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이렇듯 지성으로 공대를 허건마는 하루는 심봉사 우연히 설음이 발허여 신세자탄 하는 말이 우리 연당사십에 슬하 일점혈육이 없어 선영향화를 끊게 되니 그 아니 원통허오? 옛 글을 보더라도 공자님 어머니는 이구산에 치성허여 공자님을 낳으셨다니 마누라도 지성으로 공이나 좀 드려보오 곽씨부인 반겨듣고 그날부터 공 드릴 제 (중모리) 품팔어서 모인 재물 왼갖 공을 다 드린다 명산대찰 영신당과 고묘총사 성황사며 제불보살 미륵님과 칠성불공 나한불공 제석불공 신중맞이 노구맞이 탁의시주 인등시주 창호시주 갖가지로 다 지내고,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조왕 성주 지신제를 극진히 공들이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 든 나무 꺾어지랴 갑자(甲子) 사월 초파일 밤에 한 꿈을 얻으니, 서기반공하고 오채영롱(五彩玲瓏)한데 일개 선녀 학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니, 몸에는 채의(彩衣)요 머리에는 화관이라. 월패(鉞佩)를 느짓이 차고 옥패(玉佩)소리가 쟁쟁터니 계화(桂花) 가지를 손에 들고 부인전 배례허며 곁에 와 앉인 거동은 뚜렷한 달 정신이 품안에 드는듯, 남해관음(南海觀音)이 해중(海中)에 다시 돋는듯 심신이 황홀하여 진정키 어렵더니, 선녀의 고운 태도 호치를 반개허여 쇄옥성 맑은 소리로 알연히 허는 말이 서왕모의 양녀로서 문창성과 정혼허여 미처 행례 못허여서 문창이 천명 받어 천하 창생 건지기로 인간하강 허옵기에 따러 내려오옵더니 몽은사 부처님이 댁으로 지시허여 바래고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품안으로 안겨들어 깜짝 놀래 깨달으니 남가 일몽이 분명쿠나 (아니리)양주 몽사(夢事)를 의논하니 둘이 꿈이 같은지라. 그날 밤에 어찌하였든지 과연 그달부터 태기(胎氣) 있을 적으.. 곽씨부인 착한 마음 십삭을 꼭 이렇게 채우든 것이었다 (중중모리)석부정부좌 할부정불식 이불청음성 목불시악색 입불피 허며 와불칙 허여 십삭이 점점 찬 연후으, 하로는 해복 기미가 있구나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심봉사 좋아라고 일변은 반갑고 일변은 겁을 내여 밖으로 우루루 나가더니 집 한줌 쑥쑥추려 정화수 새소반에 받처놓고 좌불안석 급한 마음 순산허기를 기다릴제 향취가 진동허고 채운이 두루더니 혼미중 탄생허니 선인옥녀 딸이라.
(아니리) 심봉사 그제야 숨을 푹 내쉬며 흐유 그것 차라리 내가 낳고 말지 그 어디 보겄다고? 귀덕어머니는 아이 받어 쌈 갈라 뉘어놓고 첫국밥 지로 나갔겄다 심봉사 만심환희 허든 차에 곽씨부인 정신차려 순산은 허였으나 남녀간의 무엇이오? 심봉사 대소 허며 기가 막힐 노릇이오 부인들 욕심이란 저렇단 말여 아 그렇게 욕을 보고도 그도 그렇터였다 그러나 귀덕어머니가 무얼 낳았단 말도 않고 나갔으니 내가 알 수가 있는가? 에라 내 손으로 만져볼 수 밖에 수가 없다 심봉사 갓난 아해를 아래턱 밑에서 내리 더듬는디 이런 가관이 없지 가마 있자 이건 명뼈고 이건 배꼽이고 이제 이 밑에 가서 일이 있는디 앗차 내 손에 아무 거침새 없이 미끈허고 지내가는 것이 아마도 마누라 같은 사람 낳았는가 보오 (자진모리) 곽씨부인 섭섭허여 만득으로 낳은 자식 딸이라니 원통허오? 심봉사 이 말듣고 마누라 그 말 마오 첫째 순산 허였으니 천천만만 다행이오 딸자식이 아들만은 못헌다 허였으나 아들도 잘못두면 욕급선영 허는 것이요 딸이라도 잘만 두면 못된 아들 바꾸리까 우리 딸 고이 길러 예절 먼저 가르치고 침선 방적 다 시키어 요조숙녀 좋은 배필 군자호구 잘 가리어 금슬우지 즐거움과 종사우 진진허면 외손봉사 못 허리까? 그런 말을 허지 마오 (아니리) 그때여 귀덕어머니는 첫국밥 얼른 지어 삼신상에 받쳐놓고 봉사님 삼신님 앞에 좀 빌어 보시오 아 거 내가 어떻게 빈다요 귀덕어머니가 좀 빌어주시오 아이고 나 모르겄소 봉사님이 좀 빌어보시오 그럼 내가 빌어볼까? 심봉사 의관을 정제허고 두 손 합장 비는디 눈 뜬 사람 같거드면 명과 복을 많이 태여주시라고 공손히 빌련마는 봉사라 맹성이 있어 뚝성으로 비는디 남 듣기에는 삼신님네와 꼭쌈허듯 빌던 것이었다. (자진모리) 삼십삼천 도솔천 제석전(帝釋殿)에 발원(發願)하니 삼신 제왕님네 하회동심하야 굽어 보옵소서. 사십 후에 점지한 자식, 한두 달에 이슬 맺어, 석 달에 피 어리어, 넉 달에 사람형상 생기어, 다섯 달에 외포(?) 생겨, 여섯 달에 육정(?)나고, 일곱 달에 생겨 사만 팔천 털이 나고, 여덟 달에 찬침 받아 금강문 해탈문 고이 열어 순산하오니 삼신님네 덕이 아니신가. 다만 무남독녀 딸이오나 동방삭의 명을 주어, 태임의 덕행이며 대순 증삼효행이며, 반희의 재질이며 복은 석숭의 복을 점지하여 촉부단혈(촉부단혈) 복을 주어 오이 붓듯 달 붓듯 잔병 없이 일취월장하게 하옵소서! (아니리) 빌기를 다 헌 후으 더운 국밥 떠다 놓고 산모를 멕인 후어 심봉사 기쁜 마음에 갓난아이를 뉘어놓고 옆에 앉어 어루는디 꼭 눈으로 보나 다름없이 어루던 것이었다 (중중모리)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 둥 두웅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금자동아 옥자동 주류천하무쌍둥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 준들 너를 살까 둥둥 두우웅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네가 어디서 삼겨나? 