작이 언제였느냐에 대해서는 씬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대부분이 동의하는 중론은 1995년 4월에 클럽 드럭에서 벌어졌던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이다. 이듬해인 1996년엔 [Out Nation] 1집이 발매됐고 여기엔 크라잉넛의 '말달리자'가 수록됐다. 이후 델리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노브레인 등 1세대들이 주류 못지않은 관심을 받았고 홍대 씬은 한국 음악계의 지형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한 때는 인디를 두고 'B급 문화', '아마추어리즘' 같은 표현도 많이 등장했는데 이젠 그런 인식도 거의 사라졌다. 이 씬의 베테랑들이 훌륭한 연주와 사운드 노하우로 주류보다 더 좋은 앨범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20]은 그저 기계적으로 기획된 20주년 기념품이 아니라 현재의 한국 인디가 어느 정도 실력이고 이를 통해 그 미래는 어떨지 점쳐볼 수 있는 자리다. 한 데에 모이기 쉽지 않은 이들이 한 장의 앨범 안에서 마음껏 기량을 뽐낸 올스타 컴필레이션이기도 하다. 한국 가요계 역사상 가장 험난한 불황을 통과하면서도 한결 같이 훌륭한 음악으로 타협 없이 올곧은 길을 걸어온 이들의 한 곡 한 곡에 진심의 존경과 감탄을 보낸다.
[인디20] 인디20 파트1
1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그녀의 로션'
아! 이 고색창연함. 왠지 리뷰도 잠자리안경 쓰고 만년필 들고 써야할 것 같은 강한 복고의 향수. 이렇게 능청스러운 레트로 앞에선 웃어야 하는 걸까 감탄해야 하는 걸까. 고전에 빠진 진중함과 유머를 동시에 가진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자의 향기를 킁킁거리는 이상한 남자 캐릭터에 소울의 비기인 오르간 연주가 흐르니, 그 야시시한 장인의 느낌이 정말 오묘하다.
2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고독사'
특유의 '코믹 신파극' 같은 분위기는 이번에도 여전하다. 옛날 유랑악단 같은 음악에 '얼마나 알았다고 말이 짧아지냐'는 가사를 능청스럽게 얹어놓는다. 무조건 재밌는 것만도 아니다. 웃기는 '가사'로 웃기긴 쉽지만 웃기는 '음악'으로 웃기기는 어렵다. 노골적인 멜로디와 연주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재밌다. 웃픈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이상하고도 매력적인 노래다.
3 불독맨션 'Feel so right'
어쿠스틱 기타만 퉁기는 처음 8마디까지만 해도 이렇게 신나는 곡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킥이 들어가고 퍼커션, 일렉 기타, 베이스까지 갖춰진 완성된 리듬라인은 몸을 가만히 두기 힘든 환상적인 펑크 그루브다. 독특한 건 아주 신나면서도 담백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자극 없이도 뛰게 만드는 것, 그게 불독맨션 15년의 노하우일 것이다.
4 로큰롤라디오 'Dear Prudence'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처음으로 클럽에서 이들을 보고서 '와 정말 연주 잘하네'라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역시나 이들은 승승장구했고 2014년엔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 수상, SXSW 참여에 이어 LA 위클리로부터 "로큰롤라디오는 미국인이 생각하는 K팝보다 훨씬 더 앞선 음악"이라는 극찬도 받았다. 이 곡에서도 여지없이 이들의 실력을 느낄 수 있다. 기타와 드럼의 조금씩 난이도 있는 연주에선 이들의 탄탄한 기본기를 확인할 수 있고, 전통적인 로큰롤엔 없는 공간감 연출과 반전 구성에선 감각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작년 10월에 발표했던 '붉은 입술'도 그렇고, 결코 실망을 주지 않는 곡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올해에도 이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5 최고은 '너에게'
라이브 클럽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듣는 것 같은 심플한 기타 독백이다. 극도로 단출한 편곡이 주는 그 은은함이 좋다. 은근한 그루브와 천천히 곱씹게 되는 가사의 멋도 좋다.
