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즈 신을 대표 하는 트럼 페터 이주한이 2002년 ‘Miles Song Book’이후 5년의 공백을 깨고 기타와 콘트라 베이스 보컬로 만 구성된‘윈터 플레이’라는 특이한 프로잭트를 결성. ‘초코스노우볼’이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행보를 시작했다.
이번 앨범에서 연주는 물론 총 프로듀서 및 전곡의 가사를 쓴 이주한은 일찍이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일본, 남미의 수리남,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한 덕에 독특한 정서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웅산’,‘이정식’ 등과 연주했으며 얼마 전 자신의 앨범 ‘Saza’s groove’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최우준이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블루지한 보컬을 더해 1인역3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고, 이병우의 뮤직도르프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베이시스트 소은규가 음악의 중심을 탄탄히 잡아준다.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트럼펫이라는 재미있는 팀 구성에 관조적이면서도 풍성한 음색을 가진 혜원의 보컬이 더해진 이들의 음악은 절제되면서도 풍부하고 차가우면서도 실상은 따뜻한 감성으로 겨울의 풍경들을 이야기 한다.
'겨울을 보내는 쿨한 재즈적 상상' ‘Choco Snowball’
트럼페터 이주한에게 가수의 반주에 지나지 않았던 트럼펫의 역할 바꾸기에 대한 시작이2000년 발표한 10+1이였다면 2002년에 발표한 ‘마일즈 송북’은 피아노와의 듀오로 보다 트럼펫 본연의 소리를 찾고자 함이었다. 5년의 공백을 깨고 그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찾고자 한 것은 보통의 트리오 편성(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조합)을 탈피하고 새로운 편성을 통해서 팀사운드의 새로운 장을 제시하고자 함일 것이다.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트럼펫이라는 간결한 편성만으로 보사노바, 삼바, 블루스, 볼레로, 재즈 발라드 등의 다양한 리듬과 멜로디를 쿨하게 풀어내었다.
윈터 플레이는 초코스노우볼에서 겨울을 주제로 현대적인 일상의 편린을 위트있게 담아내고있다.
크리스마스를 다룬 모든 영화의 회상씬에 등장할 법한 스노우볼 속의 눈은 윈터플레이에게 와서 초콜릿색이 되었다. 수정볼을 흔들면 떨어지는 것이 눈이 아닌 초콜릿 방울이라는 상상 해보자. 혹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올 법한 초콜릿으로 뭉친 눈덩이라고 생각을 해도 좋다. 이 앨범은 재치있고 컬트적인 판타지적 상황을 제시한다.
곡에 녹아있는 케릭터들이 슬픈 상황(핫소스, 멜론맨, 못잊어)일때에는 메이져의 밝은 진행이나 빠른 리듬위에 그려내고 밝은 느낌의 케릭터(윈터블루스 등.)에서는 오히려 마이너나 블루지한 코드로 풀어내는데 이러한 매치는 윈터 플레이만의 매력이라 하겠다.
‘멜론맨은 무언가를 찾아서 고민하고 걱정만 해오던 5년의 시간 동안의 제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주변의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 해준 이야기들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 곡에 등장 하는 주인공 멜론맨은 깊은 슬럼프에 빠져있는 소극적인 몽상가이다. 윈터플레이는 몽상만 하고 있지 말고 꿈을 위해 노력하라고 노래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곡은 원래 베이시스트 소은규가 연주곡으로 쓴것을 녹음하는 도중에 이주한에게 계속해서 ‘Melon Man’이라는 가사가 떠오르더란다. 떠오르는 가사를 더하고 브릿지부분의 변주와 리프를 더하여 완성된 어우러진 ‘Melon Man’ 은 심플한 보사보바 리듬에 위트있는 가사와 멜로디 짧지만 절제된 트럼펫솔로와 혜원 특유의 관조적이 보컬이 어우러져 윈터플레이만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넘버이다.
묵직한 베이스 워킹에 날카로운 리듬 커팅으로 시작 하는 스탠더드한 재즈곡으로 음반의 첫번째 트랙으로 컷팅된 ‘Hot Sauce’의 화자는 쿨한 여자가 되고픈 커리어 우먼이다.
무엇을 위해 일만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주인공은 나에게 매운 핫소스를 뿌려달라고 한다. 마음의 상처에 약이 아닌 더한 자극을 달라고한다. 어떻게 해야 마음의 허전함을 채울 수 있을까 자신을 위해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첫 곡에서 다시 이주한이 의도했던 기타-베이스 리듬섹션의 매력이 우선 돋보인다. 중후한 워킹 베이스 위로 리드미컬한 기타 스트로크는 담담하면서도 한편으로 강렬하게 자기의 상처를 이야기는 혜원의 목소리를 매우 효과적으로 받쳐준다. 여기에 보컬의 악절과 악절 사이에 고독하게 흐르는 이주한의 트럼펫은 일품이다.
멜로디와 리듬을 그대로 담아내는 기타의 코드 체인지와 보컬로만 1절을 전개하다가 하나씩 악기들과 코러스가 추가 되는 식의 편곡 재미있는 ‘Sarivora’는 특별한 의미가 없이 그냥 TV드라마를 보다가 떠오른 단어라고 한다. 이 곡에서의 그녀는 Hot Sauce의 주인공과는 비슷하나 정반대의 캐릭터이다. 그녀는 부족함이 없다. 모두들 그녀를 받든다. 하지만 자신이 이룬 것은 없다. 그래서 더욱 외롭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마디로 스스로를 왕따시키고 있는 캐릭터의 넋두리를 재미있게 표현 해내었다.