네가 어디서 삼겨 와?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 속에 쌓여 와? 포진강 숙향이 네가 되어서 환생 은하수 직녀성이 네가 되어서 내려와? 남전북답을 장만헌들 든든허기가 너같으며 산호 진주를 얻은들 반갑기 너같을끄냐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 둥 두웅웅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자진모리) 둥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친정이 광할헌 것이나 눈썹이 기름헌 것이나 눈까풀이 삼시펄진 것이나 양미 펑퍼지름헌 것이나 귓밥이 축 처진 것이나 콧날이 오뚝헌 것이나 입술이 앵도같이 붉은 거나 아래턱 도리박금헌 것이나 어찌 그리도 잔상잔상 너희 어머니만 닮었느냐? 둥 둥 두우웅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 그날 밤을 새노라니 어둔 눈은 더욱 침침허고 아해는 점점 기진헐 제 동방이 희번히 밝어 오니 우물가에 물 긷는 소리가 들리거늘 심봉사 좋아라고 울제 이제 날이 밝었구나 이제 우리 두 부녀는 살었다
(중중모리) 우물가 두레박 소리 얼른 듣고 나설 제 한 품에 아이 안고 한 손에 지팽이 걷더짚고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더듬 거리고 나간다 우물가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뉘신지는 모르오나 초칠안에 어미를 잃고 젖을 주려 죽게 되니 이 애 젖 쪼꼼 먹여주오 우물가 오신 부인 철석인들 아니 주며 도척인들 아니주랴 젖을 많이 먹여주며 여보시오 봉사님 예 이 집에도 아이가 있고 저 집에도 아이가 있으니 어려이 생각말고 내일도 안고 오시고 모레도 안고 오시면 내 자식 못 멕인들 차마 그 애를 굶기리까? 심봉사 좋아라 허허 감사허오 수복강녕 허옵소서 젖을 얻어 먹이랴 이 집 저 집을 다닐 적으 그 때여 심봉사가 젖동냥에 이 골이 나서 삼베 질쌈 허느라 히히 하하 웃음소리 얼른 듣고 찾어가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오뉴월 뙤약볕에 김매고 쉬는 부인 더듬 더듬 찾어가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백석청탄 시냇물어 빨래허는 부인들께 더듬 더듬 찾어가 여보시오 부인님네 댁에 귀헌 아이 먹고 남은 젖 있거들랑 이 애 젖 쪼끔 먹여주오 젖 없는 부인들은 돈돈씩 채워주고 돈 없는 부인들은 쌀되씩 떠주며 맘쌀이나 허라허니 심봉사 좋아라 허허 감사하오 은혜 백골난망이오 젖을 많이 먹여 안고 집으로 돌아올 제 어덕 밑에 쭈구려 앉어 아기를 어른다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내 딸 배불렀다! 히히히히 인자 배가 뻥뻥허구나 아 거 날마다 이렇게 배가 불렀으면 오직이나 좋겄느냐 이!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이 덕이 뉘 덕이냐 동네 부인의 덕이라 어려서 고생을 허면 부귀다남을 헌다드라 너도 어서어서 자러나 너희 모친 본을 받어 현철허고 얌전허여 아비 귀염을 네 보여라 둥둥 두우웅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자진모리) 둥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내 새끼지야 내 새끼 어허 둥둥 내 딸 눈 비 산천의 꽃봉이 새벽바람에 연초록 얼음 궁기 수달이로구나 둥둥둥 내 딸 댕기 끝에는 준주실 옷고름에는 밀화불수 어덕밑에 귀남이 왔느냐 슬슬슬 기여라 어둥둥둥 내새끼 쥐암쥐암 잘깡잘깡 엄마아빠 도리도리 어둥둥 내새끼 서울가 서울가 밤한줌 사다가 살강밑에 넣났더니마는 머리깜운 새양쥐가 들랑날랑 다까먹고 밤하나 남을 것을 참기름에 달달볶아 너허고 나허고 둘이먹자 어둥둥둥 내새끼 둥둥둥둥 어둥둥둥 내딸이야 (아니리) 아이 안고 돌아와 포단 덮어 뉘어놓고 아해 자는 틈을 타서 동냥차로 나가는디 (중중모리) 삼베 전대 두 동 지어 왼 어깨 드러메고 동냥차로 나간다 한편에는 쌀을 받고 한 편에 나락 동냥 어린 아해 맘죽차로 감을 사고 홍합 사 왼 어깨 드러매고 허유허유 돌아온다 그 때여 심청이는 하날의 도움이라 잔병 없이 자러날제 세월이 여류허여 육칠 세가 되어가니 부친의 지팽이 잡고 앞길을 인도허기 모친의 기제사와 부친의 봉양사를 의법이 허여가니 무정세월이 아니냐
(아니리) 하루는 심청이 부친전 여짜오대 아버지 오날부터 아무데도 가시지마옵시고 집에 가만이 게시오면 제가나가 밥을빌어 조석공양 하오리다 여보아라 청아 네 마음은 고마우나 내 아무리 곤궁 헌들 무남독녀 너하나를 밥을 빈단말이 될말이냐 아서라 그런 말 두 번 다시 허지 마라 (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자로난 현인으로 백리부미 민허고 순유딸 제영이난 낙양옥에 갖친 아비 몸을 팔아 속죄하고 말못하는 가마귀도 공림 저문날의 반포은을 헐줄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미물만 못하리까 다큰자식 집에두고 아버지가 밥을빌면 남이욕도 할거이요 바람불고 날추운디 행여 병이날까 염여오니 그런말씀을 마옵소서.