6 크라잉넛 'Six pack'
2006년 [OK 목장의 젖소]에선 '마시자'를 외쳤던 크라잉넛이 이번엔 '식스팩'을 외친다. 물론 여기서의 식스팩이란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이 아니라 팩소주, 혹은 종류가 무엇이든 '한 팩' 마실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생신날에 쏘주팩', '간에 붙은 식스팩', '얼굴 위에 오이팩' 등, '팩'으로 줄 수 있는 갖가지 언어유희를 쏟아내며 특유의 무모하고 장난기 넘치는 신나는 펑크를 만들었다. 진짜 유쾌하다. 술 노래인데 왜 이렇게 긍정의 기운이 샘솟는 걸까.
7 장기하와 얼굴들 '그 남자 왜' (Nahzamix(나잠수 리믹스)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에 수록됐던 '그 남자 왜'를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나잠수가 리믹스한 곡이다. '그 남자 왜'의 원곡을 들어봤다면 그 곡의 비트와 리듬이 초기 힙합과 닮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나잠수는 그 점에 착안한 듯 그 작은 유사성을 더 본격적으로 팽창시켰다. 훨씬 센 비트를 넣고 신스 연주를 추가해 완전히 다른 곡으로 바꿔놨다. 장기하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곡 하나가 이렇게 완연한 댄스 음악으로 다시 태어날 줄은 몰랐다. 나잠수의 센스는 정말이지 예측불허다.
8 요조 '불륜'
요조가 지금까지 발표한 가장 처연하고 처절한 노래 아닐까 싶다. "너를 사랑해"라는 가사도 이렇게 어둡게 부르면 그건 '싫어해' 혹은 '미워해'의 의미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곡 전체를 감싸는 몽롱한 공간감도 아름답기보다는 술취함, 멍함에 가깝게 들린다. 요조의 음악에 가장 흔하게 쓰이곤 하는 '귀엽다'는 형용사는 이 노래에만큼은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다.
9 이장혁 'Frankenstein'
이장혁 음악의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고독'인 것 같다.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내뱉는 독백 같다. 대부분의 곡들이 처연하고 쓸쓸하게 들린다. 이 노래 'Frankenstein'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친구 하나 있다면 난 아주 평화로울 거야"라는 첫 가사에서 벌써부터 진한 상실감이 배어나온다. 그러나 이장혁이 기타 한 대에 자조를 노래하는 평범한 포크 싱어송라이터는 아니다. 그는 이 곡의 사운드스케이프에 불길한 드론 노이즈를 가득 흩뿌려놓았다. 공간계 사운드를 입고서 그의 음악은 스타일리시한 사이키델릭 포크로 변신한다. 깊은 정서와 쿨한 스타일, 양쪽 모두를 가진 그의 놀라운 재능이 이 곡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10 피아 'Fairytale'
이 노래에서 '동화'는 서로 다른 두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지금의 현실이 어린 시절에 읽었던 순수한 동화들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만 벌어지고 있어서 이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 동화라는 것이다. 피아는 그런 동화 같은 현실을 가장 동화적이지 않은 장르와 목소리로 피를 토하듯 강렬하게 비판한다. "날 산 채로 삼키려하는 거인들과 물거품으로 빚으려는 마녀들에게서 발버둥쳐봤자 이미 몸은 굳어버렸어"
11 마루 '그러나'
현재는 '밴드마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루가 1999년 인디 컴필레이션 에 삽입했던 곡이다. 다른 홍대 앞 밴드들과 달리 펑크가 아닌 하드 록과 팝을 지향했던 마루의 색깔을 잘 알 수 있는 곡이다. 무겁고 어둡게 가라앉은 헤비 기타에서는 얼터너티브의 기운도 느껴진다. 밴드마루는 올해 1월에 '꽃 미남 어디 갔어?'라는 서던 록을 발표하기도 했다. 장르 폭이 정말 넓은 밴드다.
