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레이블 리버맨뮤직이 김두수의 [자유혼]을 발매한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문제작. 어려운 음반 시장에서 대중성보다는 음악성 위주의 음반을 발표하여 적지 않은 관심을 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갈 때까지 가보자는 자신만만함,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흔적이 역력하다. 인디레이블과 인디밴드가 지닌 마이너리티의 한계를 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 앨범으로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 [프리다]와 함께 멕시코 여류화가의 삶과 그림들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10년 전, 한국의 척박한 언더그라운드에서 록 밴드 [프리다 칼로]는 결성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10년 동안 그들만의 록으로 집을 짓고, 가로수를 심고, 수로를 놓으며 하나의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프리다 칼로]라는 깃발을 내걸고 세 번째 행진에 나선다.
그들이 처음 프리다 칼로라는 멕시코 여류화가의 이름으로 밴드 이름을 정하고 출발한 데는 그들의 삶과 록 정신이 그녀의 삶과 정신에 잇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에게는 록 음악이 운명처럼 느껴져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이상, 그리고 그것이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의 아픔... 음악을 통해 그런 아픔이 치유되기보다는 상처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만 음악을 통해 세상에 무엇인가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변함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리드보컬 김현의 말은 1907년 멕시코시티의 언저리 코요아칸에서 태어나 53년 4월 같은 곳에서 죽을 때까지 견딜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캔버스'라는 조그만 창을 통해 동시대와 함께 호흡하려 했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프리다 칼로]는 그녀가 열여덟 살 되던 해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척추가 부러지고 골반이 으스러지는 참화를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육신을 딛고 끊임없이 날아오르려 했듯이 [프리다 칼로] 역시 지난 10년 간, 록 클럽 문화가 대중들 속에 깊이 뿌리도 내리기 전에 사그라지는 한국 땅에서, 나이 서른이 넘기 전에 주류 음악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한 경제적인 문제로 해체의 길을 걷게 되는 밴드가 대부분인 음악 판에서, DJ, 선원, 배우, 막노동, 음악학원강사, 출판영업사원 등등 생활을 위한 노동과 자신들의 운명으로서의 음악을 동시에 하며 총600여 회의 라이브 공연을 하고, 97년 제1집 [자화상]을, 98년 제2집 [온고이지신] 그리고 99년 싱글 [다시 세상 속으로]를 출시했다. 그리고 올해 결성 만 10주년을 맞아 21세기 첫 앨범으로서 제3집 [프리다]를 출시한다.
1집 앨범이 하드록이었다면 2집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이 강했다. 그리고 지난 20세기말에 출시된 두 앨범은 공통적으로 염세적인 색깔이 짙었다. 이에 반해 3집에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최근 인디 밴드의 대세인 말랑말랑한 모던록 계열의 음악도 아니고, 기름기가 잔뜩 끼어 있는 주류 밴드 음악도 아니다. 그녀의 초현실주의 그림들처럼 독특한 색채의 곡들로 채워져 있는 3집 앨범은 타이틀명인 [프리다]라는 이름 그대로 1번 수록곡 <나의 탄생>에서부터 6번 수록곡 <바람의 노래>까지 프리다의 삶과 남편 디에고에 대한 사랑, 그리고 두 예술가에겐 삶과 사랑의 터전이었던 멕시코와 마야, 아즈텍 문명을 중심으로 하여 재즈, 포크, 라틴,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등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지고 있다. 그리고 한 곡, 한 곡 마다 프리다가 실제 그렸던 그림들을 연상시키는 듯한 독특한 향취를 발산한다.
전체 수록곡을 감상해 보면 마치 영화 <프리다>가 120분이란 러닝타임 동안 프리다의 삶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듯이 44분이란 러닝타임 동안 프리다의 탄생과 작품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한 예술가의 생애를 음악으로 들려주는 듯하다.
그렇게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프리다의 삶과 작품을 씨줄과 날줄로 하여 이루어진 노래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삶만큼이나 힘겹고 먹먹한 삶의 굽이를 돌아 새로운 길 위에 서는 네 사내의 다짐과 같은 노래이며 또 다시, 새롭게, 길 위에 서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찬가이기도 하다.
지금 주류 음반 시장은 불황이고, 음악파일이란 유령이 네티즌들의 머리 위로 배회하기 시작한 지도 이미 오래다. 아니 더 이상 유령은 배회하지 않고 한때 음반 소비자였던 모든 이들의 방 안에 죽치고 들어 앉아 있다. 따라서 음질에 목숨 거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이제 음반을 사느냐 안 사느냐는 그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듣고 싶으냐 안 듣고 싶으냐가 아니라 그 음반이 소장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어 지고 있다. 음반 구매의 가부(可否)는 청취욕이 아니라 소유욕이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프리다]는 기존의 인디 음반이나 메이저 음반 제작사에서 출시되는 음반과도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LP음반으로 처음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세대들을 위해서 과거의 LP 더블판(게이트폴더)을 CD크기에 맞춰 축소한 자켓으로 음반을 제작하였고, 프리다 칼로를 다룬 영화가2004년 헐리우드에서 제작되어 전세계적으로 배급된 이후 그녀의 삶과 작품에 매료된 이들을 위해 그녀의 대표작을 네 장의 엽서 형태로 함께 실어 소장 가치를 높이고 있다.
고통에서 환희로, 멕시코를 넘어 전세계의 화가로 발돋음했던 프리다의 삶과 작품에서 한 음, 한 음 채록하여 완성된 수록곡들과 그녀의 대표작들로 구성된 매혹적인 자켓. 아마도 프리다 칼로의 21세기 첫번째 음반인 [프리다]를 소장하지 않고는 21세기 한국 록 음반 라이브러리가 제대로 갖추어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한국 록의 역사는 이 음반과 함께 다시 시작될런지도 모르겠다.
* 출처 : 리버맨뮤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