(아니리) 심봉사 이 말 듣고 기특타 내 딸이야 네 그런 말을 다 어디서 배웠느냐? 네 인정이 그럴진대 한 두 집만 잠깐 다녀오도록 허여라 이 예
(중모리) 심청이 거동 보아라 밥빌러 나갈적으 헌배증으 다님 매고 말만남은 헌초마에 깃없는 헌저고리 목만남은 길보선에 청목휘양 둘러쓰고 박아지 옆에 찌고 바람마진 병신처럼 옆거름처 나갈적에 원산의 해비치고 건너마을 연기일제 주적주적 건너가 부억문전 다다르면 애근이 비는말이 우리모친 나를 낯고 초칠안의 죽은후의 앞못보는 우리부친 저를 안고 단이시며 동냥젖 얻어먹여 요만큼 자랐으나 앞못보는 우리부친 구한헐길 전혀없어 밥을 빌러 왔아오니 한술씩만 덜 잡수고 십시일반 주옵시면 치운방 우리부친 구안을 허것내다 듣고보는 부인들이 뉘안이 슬퍼허리 그릇밥 김치장을 아끼잔코 후이주면 혹은 먹고가라 하니 심청이 엿자오데 추운방 우리부친 날오기만 기다리니 저혼자만 먹사리까 부친전가 먹겠다네다 한두집이 족헌지라 밥빌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올제 심청이 허는 말이 아까내가 올때는 원산의 해가 조금 비첫더니 벌서 해가 둥실떠 그새 반일이 되었구나
(자진모리) 심청이 거동 보아라 문전에 들어서며 아이고 아버지 많이 기다리셨죠 자연 지체되었내다 춥긴들 오직허며 시장킨들 않소리까 심봉사 반겨라고 펄쩍 뛰어 내달으며 아이고 내 새끼야 칩다 어서 들어오너라 손 시리다 불쬐어라 심청의 손을 안어 입에 넣고 후후 불며 흐유 쯔쯔쯔쯧 내 새끼야 발인들 오직 시리겠느냐 발도 어루만지면서 눈물 짓고 허는 말이 애닳도다 너희 모친 무상헌 이내 팔자 널로 허여 밥을 비니 이 밥 먹고 살겠느냐? 모진 목숨이 죽지도 못허고 자식 고생을 이리 시키는구나 심청이 장헌 효성 부친을 위로허되 아이고 아버지 설어 마옵시고 진지나 잡수시오 부모를 봉양허고 자식으게 효 받기는 인사의 당연이오니 너머 걱정 말으시고 진지나 잡수시오 이것은 흰 밥이요 이것은 팥 밥이요 미역투각 갈치 자반 어머니 친구라고 아부지 갖다 드리라기에 가지고 왔사오니 시장찮게 잡수시오
(아니리) 이렇듯 부친을 위로 허여 진지를 잡숫게 헌 후 날마다 얻은 밥이 합쳐노니 오색이라 흰밥 콩밥 팥밥 보리 기장 수수밥이 갖가지로 다 있으니 심봉사집은 항상 정월 보름달 닥쳤든 것이었다. 그렁저렁 세월을 보낼 적으 심청 나이 십오 세가 되니 얼굴이 점점 일색이요, 효행이 출천이라 이러한 소문이 원근에 낭자터니 하루는 무릉촌 장승상댁 부인께서 이 소문을 들으시고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거늘 심청이 부친전 여쭌 후에 승상댁을 건너갈 제 (진양조) 심청이 거동 보아라 시비 따러 건너간다 이 모릉을 지나고 저 고개를 넘어서서 승상댁을 당도허여 대문간을 들어서니 좌편은 청송이요 우편은 녹죽이라 정하으 있는 반송 광풍이 건듯 불면 노룡이 굽니난 듯 중문 안을 들어서니 가세도 웅장허고 문창도 찬란헌디 반백이 넘은 부인 의상이 단정허고 피부가 풍미허여 복기가 많은지라 심청을 반겨 맞어 악아 네가 심청이냐? 듣던 말과 과연 같구나 좌를 주어 앉힌 후어 자서히 살펴보니 별로 단장 없을 망정 국색일시 분명쿠나
(중중모리) 엄용허고 앉인 거동, 백석청탄 맑은물 목욕허고 앉은제비가 사람을 보고 날라는듯 황홀한 그 얼굴은 천심의 돋은달이 수면에 비친듯 추파를 흘려뜨니 새벽빛 맑은 하늘의 경경한 샛별이요. 팔자청산 가는 눈섭은 초생편월의 정신이라. 양협의 고은빛은 부용화 새로핀듯 입을열어 웃는양은 모란화 한송이가 하로밤 비기운에 피고 저버린듯 호치 여러말을 허니 롱산앵무로다. 전신을 살펴보니 응당히 선녀라. 월궁에 노든 선녀 도화동에 적하허여 벗하나를 잃었도다 무릉에 내가 있고 도화동에 네가 나니 무릉에 봄이 들어 도화동 개화로다. 이내말을 들어봐라. 승상 일찍 기세허시고 아들이 삼형제나 황성가 미혼허고 어린자식 손자없어 적적한 빈방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란것 고서로다. 너의 신세 생각허면 양반의 후예로 저렇듯 곤궁하니 나의 수양딸이 되면 예공도 승상허고 문필도 학습시켜 말년 재미를 볼까허니 너의 뜻이 어떠허냐?
(중모리) 심청이 듣더니 여짜오되, 소녀 팔자 기박하여 낳은 지 칠일만으 모친 세상 버리시고 눈 어두우신 아버지가 품안으 저를 안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동냥젖 얻어 먹여 계우 계우 길러내어 이만큼이나 자랐으나 먼 데 가신 어머님은 얼굴도 모르옵고 궁천지통 맺힌 원한 그칠 날이 없삽ㄴ더니 오늘날 마님께서 미천함을 세지 않고 딸 삼으려 허옵시니 모친을 모시온 듯 감격허고 황송허오나 마님 말씀 좆사오면 소녀 몸은 영귀허나 안맹허신 우리 부친 조석공양 사철의복 제 뉘라서 받으리까 지중허신 부모 은덕 사람마다 있건마는 소녀 더욱 유별허여 부친은 저를 아들 겸 믿사옵고 저는 부친을 모친 겸 믿사와 시측을 일시라도 떠날 길이 없삽내다 두 눈에 눈물이 빙빙 돌며 목이 메어 말 못 헌다
(아니리) 부인 또한 측은하여 네 말이 당연허다 출천지효녀로다 노쇠헌 내의 뜻이 미처 생각 못했구나 그렁저렁 날 저무니 심청이 여짜오되 마님의 높으신 덕을 입사와 종일토록 모셨으니 영광이 많사오나 일력이 다하오니 그만 물러가겠나이다 하직허고 돌아올 적