지난 2월 27일, 라이브클럽데이가 폐지 4년 만에 부활했고 2200명의 인파와 수많은 기사들이 뒤따르는 뜻밖의 호응을 얻었다. 홍대 앞이 카페나 맛집이 아닌 라이브 클럽으로 화제를 모은 간만의 사건이었다. 아무리 앨범이 뛰어나도 반응이 좋으려면 타이밍도 좋아야 하는데 이 앨범엔 그런 운도 따르는 것 같다. 이 멋진 음악들이 지금의 분위기를 타고 작은 무브먼트의 기폭제가 되길 기대해본다.
- 글 : 이대화 (대중음악 평론가)
인디20 파트2
홍대 인디하면 어쩔 수 없이 대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96학번, 게다가 학교는 홍대. 인디 음악이 폭발하던 바로 그 당시에 나는 20살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쳤는데, 당연히 밴드를 결성해 록 스타가 되는 꿈을 수도 없이 꿨더랬다. 그러나 재능과 열정이 부족해 기타 연주를 취미로만 한정한 뒤에는 메뚜기처럼 클럽을 쏘다니면서 지금 이 씨디의 리스트를 장식하고 있는 밴드들의 라이브를 보고 또 봤다. 글쎄, 예를 들어 크라잉넛의 골수 팬이 아니고서야 나보다 크라잉넛의 라이브를 많이 본 팬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홍대 인디의 상징으로 떠올랐는지, 그 과정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비단 크라잉넛뿐만이 아니다. 홍대 인디에서 서식한 수많은 밴드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홍대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주관적인 믿음이 아닌 객관적인 상식과 역사로서의 영역에 속한다. 20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홍대 앞은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졌다. 그 많던 라이브 클럽은 몇 개 남지 않았고, 개성 넘치는 공간들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파워를 못 이겨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자리를 내줬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끝끝내 이 거리를 지키고자 했고, 현재에도 지키고 있는 뮤지션과 밴드들이다. 너무 지겹고 빤한 표현이라 쓰고 싶지 않지만, 특정 맥락이나 상황 속에서 쓸 수밖에 없는 표현들이 있다.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그렇다. 이를테면 홍대 인디는 우리 대중음악에 있어 다양성을 수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20년을 지켜온 그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박수갈채를 보낸다.
[인디20] 인디20 파트2
1 내를 델따주오 / 노브레인
어느새 노브레인의 이미지로 고착된 ‘넌 내게 반했어’가 아닌, 그들의 초창기를 연상케 하는 스카 펑크 스타일의 곡. 가사는 좋았던 어떤 시절, 즉 노스탤지어를 동경하는 노랫말들로 채워져 있다. 아마 최근 노브레인이 발표한 곡들 중 가장 순한 사운드와 언어로 표현된 곡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귀에 쫙쫙 달라붙는 멜로디와 리듬 파트가 인상적이다.
2 다시 처음으로 / 갤럭시 익스프레스
과연, 힘이 넘치는 섹시한 로큰롤이다. 일렉트로 효과음을 배경으로 기타, 베이스, 드럼이 몰아치면서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전형적인 갤럭시 익스프레스류(流)라고나 할까. 이런 곡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또한 관객들의 합창을 유도하는 코러스 파트일 것인데, 이런 이유로 라이브에서 특히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저나 ‘내를 델따주오’와 ‘다시 처음으로’라니, 인디20년을 기념하는 컴필레이션에 참 적확한 제목들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퇴행적인 정서가 아닌, 노스탤지어를 동경하는 동시에 새로운 20년을 약속한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3 The Way I Love You / 와이낫(YNot?)