나르시즘으로 가득 찬 현대 도시인의 모습은 ‘Hey Bob’에서 더욱 비약된다. 이제 그녀는 완전한 공주병 말기의 환자이다. 왕따의 경지를 넘어 스스로의 왕국에서 나에게 더 잘하라고 바깥세상의 사람들에게 명령한다. 하지만 윈터플레이는 그것을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가벼운 유머로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더 설득력 있다. 오버 더빙된 보컬은 그것이 마치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앨범의 크리딧에도 표시되어있듯이 보컬리스트 혜원의 오른손 핑거 스넵을 오른쪽 트랙에만 담아내는 재치는 윈터 플래이음악만이 갖는 기지가 아닐까 싶다.
이들의 이런 해학적인 시도는 팝과 가요의 명곡에 까지 이어진다.
마이클 부블레가 불러 다시한번 전세계적으로 회자된 “Quando, Quando, Quando”를 하와이안 풍의 발라드로 노래한다. 바깥은 매서운 겨울 이지만 볕 잘 드는 시골 집 뜨끈 뜨근한 웃목에 자리를 깔고앉아 화로에서 노릇 노릇 피어나는 군고구마 향을 맡으며 따뜻한 남국의 휴가를 꿈꾸는 듯 몽환적인 느낌을 잘 담아 내었다.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한 김정균의 라틴 퍼커션이 인상적인 곡이다.
로드 스튜어트의 명곡 You’re In My Heart은 팀의 기타리스트 최우준의 얄미울 정도로 그루비한 컴핑에 의해서 포크의 전형적인 곡이 펑키하게 바뀌었다. 마치 늦겨울 햇볕을 받고 조금씩 꿈틀 거리며 봄소식을 알리는 씨앗들 노래와 같이 조금씩 변화를 더해 종국에 가서는 싹을 틔운다.
박춘석 선생이 쓰고 패티김이 불러 우리에게 너무나도 애절한 감성으로 익숙한 ‘못잊어’를 춤추듯 경쾌한 삼바리듬위에 실었다. 패티김의 ‘못잊어’가 헤어짐의 아픔을 노래해다면 윈터 플레이의 ‘Cannot Forget’은 달관한 그리움이다. 여기서 최우준의 현란한 핑거링을 통해서 발휘되는 리듬감은 일품이다. 아울러 다시 등장하는 김정균의 라틴 퍼커션 역시 곡의 흥을 섬세하게 북돋는다. 한겨울 매서운 샛바람을 맞고 있지만 마치 4월의 하늬바람에 실어 보내는 듯 깊은 그리움을 가볍게 노래하고 있다.
이제 아련한 추억은 ‘Pretty Brown Eyes’에서 기타리스 최우준의 스틸기타 아르페지오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20년을 전의 어느 겨울로 간다. 인생에있어 첫번째 겪은 마음의 동요 초등학교시절의 그아이의 향기와 그아이의 눈망울은 나의 발가락까지 전율하게 만들었던 이것은 애틋한 첫사랑에의 추억과는 다르다. 이 곡에서 최우준의 보컬은 하룻밤 사이에 어른이 된 조쉬(톰 행크스)의 이야기, 영화 ‘Big’을 떠올리게 한다.
Winter Blues,
최우준과 혜원의 보컬이 사랑을 갈구 하 듯 주고 받는 블루스에 이주한의 해학적인 나레이션은 당신이 느끼는 겨울의 외로움 그것이 윈터플래이가 존재하는 이유고 당신의 외로운 겨울에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한다. 블루스란 말처럼 왜곡되는 음악 용어도 흔치 않지만 이렇게 블루스 본연의 형식과 느낌이 우리 음악 속에 등장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겨울의 느낌을 담아낸 곡인 Holiday Without you는 수정같이 투명한 나일론 기타의 아르페지오 위에 푸근히 감싸는듯 슬라이딩하는 콘트라베이스에 고즈넉하게 흐르는 트럼펫의 멜로디는 윈터플레이가 표현하는 가장 전형적인 겨울의 감성을 담고 있다.
이렇게 작고 고즈넉한 서사시의 끝은 역시 소중했던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볼레로 리듬 위에 절제된 퍼커션이 실어낸 Farewell 은 누구에게나 있을 소중했던 순간에 대한 그리움을 망각의 강으로 띄워 보내며 작별하는 서사시의 끝을 편안하게 마치고있다. 여기서 들려주는 이주한의 온화한 트럼펫 음색은 화려한 즉흥연주 이상의 짙은 호소력이 있다. 아울러 이곡의 뒤에 붙은 ‘별’은 이주한이 자식처럼 사랑을 쏟았던 강아지의 이름이다.
넉넉한 공간감으로 여백의 미를 확보한 확신에 찬 연주는 선입견의 영역을 넘어서서 원하는 바를 그리기에 충분한 화폭을 제공한다. 성공을 향한 조급증을 넘어선 달관에서 우러나오는 연주라 할까. 겨울을 추억하기에 더없이 좋은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앨범이다.
윈터플레이는 2월의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새로운 형식의 클럽긱과 공연을 중심으로 보다 가깝게 찾아갈 예정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