(진양조) 그 때여 심봉사는 적적한 빈 방 안으 더진듯이 홀로 앉어 딸 오기만 기다릴 제 배는 고파 등으 가 붙고 방은 치워 한기 드는디 먼 데 절 쇠북을 치니 날 저문 줄 짐작허고 혼잣말로 탄식헌다 우리 딸 청이는 응당 수이 오련마는 어이 이리 못 오는그나 아이고 이것이 왠 일인가 부인으게 붙들렸느냐? 길에 오다가 욕을 보느냐? 풍설이 자자허니 몸이 치워 못 오는가? 새만 푸르르르 날어가도 심청인가 불러보고 낙엽만 퍼썩 휘날려도 악아! 청이 오느냐? 악아! 청아 아무리 불러봐도 적막공산의 인적이 없어지니 허허 내가 속았구나! 아이고 이 일을 어찌를 헐끄냐 내가 분명히 속았네 그려 심봉사 거동보소 속에 울화가 펄쩍 나서닫은 방문을 후닥- 딱 지팡이 흩어 짚고 더듬 더듬- 더듬이 나가는디 그때여 심봉사가 딸의 덕에 몇 달을 가만히 앉어 먹어 놓으니 도량 출입이 서툴구나 더듬 더듬- 더듬이 나가면서 아이고 청아- 어찌 못 오느냐 에이 이 어쩐 일인고 그저 더듬 더듬- 더듬이 나간다 급히 다리를 건너다 한 발 자칫 미끄러져 길 넘는 개천물에 미친 듯이 풍 아푸 아푸 아이고 사람 죽네 나오랴면 미끄러져 무진무진 들어가고 나오랴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니 심봉사 겁을 내어 두 눈을 휘번쩍 휘번쩍 번쩍 거리며 아푸 아이고 도화동 심학규 죽네 사람 좀 살리소 아무리 소리를 지른들 일몰도궁 허여 인적이 끊겼으니 뉘랴 건져 주겠느냐
(아니리) 그 때 마침 몽은사 화주승이 절을 중창허랴고 권선문 드러메고 시주집 다니다가 그렁저렁 날 저물어 절을 찾어 올라갈 제 올라가다가 심봉사 물에 빠져 죽게 된 걸 보고 건져 살렸다고 해야 이면이 적당헐 터인디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을 두고 무슨 소리를 허고 있으리오마는 우리 성악가가 허자 허니 이야기를 좀 더 재미있게 헐 양으로 잠깐 중타령이란 소리가 있던 것이었다
(엇모리)중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저 중이 어떤 중인고, 행색을 알 수 없네. 연년 묵은 중, 허허디 헌 중, 몽은사 화주승인데, 절 중창하랴 허고 권선문 메고 시주집 찾어갔다 절 찾어가는 길이라. 청산은 암암허고 설월은 돋아올 제, 세경으 비낀 길로 인도한 곳을 올라간다. 저 중의 호사 보소. 굴갓 쓰고, 장삼 입고, 염주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어, 백저포 장삼을 진홍띠 둘러 띠고, 소년 당상헌 별랑을 귀 우에 떡 붙이고, 용두 새긴 육환장, 쇠고리에 길게 달어 처절 철철철 흔들 흔들 흐늘거리고 내려오며, 육관 대사 성진이 용궁에 문안 갔다 과약주 취케 먹고 팔 선녀 희롱하던 성진 대사으 거동이라. 중이라 허는 것은 절에 들어도 염불, 속가에 가도 염불, “아아헤헤헤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리 한참 올라갈 제, 풍편에 들리는 소리, 사람을 구하거날,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마외역 저문 날으 하소대로 울고 가는 양 태진으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저 중이 우뚝 서서 소리 나는 곳 살피다가 그곳을 찾어가니, 어떠한 사람인지 개천물에 가 빠져서 어푸, 어푸, 어푸, 거의 죽게 되었거늘, 저 중이 급한 마음으로 굴갓, 장삼을 훨훨훨 벗고, 행전, 다님, 보신 벗어 세누비 바지가래를 딸딸 되게 말아 자개밋 딱 붙이고, 백로횡강 격으로 징검 징검 들어가 심 봉사 꼬드래상투를 에후리쳐 담쑥 쥐고 에뚜루미쳐
(아니리) 건져놓고 살펴보니, 전에 보던 심봉사라. 심봉사 정신차려, "거 뉘가 날 살렸소? 날 살린 게 뉘기요?" "예. 소승은 몽은사 화주승이옵더니, 시주집 나려왔다가 절을 찾어가다가 다행히 봉사님을 구원허였나이다." "그렇지! 활인지불이라더니, 죽을 사람 살려주니 은혜 백골난망이로구만." "그것을 무슨 은혜라고야 허오리까마는, 아 그, 소승이 아니었드면 참 큰일 날 뻔허였습니다." "큰일나다니? 물 한 모금만 더 먹었으먼 나는 오늘 그냥 갔지, 갔어!" 심봉사 쪄붙들고 집으로 돌아와 젖은 의복 갈아 입힌 후에, 물에 빠진 사연을 물으니 낱낱이 말을 하거늘, "가긍헌 말씀이오. 심봉사 형편이 웬만만허시면 그 참 좋은 수가 있소마는." "좋은 수면 무슨 술꼬?" "우리 절 부처님이 영험이 많으시사 빌면 아니 되는 일이 없고, 고하면 응하오니, 공양미 삼백 석만 불전에 시주허시면 삼 년 내로 눈을 꼭 뜰 수 있으시리다마는!" 심봉사 이 말을 듣고 어찌 마음이 기쁘던지, 후사는 생각지 않고 대번에 일을 저지르는디, "여보소, 대사! 정녕코 그럴진대 공양미 삼백석을 권선에 적어 가소, 적어 가!" 저 중이 어이없어, "봉사님! 아, 가세를 생각허면 삼백 석은 고사허고, 서 홉 곡식이 없는 이가 아, 어쩔라고 그러십니까?" 심봉사 홰를 벌컥 내어, "무엇이 어쩌? 너 이녀르저석! 네가 사람을 업수이여겨도 분수가 있지, 네가 내 속을 어찌 알고 허는 말이냐, 이저석! 삼백 석 적으라니깨, 제 손수 뚝 떨어져서 서 홉 곡석이 어쩌? 잔소리 말고 적어 가! 어떤 놈이 부처님전 헌사를 헐까!" "예. 그럼 적겠습니다. 그러면 내월 십오일 내로 삼백 석을 올리셔야 헙니다." "그럴 터니 염려 말소!" "봉사님! 박절헌 말씀 같사오나, 부처님전 허언을 하면은 눈 뜨시는 건 고사허고, 도리어 앉은뱅이가 될 터이오니 부디 명심하십시오." "여보게! 불가오계 중에 거짓말이 제일 큰 죄인 줄 내 번연히 아는디, 내가 일구이언허까! 걱정 마소, 걱정 말어!" 중은 권선책에 기재허고 올라갔것다. 심봉사 중을 보내놓고 혼자 앉어 곰곰 생각터니, "이놈이 환장헌 놈이 아닌가, 여! 이놈이 어쩔라고 이렇게 미쳐! 쌀 삼백 석! 쌀 삼백 석?"