와이낫하면 역시 리듬, 그 중에서도 이 곡은 육박하는 리듬 전개를 통해 높은 볼트의 설득력을 성공적으로 확보한다. 여기에 단순하지만 명료한 멜로디 라인이 포개지면서 그들이 지향하는 펑크 록(funk rock)의 어떤 완성형을 일궈낸다. 이런 곡이라면,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부러워할 이유 전혀 없다. 오랜 시간동안 단련된, 단단한 내공 같은 것이 느껴지는 곡.
4 아무래도 괜찮아 / 코어 매거진
코어 매거진은 확실히, 능숙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템포 조절에 능란하다. 이 곡이 이를 증명한다. 리듬을 느슨하게 풀어놓고, 주요 멜로디를 반복하는 매우 단순한 형식의 곡이지만, 그들은 끝날 때까지 결코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마무리에 여성 보컬의 살가운 웃음소리를 넣는 재치까지, 여러모로 그들의 실력이 헛된 명성 위에 건설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곡.
5 어쩌면 안녕 (peut-être, Adieu) / 유발이의 소풍
유발이의 소풍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가 생각난다. 뭐랄까, 시종일관 듣는 이를 웃음 짓게 하는 매력이 있는 보컬이자 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왈츠 리듬을 차용한 이 곡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즈와 팝이 동거하는 속에, 유발이의 목소리와 피아노 연주가 따스한 포근함을 선사한다. 이렇듯 목소리와 피아노, 두 가지만으로도 어떤 정서를 형성할 수 있는 재능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6 어디서 본 듯해 (Glen Check "Classic" Edition) / Nu Type
Nu Type의 노래를 글렌 체크가 매만진 곡.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알앤비/힙합의 끈적함과 일렉트로의 몽환성이 결합된 노래라고 정리할 수 있다. 입체적으로 구현된 사운드 속에서 흐르는 Nu Type의 가창과 랩이 한층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글렌 체크의 탁월한 솜씨 덕분이다.
7 아이언맨 / 트랜스픽션
이 곡으로 분위기는 극적으로 전환된다.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질주하는 악기 연주가 덧붙여진, 강렬하면서도 신나는 분위기의 로큰롤이다. 무엇보다 키보드와 기타에 의해 반복되는 코드 리프가 돋보이는 곡.
8 짬뽕 2015 / 황신혜 밴드
확실히, 황신혜 밴드는 선구자적인 밴드였다. 그들이 ‘짬뽕’을 발표한 이후 전국 몇 대 짬뽕 같은 것이 파워 블로거들에 의해 회자되고, 현재까지도 짬뽕 맛집을 찾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2015년에 맞게 버전업된 이 곡 ‘짬뽕 2015’에서도 중독적인 뽕짝 리듬 터치에는 변함이 없다. 이 곡 들으면서 짬뽕 한그릇 뚝딱하고 싶은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참고로, 내가 최고로 꼽는 집은 오목교에 있다.
9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 언체인드
내 이럴 줄 알았다. 2014년 있었던 노이즈가든의 공연에서 언체인드가 오프닝 밴드로 나와 이 곡을 불렀는데, “좋은 커버다. 싱글로 발표해도 되겠는데?” 싶었던 것이다. 원곡과의 차이는 리듬을 비롯한 전체적인 사운드에 있다. 더욱 강력하고, 육중하다. 이를 통해 노이즈가든의 것과는 차별화된 매력을 선사하는 곡.
10 나에게 쓰는 편지 / 김반장
베이스, 건반, 드럼, 보컬. 이 네 가지 악기를 반복적인 형태로 사용하는, 도돌이표 같은 노래다. 레트로한 감수성 위에 쌓아올린 김반장식 월드라고나 할까. 나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이 중언부언하지 않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곁가지 같은 것 모두 쳐내고 핵심만을 추출해서 그것을 음악으로 만들 줄 안다. 이 곡이 다시금 이를 증명한다.
- 글 :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