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初至終
-원래는 남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양해를 구하고 몇몇 기록을 적으려 한다.
앨범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잠언 1:26)]이 나왔을 무렵, 어느 '음악평론가'님과의 대화 도중 불싸조의 앨범을 한 두명만이 들어도 상관 없다는 말을 했다가 혼난적이 있다. '한 두명이 듣길 원하는 음반을 왜 CD로 찍느냐, 앨범듣고 글쓰는 사람 생각도 해야하는게 아니냐'는 것이 그분의 지론이었다. 아무튼 한 두명은 안들었는지 앨범의 초도물량은 생각보다 빨리 다팔아버렸고 재판은 찍지 않았다. 때문에 아프리카 밤바타나 DJ 섀도, 그리고 제이 딜라의 어머니 마저도 이 음반을 가졌음에도 정작 나는 내 음반을 챙겨두지 못했다. 이번에도 한 두명이 듣고 좋아해도 큰 상관은 없는데 CD찍고 그런소리하면 또 혼이 날것 같아서 일단은 이렇게 테이프로 찍게됐다.
게다가 CD플레이어가 없는 오래된 차를 타고다니기 때문에 주로 테이프나 라디오를 듣게 되는데, 그래서 일단은 내가 들을려고 이렇게 만든거기도 하다. 레코딩과 믹스 또한 이동시 주로 워크맨으로 카셋트 테잎을 듣는 박현민(n i n a i a n)님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차에서 카셋트를 많이 들으면 뜨거운 열때문에 테이프의 하이 음역대가 지워져버린다는 얘기도 있으니 가급적 차에서는 테이프를 듣지 않는 것이 보존에 더 좋다고 한다. 참고하시길
90년대 테이프로 샀던 몇몇 앨범들을 이후 CD로 다시 샀지만 테이프로 들었을 때의 맛이 안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모 이건 개인이 그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바에 따라 다른 것일런지도 모른다. 내 경우엔 2천년대에 나왔지만 스팽크 록의 [YoYoYoYoYoYo] 앨범을 닌자튠에서 테이프로 받았는데, 이것은 씨디로도 레코드로도 안들었고, 오직 테이프를 통해서만 들었다. 때문에 이 앨범이 '좋다' '죽인다' 뭐 이런것보다는 좀 각별하게 다가오는 구석이 있었는데 아무튼 이것이 단 한사람에게라도 그렇게 느껴졌으면 내 할일은 다 한 것같다.
자기 음악가지고 제이지가 자서전에서 썼던것처럼 훌륭한 메타포이니 이러쿵 저러쿵하는게 우스워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완성은 됐다. 아니 완성이 됐다기 보다는 모든 아티스트들이 마찬가지이듯 더 이상 믹스하기를 중단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샘플들을 넣었다. 샘플과 스크래치는 언제나 그렇듯 평양감사가 수고해줬다. 저번처럼 샘플같이 안들리는 샘플들이 더 많다.
수많은 올드스쿨 DJ들은 두대의 턴테이블로 보컬파트가 빠진 브레익 부분들만을 모아서 믹스해왔다. 이는 비트와 연주에 집중한 채 곡들을 이어주면서 브레익 댄서들로 하여금 좀 더 능률적인 춤판을 벌이게끔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두명의 비보이 출신 멤버(서명훈, 고영일)를 가지고 있는지라 이 짧은 연주곡들이 마치 컷 케미스트나 캡 다지가 뒤지던 이름모를 45회전 경음악 도넛 판에 들어있는 곡들처럼 들렸으면 했다. 퍼커션 멤버(정상권/미혼)는 그런 연유로 섭외했다. 모 이래저래 '포스트록'은 현재 가장 포스트 모던하지 못한 단어인것 같다.
녹음은 언제나 그랬듯 하루에 끝냈다.-하루 전에는 셋팅을 했다- 아무튼 이것은 그때의 기록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많이 화가나 있었다. 지난 앨범 녹음때도 그랬다. 레코딩 엔지니어는 녹음을 한다기 보다는 항상 우리가 싸우는 걸 말리는 데에 더 시간을 보냈다. 녹음할때는-게다가 그것이 원테이크라면-이미 서로가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지만 이렇게 화가나서 그걸 참고 짜증내면서 연주하는게 녹음된 것을 들을때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정말 이때의 화남-분노아님-이 리콜되곤 한다. 악기는 인간이 컨트롤하는거니 그런게 녹음할 때 안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막 혼자 씩씩대면서 기타지판에 이상한 비브라토를 주게된다.
어차피 우리돈주고 우리가 찍은거라 어떻게되든 상관없다. 이는 책임감에서 자유롭다는 얘기다. 카세트 데크를 가지신 분들만 알아서 즐겨주시길.
2011年 10月 韓相喆 拜上.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