(중모리) 허허 내가 미쳤구나. 정녕 나는 사 들렸네. 깊은 개천 물에 빠져 혼미정신 넋을 잃고 엉겁결에 이러는가. 무남독녀 외딸을 보내어 밥을 빌어먹는 놈이 쌀 삼백 석이 어디 있나. 가산을 팔자헌들 단돈 열 냥을 뉘라 주며, 내 몸을 팔자헌들 앞 못 보는 이 병신을 단돈 서 푼을 뉘랴 줄까? 부처님을 속이면은 앉인뱅이가 된다는디, 앞 못 보는 이 병신이 앉인뱅이까지 되거드면 꼼짝 달싹 못허고 죽겄구나. 수중고혼이 될지라도 차라리 그대로 죽을 것을, 우연한 중을 만나 도리어 걱정이 생겼구나. 저기 가는 대사! 쌀 없다. 권선에 삼백 석 에우고 가소!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내 말이 이 말을 듣고 보면 복통자진을 헐 터인디, 이놈의 노릇을 어쩔끄나."
(자진모리) 심청이 바삐 와서 저의 부친 모냥 보고 깜짝 놀래 발 구르며, "아이고, 아버지. 이게 웬 일이세요? 저를 찾어 나오시다 이런 욕을 보셨는가? 이웃집 가시다가 이런 변을 당허셨나? 춥긴들 오직하며 분허시긴들 오직허오리까? 아버지! 승상댁 마님께서 굳이 잡고 만류하여 어언간 더디었소." 승상댁 시비 불러 부엌에 불 지피고, 초마자락 끌어다가 눈물 씻쳐드리면서, "아이고, 아버지! 설워마옵시고, 진지나 잡수시오."
(아니리) 심봉사 공연헌 일 저질러 놓고 손수 홰 내든 것이었다. "어라, 어라! 진지고 무엇이고, 나 아부지 아니다!" 심청이 부친을 위로허며, "아부지! 어찌 이러셔요? 지가 너무 더디 와서 이렇듯 노허셔요? 이게 웬 일이세요, 아버지!" "아니다. 너 알어 쓸데없는 일이여. 그냥 나 혼자 앓다가 나 혼자 죽을란다." 심청이 듣고 여짜오되,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아버님은 소녀만 믿사옵고, 소녀는 아버지만 믿사와 대소사를 의논터니, 오늘날 너 알어 쓸데없다 하시니, 소녀가 도리어 섧사옵니다, 아버지!" 심봉사 그 동안 있던 일을 저저히 말을 허니, 심청의 장헌 효성 이 말씀을 반겨 듣고 부친을 위로허되, "아부지! 후회하시면 신심이 못 된다허옵니다. 아버지 어두신 눈이 다시 밝어지신다면, 공양미 삼백 석을 아무쪼록 주선하여 몽은사로 바치겠사옵니다, 아버지!" 심봉사 그 말 듣더니, "어허! 글씨, 네가 이러까 싶어서 내가 말을 진직 못헌 것이여! 네 효성은 그러허나, 그 말이 될 말이냐? 아서라! 나 지금 절에 올라갈란다." "아이고, 아버지! 이 밤중에 어디를 가신다고 이러세요?" "아니다. 내가 올라가서 중보고 말허고, 적어간 것 이렇게 에워뻐리라고 허고 올란다." "아이고, 아버지! 가셔도 내일 밝은 낮에 가세요." "어따! 나는 밤에 가나 낮에 가나 일성 일반인깨." 가기로 작정을 허니,
(중모리) 심청이 겁을 내어, "아버지, 잠꽌 듣주시오. 왕상은 고빙허여 얼음 궁어 잉어 났고, 맹종은 읍죽허여 눈 속의 죽순 얻어 사친성효 허였삽고, 곽거라는 옛 사람도 부모 반찬을 허여노면 제 자식이 먹는다고 산 자식을 묻으랴고 땅을 파다 금을 얻어 부모 봉양을 허였으니, 사친지효도가 옛 사람만 못하여도, 지성이면 감천이오니 너무 근심을 마옵소서."
(진양조)후원으 단을 뭇고, 북두칠성 자야반으 촛불을 돋오 키고, 새 사발으 정화수를 떠서 새 소반으 받쳐놓고 분향사배로 비는구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전으 비나이다. 천지지신 일월성신 화위동심 허옵소서. 하느님의 일월 두심이 사람의 안목이온바, 일월이 떨어져서 무삼 분별을 하오리까? 무자생 소경 아비 이십에 안맹허여 시물을 못허오니, 아비의 허물은 심청 몸으로 대신허고, 아비의 어둔 눈을 밝게 점지 허옵소서. 공양미 삼백 석을 불전으 시수허면 아비의 눈을 뜬다허오나, 가세가 청한허여 몸밖에 없사오니, 명천이 감동허사 내일이라도 이 몸을 사갈 사람을 지시허여 주옵소서."
(아니리) 이렇듯 밤마다 삼경에 시작허여 오경이 될 때까지 이레 밤을 빌어갈 제, 하루는 동리에 요란한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웨는 소리가 들리거늘, 심청이 가만히 나가서 들어보니, 두서너 명이 목 어울러 쌍으로 웨고 가는디,
(중모리) "우리는 남경 선인일러니, 인당수의 용왕님은 인제수를 받는 고로, 만신 일점 흠파 없고 효열 행신 가진 몸에, 십오 세나 십육 세나 먹은 처녀가 있으면은 중값을 주고 살 것이니, 있으면 있다고 대답을 허시오! 이이이루어."
(아니리) "몸 팔릴 처녀 뉘 있습나?" 심청이 이 말을 반겨 듣고, "웨고 가는 저 어른들! 이런 몸도 사시겠소?" 저 사람들 가까이 와서 성명 나이 물은 후에, "우리들이 사가기는 십분 합당허거니와, 낭자는 무슨 일로 몸을 팔랴 허시니까?" 심청이 대답허되, "안맹 부친 해원키로 이 몸을 팔랴허옵니다." "효성 있는 말씀이오. 그럼 값은 얼마나 드리오리까?" "더 주셔도 과허옵고, 덜 주시면 낭패오니, 백미 삼백 석만 주옵소서." 선인들이 허락허니 심청이 허는 말이, "쌀일랑은 몽은사로 보내시고, 대사님의 표를 받어 저를 갖다 주옵소서." "그는 염려 없거니와, 오는 삼월십오일이 행선날이오니, 그날 꼭 떠나 주셔야헙니다." "중값 받고 팔린 몸이 내 뜻대로 하오리까? 그런 염려는 마옵소서." 사공들을 보낸 후에 심청이 안으로 들어와 아무리 생각해도 부친을 아니 속일 수 없는지라, "아부지!" "와야?"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올렸으니, 아무 걱정 마옵소서." 심봉사 깜짝 놀래, "여봐라, 청아! 아니, 네가 어떻게 쌀 삼백 석을 올렸단 말이냐?" "승상댁 부인께서 저를 수양딸로 다려가시기로 허고, 그 댁에서 쌀 삼백 석을 주시어서 몽은사로 올렸습니다, 아버지." 심봉사 듣더니, "야야, 하 이런 일이 있단 말이냐? 몸 팔려 갔단 말이 외인소시난다허나, 아, 승상댁 부인께로 수양딸로 가는 거야, 어느 놈이 날보고 딸 팔아먹었다고 정개허겄느냐? 야야, 그 일 참 잘 되얐다." 심청같은 효성으로 부친을 어찌 속일 리가 있으리오마는, 이는 속인 것도 또한 효성이라. 사세부득 부친을 속여놓고 눈물로 세월을 보낼 적으.
