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 1 | ||||||
---|---|---|---|---|---|---|
1. |
| 2:56 | ||||
♠ 내 혼에 불을 놓아 ♠
언제쯤 당신 앞에 꽃으로 피겠습니까. 불고 싶은 대로 부시는 노을빛 바람이여, 봉오리로 맺혀 있던 갑갑한 이 아픔이 소리 없이 터지도록 불타는 눈길과 숨결을 주십시오. 기다림에 초조한 내 비밀스런 가슴을 열어놓고 싶습니다. 나의 가느다란 꽃술의 가느다란 슬픔을 이해하는 은총의 바람이여, 당신 앞에 "네"라고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는 언제나 떨리는 3월입니다. 고요히 내 혼에 불을 놓아 꽃으로 피워 내는 뜨거운 바람이여. |
||||||
2. |
| 2:12 | ||||
♠ 빨 래 ♠
초록색 물통 가득 춤추며 일어나는 비누 거품 속에 살아있는 나의 때가 울며 사라진다 나는 참 몰랐었다 털어도 털어도 낀 먼지 낀 마음 속 너무 오래 빨지 않아 곰팡이 피었음을 살아 있는 동안은 묵은 죄를 씻어 내듯 빨래를 한다 어둠을 흔들어 행구어 낸다 물통 속에 출렁이는 하늘 자락 끌어올려 빳빳하게 풀 먹이는 나의 손이여 무지개 빛 거품속에 때묻은 날들이 웃으며 살아진다 |
||||||
3. |
| - | ||||
4. |
| 3:25 | ||||
♠ 산 맥 ♠
아득한 하늘 너머 천년 그리운 님의 얼굴이여 천년을 묵묵히 기다려야 하는가 파랗게 이끼 먹도록 태양을 외면한 체 매양 너를 키워 온 검은 바위 바위를 안고 그렇게 오래도록 침묵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어야만 하는가 지나온 날들을 생각지 않겠다 모질게 아려오는 슬픔의 노랠랑 아예 부르지 않겠다 녹슨 세월을 발 돋음하고 노을처럼 붉게 타오르더니 고독이 하얗게 눈으로 내려 덮인 마음 기슭엔 봄을 거부하는 하늘이 미워 가슴에 가득히 별을 심어다오 작은 꽃포기 하나라도 심어다오 구겨진 상처를 끌어안고 뜨거운 그리움에 몸부림치더니 하늘이여 내 세 봄을 맞아 한 번의 푸른 옷을 웃어야 할 그때까지 천년을 또 묵묵히 기다려야 하는가 아- 마음 아픈 어젯날은 잊자 찬란한 내일만을 믿자 |
||||||
5. |
| 2:31 | ||||
♠ 부르심 ♠
나는 한번도 숨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흰 깃을 치며 무인도로 날아 버린 시인 같은 물새였을 때 뽕잎을 갉아 먹고 긴 잠에 취해 버린 꿈꾸는 누에였을 때 해초 내음 즐기며 모래 속에 웅크린 바다 빛 껍질의 조개였을 때 깊은 가슴 속으로 향을 피우던 수 백만개의 햇살 찬란한 당신 앞엔 눈 못 뜨는 나 부르시는 그 사랑을 듣게 하소서 무량의 바다 위에 두 팔을 벌리고 소리치는 태양이여 당신에겐 순명하여 피리부는 바람 춤추는 파도로 뛰어가게 하소서 |
||||||
6. |
| - | ||||
7. |
| - | ||||
8. |
| 3:26 | ||||
♠ 아침 바다에서 ♠
금빛 번쩍이는 욕망의 비늘을 털고 당신께 가겠습니다 밤새 침몰했던 죽음들이 흰 거품 물고 일어서는 부활의 바다 황홀한 아침을 전신(全身)으로 쏟아 내는 당신 앞에 나는 몸부림치며 부서지는 숙명의 파도입니다 승리의 기를 흔들며 오실 당신을 위해 빈 배로 닻을 내린 나의 생애 수평선을 가르며 춤추는 갈매기로 가겠습니다 내력을 묻지 않고 보채는 내 마음을 안아 주는 바다 영원히 흰 포말(泡沫)로 일어서는 바다로 가겠습니다 |
||||||
9. |
| 2:48 | ||||
♠ 마 리 아 ♠
투명한 가을하늘 마리아를 부르면 해 뜨는 마음 가난해서 뜨거운 우리네 소망의 촛대 위에 불을 켜는 어머니 쉬임 없이 타오르는 주홍빛 불길 두 손에 가득 받아 언 마음을 녹인다 깊은 산골짜기 산나리 향기 먹고 담담히 흘러가는 물 같은 여인의 사랑 맑은 물 가슴에 차서 쓰디쓴 목마름을 씻어 없앤다 가을꽃 피어나는 가만한 숨소리로 숨어오는 마리아 너의 이름 부르면 길이 열린다 거미줄로 얽힌 죄 많음을 후련히 쏟아버린 따스한 눈물 가난한 우리네가 펄럭이는 촛불 되어 돌아오는 길 해를 안은 마리아와 영원을 산다 |
||||||
10. |
| - | ||||
11. |
| 4:15 | ||||
♠ 편지 ♠
밤은 항상 뜨거운 불가마에 나를 구워 내는 도공(陶工)입니다 벗이여 칡뿌리같이 싸아한 향기를 거느린 밤 나는 깨어 사는 시인들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 후둑후둑 비 맞고 섰는 빌린 목숨을 지켜보다 끝내는 신(神) 앞에 무릎 꿇었다는 당신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지금은 고요히 창을 닫는 시간 허공을 뚫고 가는 기인 기적 소리에 흔들리는 향수(鄕愁) 같은 것 떠나는 자들의 고독을 한 몸에 휘감은 기차의 외침을 들으십시오 벗이여 우리에게 마침내 가야 할 집이 있음은 얼마나한 위로입니까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절망을 거듭하지만 절망하는 만큼의 희망을 앎은 얼마나한 축복입니까 내 영혼이 시의 우물을 파는 밤에는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밤에는 가장 겸허한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벗이여 그리하여 이 밤엔 나도 도공(陶工)이 되어 펄펄 끓는 한 줄의 시를 사랑의 불가마에 구워 내고 싶습니다 |
||||||
12. |
| 2:27 | ||||
♠ 비 내리는 날 ♠
잊혀진 언어들이 웃으며 살아오네 사색의 못가에도 노래처럼 비 내리네 해맑은 가슴으로 창을 열면 심히 흘려버린 일상의 얘기들이 저만치 내버렸던 이웃의 음성들이 문득 정다웁게 빗속으로 젖어오네 잊혀진 기억들이 살아서 걸어오네 젖은 나무와 함께 고개 숙이면 내겐 처음으로 바다가 열리네 |
||||||
13. |
| - | ||||
14. |
| 3:00 | ||||
♠ 봄 편지 ♠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 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
||||||
15. |
| 5:11 | ||||
♠ 말을 위한 기도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 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道)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 주시어 좀더 겸허하고 좀더 인내롭고 좀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