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한 비트 속에 내제된 ‘감상용 음악’에 대한 사려깊은 고찰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소품 모음집 “창작과 비트”
DJ soulscape, 다양한 문화를 관통하는 프런티어
지난 2000년 한국 최초로 DJ의 오리지널 앨범을 발매하며 평단에 잔잔한 파문을 던졌던 DJ soulscape(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그 후 수년간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프리미엄급 디제이라는 찬사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왔다.
2002년 espionne(에스삐온)라는 이름으로 발매하였단 EP ‘어쩌면’을 통해 브라질리언, 라운지, 경음악으로서의 방향성을 제시하였고, 2003년에는 DJ soulscape의 명의로 돌아와 2집 ‘lovers’를 발매하여 힙합 인스트루멘탈과 뉴재즈에 다양한 하이브리드 음악들을 대입한 신개념의 사랑 음악들을 선보였다. 음반 뿐 아니라 2005년 개봉된 영화 ‘태풍태양’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그는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만의 리듬과 스타일을 확대시켰고, 다수의 컴필레이션과 앨범들에 참여하면서 음악적 열정을 표출해왔다.
또한 각종 잡지들(GQ, 마리끌레르, 블링 외)에 컨트리뷰터로 과거의 새로운 음악들을 소개했으며, 라디오에서의 믹스 세션과 출연을 통해(KBS 2FM 유열의 음악앨범 외) 디제이로서의 소명 또한 다하고 있다.
한편, 무대에서는 지난 몇 년간 가장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문화 행사였던 resfest와 sonar sound festival에 초청되는 등 많은 문화 예술의 최첨단에서 실험을 진행중이고, 지난 2005년말부터는 서울의 동료 디제이들과 360 sounds라는 크루를 형성, 수시로 360 sounds party를 기획하며 로컬 스트리트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또한 지난 해 말 벌였던 the sound of seoul 퍼포먼스와 캠페인, 믹스씨디 등으로 옛 한국 음악안에 잠자고 있 던소울, 훵, 부갈루등의 요소를 발굴해 내며 “발굴자“로서의 역할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라이브러리 레코드란?
해외 음반 발매, 투어 등을 통해 월드 클라스 아티스트로까지 급성장하고 있는 DJ soulcape가 발표하는 새로운 작품은 엄청난 스케일이나 상업적인 타협을 담았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오히려 생소한 ‘라이브러리 음악’으로 작업되어졌다.
과연 ‘라이브러리 음악’이란 무엇인가? 60,70년대 영상산업의 황금기에 주로 유럽에서 만들어진 ‘라이브러리 레코드’는 감상용 음반이 아니라 일정한 ‘활용 목적’을 가진 음반이었다. TV나 라디오, 영화, 광고 등에 삽입하기 좋은 음악들을 미리 제작해 놓은 형태로, 수록곡 중 마음에 드는 음악들의 판권을 구매하여 바로 프로덕션에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기성복’ 같은 음악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music de wolfe, chappelle, KPM등 많은 레이블들이 이런 라이브러리 레코드를 만들어온 레이블이며, 이들이 제작해온 음반들은 ‘밤의 무드를 위한 음악들’, ‘모던 재즈 스타일의 액션을 위한 음악’ 등과 같이 구체화된 컨셉과 사용 목적에 걸맞은 스타일을 추구함과 동시에 활용되었다.
정작 동시대 음악 관계자들로부터 그 가치를 크게 인정 받지 못했던 라이브러리 레코드는 세월이 흘러 1980년대 이후 소위 ‘레어 그루브’(Rare Groove/익조틱하고 희귀한 음반들을 일컫는 말)가 새로운 붐을 이루면서 뒤늦게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디제이나 프로듀서들의 샘플링용 툴로 애용된 라이브러리 레코드의 대표 음반들은 점차 희귀성을 과시하게 되면서 최근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음악들이 감상용 음반으로 재편집되어 릴리즈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몇몇 진귀한 음반들은 인터넷 경매를 통해 수백불을 호가하고 있다. 즉 감상용이 아닌 제작용 툴로서 시작된 음반들이 세월이 지나면 오히려 진귀한 감상용 음악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셈.
본 앨범의 활용 방안
본작의 제안과 탄생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music de wolfe나 KPM등의 라이브러리 레코드를 즐겨듣던 DJ soulscape은 당시 영상원의 독립영화를 위한 음악 작업들이나 엠씨들의 프리스타일을 위한 캔버스 같은 곡들을 작업하면서 라이브러리 레코드 형태의 음반들을 시리즈로 발매하는 것을 기획하게 되었다. 즉, ‘도구로서의 음악’, ‘장식과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공학적 구조물로서 기능을 소통한다’는 모토로(그가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이념에 경도되어있다는 것도 하나의 힌트) 새로운 형태와 이념을 가진 음반을 시리즈물로 발매할 계획을 수립하게 된 것. 따라서, 그는 본작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규앨범/비정규앨범의 이분법에 근거한 비정규작품직으로 분류되기를 거부한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엠씨들의 프리스타일을 위한, 혹은 디제이들의 믹싱(mixing), 블렌딩(blending)을 위한 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가 잘 짜여진 구조물들인 동시에 20개의 단편 음악들로 채워진 감상용 디자인 작품으로 인식되기를 희망한다.
patterns for words
창작과 비트의 첫번째 시리즈인 본작의 부제는 ‘patterns for words’. 즉, 단어를 위한 리듬, 음악의 패턴들이다. 주로 MC들의 라임(rhyme) 연습과, 프리스타일, 그리고 슬래밍(slamming/즉흥 시를 읊는 행위)에 적합한 비트들로 채워졌기에 이러한 부제가 주어졌다. gong 소리로 문을 여는 첫 트랙 ‘It’s a gong’은 음울한 분위기의 60년대 스파이 무비를 연상시키며 모던 소울 트랙인 ‘last daybreak’, ‘height 423’, ‘he and she’ 등은 lovers의 제작 과정에서 데모로 만들어 졌던 곡들의 완성본이라고 한다. iriver의 글로벌 홈페이지에 사용되었던 배경음악인 ‘unpack your bags’을 필두로 ‘point zero’, ‘day off’, friendly face’ 등은 영상 작업을 위한 음악들의 제작 과정에서 파생된 비트들이다. 이렇듯 본작은 최근 수년간 그가 펼쳐온 다양한 작업물에 담겨있던 리듬구조들이 새로이 파생되고 발전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단어를 위해 음악의 패턴임과 동시에 soulscape이란 아티스트의 수년간을 정리한 소소한 모음집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성격은 자극과 화려한 측면보다는 심플하고 감성적인면, 즉 감상이란 부분에 적합하게 배열되어 있다.
So, what’s next?
결국,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음반을 발매하고자 하는 것은 DJ이라는 아이덴티티의 발현임과 동시에 DJ가 사용하기 위한 여러가지 레코드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사진이 회화의 반복이나 예술이 아닌 하나의 기술로 탄생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독립된 예술 장르로 인정받는 것처럼, DJ와 DJ가 만들어내는 음악들 역시 일시적인 경향이나 트렌드에서 시작하였으나 근간에는 새로운 예술 분야의 시도로 발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 그 낯설지만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것 처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