(진양조) 눈 어두운 백발부친 영별허고 죽을 일과 사람이 세상에 나 십오세에 죽을 일이 정신이 막막허여 눈물로 지내더니 아서라 이게 웬 일이냐 내가 하로라도 살었을 제 부친 의복을 지으리라 춘추 의복 상침 접것을 박어 지어 농에 넣고 동절 의복 솜을 두어 보에 싸서 농에 넣고 헌 접것 두덕누비 가지가지 빨어 집고 헌 보선 볼을 받어 단님 접어 목 매두고 헌 전대 구녁 막어 동냥헐 때 쓰시라고 실겅 우에 얹어 놓고 갓 망건 다시 꾸며 쓰기 쉽게 걸어놓고 행선날을 생각허니 내일이 행선날이로고나 달 밝은 깊은 밤에 메 한 그릇 정히 짓고 헌주를 병에 넣어 나무새 한 접시로 배석 얹어 받쳐 들고 모친 분묘 찾어가서 계하에 진설허고 분향사배 우는 말이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불효여식 심청이는 부친의 눈 뜨시기 위허여 남경 장사 선인들께 몸이 팔려 내일 죽으러 떠나오니 망종 흠향 허옵소서
(자진모리) 사배 하직헌 연후으 집으로 돌아오니 부친은 잠이 들어 아무런 줄 모르는구나 사당에 하직차로 후원으로 돌아가서 사당문을 가만히 열고 통곡사배 우는 말이 선대조 할아버지 선대조 할머니! 불효여손은 오늘부터 선영향화를 끊게 되니 불승영모허옵니다 사당문 가만히 닫고 방으로 들어와서 부친의 잠이 깰까 크게 울 수 바이없어 속으로 느껴 울며 아이고 아버지! 절 볼 밤이 몇 밤이며 절 볼 날이 몇 날이오? 제가 철을 안 연후로 밥 빌기를 놓았더니 이제는 하릴없이 동네 걸인이 될 것이니 눈친들 오직허며 멸시인들 오직허오리까 아이고 이를 어쩔끄나! 몹쓸놈의 팔자로다
(중모리) 형양낙일수운기는 소통천의 모자 이별, 편삽수유소일인은 용산의 형제 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은 위성의 붕우 이별, 정객관산로기중의 오희월녀 부부 이별, 이런 이별 많건마는, 살어 당헌 이별이라 소식 들을 날이 있고, 상봉헐 날 있건마는, 우리 부녀 이별이야 어느 때나 상면허리. 오늘밤 오경시를 함지에 머무르고, 명조에 돋는 해를 부상에다 맬 양이면, 가련허신 우리 부친 좀 더 모셔 보련마는 인력을 어이 허리." 천지가 사정없어 이윽고 닭이 '꼬끼요!' "닭아, 닭아 닭아, 우지를 마라. 반야 진관의 맹상군이 아니로다.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잖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 어이 잊고 가잔 말이냐?"
(아니리) 이렇듯 설리 울 제 동방은 점점 밝아오는디, 이날인즉 행선날이라, 벌써 선인들은 문전에 당도하여 길때를 재촉허니, 심청이 가만히 나가 선인들게 허는 말이, "오늘 응당 갈 줄 아오나, 부친을 속였으니, 부친의 조반이나 망종 지어드리고 떠나면 어떠하오리까?" 선인들이 허락커늘, 심청이 들어와 눈물 섞어 밥을 지어 상을 들고 들어오며,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심봉사 일어나며, "허, 아이구, 야야! 오늘 아침 밥은 어떻게 이리 일찍 했냐? 아, 그런디 거 참 꿈도 이상허다."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간밤에 내가 꿈을 꾸니, 네가 큰 수레를 타고, 아, 어디로 한없이 가더구나. 그래 내가 너를 붙들고 뛰고, 울고, 궁굴고 야단허다가, 꿈을 깨가지고 내 손수 해몽 했지야. 수레라허는 것은 귀헌 사람이 타는 것이라, 아무래도 오늘 승상댁에서 너를 가마 태워 갈 꿈인가부다." 심청이 더욱 기가맥혀 아무 말 못허고 진지상 물려내고, 담배 붙여 올린 후에 문을 열고 나서보니, 선인들이 늘어서서 물때가 늦어간다 재촉이 성화같은지라. 아무리 생각허여도 부친을 영영 속일 수는 없는지라
(자진모리) 닫은 방문 펄쩍 열고 부친 앞으로 우루루루루루루.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버지!" 한 번을 부르더니, 그 자리에 엎드려져서 말 못허고 기절헌다. 심봉사 깜짝 놀래, "아이고, 이게 웬 일이냐? 악아, 이게 웬 일이여? 어허, 여 아침 반찬이 좀 좋더니 뭣 먹고 체했느냐? 체헌 디는 소금이 좋느니라. 소금 한 주먹 먹어 봐라. 악아, 악아. 아니 이것 기절허였는가? 악아, 어느 놈이 봉사 딸이라고 정개허드냐? 에이? 이거 어쩐 일이여? 아이고, 갑갑허다, 말허여라!" 심청이 정신 차려, "아이고, 아버지! 천하 몹쓸 불효여식은 아버지를 속였나이다
(아니리) 심봉사 이 말 듣고, "원, 이 자식아. 아, 네가 나를 속였든들, 효성 있는 네 마음에 뭘 그렇게 큰 일을 속였을리라고, 아, 이렇게 애비를 깜짝 놀래게 헌단 말이냐? 네 뭘 어쨌단 말이냐?" "하이고,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이 어디 있어 바치리까? 남경 장사 선인들게 제수로 몸이 팔여, 오늘이 행선날이오니 저를 망종 보옵소서!" 심봉사가 천만 의외 이런 눈 빠질 말을 들어노니, 정신이 아득허여 한참 말을 못허다가 실성발광 미치는디, "아니, 무엇이 어째야? 이것이 다 말이라고 허느냐? 허허!
(중중모리) 허허, 이게 웬 말이냐? 아이고, 이것이 웬 말이여! 여봐라, 청아! 네가 이것이 참말이냐? 애비다려 묻도 않고 네가 이게 웬 일이냐? 이 자식아! 자식이 죽으면은 보든 눈도 먼다는디, 멀었던 눈을 다시 떠야? 나 눈 안 뜰란다! 철 모르는 이 자식아, 애비 설음을 네 들어라. 너희 모친 너를 낳고 칠일 안에 죽은 후에, 눈 어두운 늙은 애비가 품안에다 너를 안고 이집저집 다니면서 동냥젓 얻어먹여 이만큼이나 장성키로, 너희 모친 죽은 설음을 널로 하여 잊었더니, 네가 이것이 웬 일이냐? 못허지야! 눈을 팔아 너를 살디, 너를 팔아서 눈을 뜬들 무얼 보랴 눈을 떠야? 나 눈 안뜰란다!" 이 때여 선인들은 물때가 늦어간다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봉사 이 말 듣고 밖으로 우루루루루루, 엎더지며 자빠지며 것둥거려 나가면서, "네 이 무지한 선인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사다 제하는 것 어디서 보았느냐? 눈먼 놈의 무남독녀 철 모르는 어린 것을, 날 모르게 유인하여 값을 주고 샀단 말이냐? 돈도 쌀도 내사 싫고, 눈 뜨기도 나는 싫다. 네 이놈, 상놈들아! 옛 일을 모르느냐? 칠년대한 가물 적으 사람 죽여 빌랴허니, 탕임군 어진 말씀 '내가 지금 비는 배는 사람을 위험이라. 사람 죽여 빌 양이면 내 몸으로 대신허리라.' 몸으로 희생되어 전조단발 신영백모 상림뜰 빌었더니, 대우방수천리으 풍년이 들었단다. 차라리 내가 대신 가마! 동네 방장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저 둬?" 내리둥굴 치둥굴며, 가삼을 쾅쾅 치고, 머리 지끈 부듲치며 죽기로 작정허니, 심청이 기가맥혀 우는 부친 부여안고, "하이고, 아버지! 지중헌 부녀천륜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사리까? 저는 아무 죽거니와 아버지는 눈을 떠 대명천지 다 보시고, 착실헌 계모님 구하여 아들 낳고, 딸을 낳어 후사를 전케 허옵소서
(아니리) 선인들이 이 형상을 보더니마는, 영좌가 하는 말이, "심낭자 효성과 심봉사 일생 신세를 생각허여, 봉사 평생 굶지 않고, 벗지 않게 허여줌이 어떠하오?" 그 말이 옳다허고 돈 삼백 냥, 백미 백 석, 백목 마포 각 한 통 씩 내어놓고, 동인 불러 규정한 연후 심낭자를 가자헐 제, 그 때여 무릉촌 장승상댁 부인께서 그제야 이 소문을 들으시고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거늘, 심청이 부친전 여쭌 후에 승상댁을 건너갔겄다 부인이 심청을 보시고 화공을 즉시 불러 족자를 내어주며 네 여보아라 심낭자 생긴 형용 역력히 잘 그리면 중상을 줄 터이니 명심하여 잘 그리도록 하여라
(진양조) 화공이 분부 듣고, 오색 단청 풀어놓고 심낭자를 이만허고 보더니마는, 화용월태 고운 얼굴 수심겨워 앉인 모냥, 난초같이 푸른 머리 두 귀 밑에 따인 것과 녹의홍상 입은 태도 역력히 그려노니, 심낭자가 둘이로고나. 화제에 글을 지었으되, '생지사지일몽간으 초록강남인미환이라.' 부인이 기가맥혀 한 손으로 족자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심청을 부여안더니만 눈물 감장을 못허시며, "내 딸은 여기 있다마는 말소리는 언제 다시 들을꺼나. 오늘 마지막 가는 길으 한 번이라도 어미라고 불러 다오." 심청이 더욱 설음이 복받치어 눈물이 맺거니 듣거니 울음 울다, 목이 메어 허는 말이, "길때가 급하오니 아주 하직 아뢰오나, 어느 때나 모시리까. 어머니. 어머님의 높은 은덕 죽어 황천 돌아가서 결초보은 허오리다." 부인도 울고 심청도 울고 눈물로 하직허는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네.
(아니리) 심청이 집으로 돌아오니, 부친은 뛰고 궁굴고 야단이 났는디 선인들은 재촉이라. 부친을 동인들게 당부허고 선인을 따러가는디.
(중모리) 따러간다. 따러간다. 선인들을 따러간다. 끌리난 초마자락을 거듬거듬 걷어 안고, 비같이 흐르난 눈물 옷깃에 모도 다 사무찬다. 엎더지며 자빠지며 천방지축 따러갈 제, 건넌집 바라보며, "이진사댁 작은악아! 작년 오월 단오날으 앵도 따고 노든 일을 행여 네가 잊었느냐. 금년 칠월칠석야으 함께 결교허쟀더니, 이제는 하릴없다. 상침질 수 놓기를 뉠과 함께 허랴느냐? 너희들은 팔자 좋아 양친 모시고 잘 있거라. 나는 오날 우리 부친 이별허고 죽으러 가는 몸이로다. 고인자는 지기자라, 우리 정리 생각허여, 나 죽은 후에라도 내 집에 자주 가서 우리 부친을 위로해 다오." 동네 남녀노소없이 눈이 붓게 모도 울 제, 하나님도 아신 바라, 백일은 어디 가고 음운이 자욱허여 청산도 찡그린 듯, 초목도 눈물진 듯, 휘늘어져 곱든 꽃 이울고져 빛을 잃고, 춘조난 다정하야 백반제허는 중으, "묻노라, 저 꾀꼬리. 뉘를 이별허엿간디 환우성 지어 울고, 뜻밖으 두견이난 '귀촉도 귀촉도 붙여귀'라 네 아무리 울건마는, 값을 받고 팔린 몸이 어느 년 어느 때나 돌아오리. 춘산의 지는 꽃이 지고 싶어 지랴마는, 사세부득 떨어지니 수원수구 어이 하리!" 질 걷는 줄을 모르고 강두에 당도허니, 배서리에 도판 놓고 심청을 인도허여 뱃장 안으 앉힌 후어 행선을 재촉허는구나.
(진양조) 범피중류 둥덩 둥덩 떠나간다. 망망헌 창해이며, 탕탕헌 물결이로구나.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으로 날아들고, 삼강의 기러기는 한수로 돌아든다. 요량헌 남은 소리 어적인가 여겼더니, 곡종인불견으 수봉만 푸르렀네. 애내성중만고수는 날로 두고 이름인가. 장사를 지내가니 가태부는 간 곳 없고, 멱라수를 바라보니 굴삼려 어복충혼 무량도 허시든가. 황학루를 당도허니 일모향관하처시오, 연파강상사인수는 최호의 유적인가. 봉황대를 다다르니, 삼산은 반락청천외요, 이수중분백로주는 이태백이 노든 데요, 심양강을 돌아드니 백락천 일거후으 비파성도 끊어졌다. 적벽강을 그저 가랴. 소동파 노던 풍월 의구히 있다마는, 조맹덕 일세지웅 이금에 안재재오? 월락오제 깊은 밤으 고소성에 배를 매니, 한산사 쇠북소리는 객선으 뎅 뎅 이르는구나. 진회수를 건너가니, 격강의 상녀들은 망국한을 모르고서 연롱한 수월롱사헌디 후정화만 부르더라. 소상강을 들어가니, 악양루 높은 집은 호상으 솟았난 듯, 동남을 바라보니 오산은 첩첩, 초수난 만중이라. 반죽에 젖인 눈물 이비한을 띠어 있고, 무산의 돋는 달은 동정호로 비쳤으니, 상하 천광이 거울 속으 푸르렸네. 창오산의 저문 연기는 황릉묘에 잠겼어라. 삼협의 잔나비는 자식 찾는 슬픈소리, 천객 소인의 눈물을 몇몇이나 빚었든고.
(아니리) 그렁저렁 소상팔경을 지내갈 제,
(중모리) 한 곳을 당도허니, 향풍이 일어나며 옥패 소리가 쟁쟁 들리더니, 의희헌 죽림 사이로 어떠한 두 부인이 선관을 정히 쓰고 신음거려 나오더니, "저기 가는 심소저야! 슬픈 말을 듣고 가라. 우리 성군 유우씨가 남순수허시다가 창오산에 붕허시매, 속절없는 이 두 몸이 소상강 대수풀으 피눈물을 뿌렸더니, 가지마다 아롱이 지고 잎잎이 원한이라. 창오산붕상수절이라야 죽상지루내가멸이라. 천추의 깊은 한을 호소할 곳 없었더니, 지극한 너의 효성 하례코저 예 왔노라. 요순 후 기천년의 지금은 천자 어느 뉘며, 오현금 남풍시를 이제까지 전하드냐? 수로 먼먼 길 조심허여 다녀오느라." 이난 뉜고 허니 요녀순처 만고열녀 이비로다. "가신 지 수천 년으 정혼이 남아 있어 사람의 눈에 보일진대, 내가 죽을 징조로다." 또 한 곳을 당도허니, 풍랑이 대작허며 찬 기운이 소삽더니, 어떠한 일원 대장이 나오는디, 신장이 구척이요, 면여거륜하며 미간이 광활헌디, 요대가 십위로다. 두 눈을 감고, 가죽으로 몸을 싸고 은은히 나오더니, "저기 가는 심소저야! 내의 말을 듣고 가라. 슬프다, 우리 오왕 백비의 참소 듣고, 촉루검 나를 주어 목 찔러 죽은 후어, 가죽으로 몸을 싸서 이 물에 던졌노라. 장부의 원통함이, 월병이 멸오함을 내 역력히 보랴허고 일찍이 눈을 빼어 동문상에 걸었더니, 과연 내가 보았노라. 그러허나 원통한 게 몸에 싸인 이 가죽을 어느 뉘라 벗겨주며, 눈 없는 게 한이 된들 내 눈 누가 찾어주리. 수로 먼먼 길 조심허여 다녀와서, 귀헌 몸 되시거든 소인 참소 듣지 말라 황제님전 잘 간허소." 이분은 뉜고 허니, 오나라 충신 오자서라.
(진양조) 그곳을 점점 지나 멱라수를 당도허니, 또 한 사람이 나오는디, 안색이 초췌허고 형용이 고고헌디, 글을 읊고 나오면서, "슬프다, 심소저야! 어복충혼 굴삼려를 자네 응당 알 터이나, 낭자는 효성으로 죽으러 가고, 나는 충성으로 죽었으니, 충효는 일반이라 호소코저 예 왔노라. 후일 귀히 되시는 날, 황제께 잘 간허여 충신 박대 말게 허면 만세기업을 누리리라." 심청이 기가맥혀 혼잣말로 탄식헌다. "이것이 웬 일이냐? 죽으러 가는 나를 보고 귀한 몸 된다허며 조심허여 다녀오라니, 정녕코 내가 죽을 징조로구나."
(중모리) 물의 날이 몇 날이며, 배의 밤이 몇 밤인고? 어언 사오 삭을 물같이 흘러가니, 금풍삽이석기허고 옥우곽이쟁영이라. 낙하는 여고목제비허고, 추수난 공장천일색이라. 강안이 귤농허니 황금이 천편이요, 노화에 풍기허니 백설이 만점이라. 신포세류 지는 잎은 만강추풍 흐날리고, 해반청산은 봉봉이 칼날 되니, 돋우나니 수심이요, 녹는 것이 간장이라. 일락장사추색원허니 부지하처조상군고. 송옥의 비추부가 이어서 슬프리오? 지려 내가 죽자허니 선인들이 낭패 되고, 살어 실려 가자헌들 생불여사 내 신세야."외로울사 선인들은 등불을 돋오 키고 애내성 부르면서, "어기야 차 어기야 어 어어어야 어기야 차 어기야 차."
(엇모리) 한 곳 당도허니, 이난 곳 인당수라. 광풍이 대작허고, 어룡이 싸우는 듯, 벽력이 나리는 듯, 대양바다 한가운데 바람 불어 물결 쳐, 안개 뒤섞여 저저진 날, 갈 길은 천리 만리나 남고, 사면이 검어 어둑 점그러져 천지 적막헌디, 까치뉘 떠들어와 뱃전머리 탕탕, 물결이 우르르르르르르 출렁 출렁. 도사공 영좌 이하 황황급급하야 돛 짓고, 단 놓고 고사기계를 채린다. 섬쌀로 밥 짓고, 왼 소 잡고, 동우술 오색 탕수 삼색 실과를 방위 찾어 갈라놓고, 산 돝 잡아 큰 칼 꽂아 기는 듯이 받쳐 놓고, 심청을 목욕시켜 의복을 정히 입혀 뱃머리 앉힌 후, 도사공 거동 봐라. 의관을 정제허고, 북채를 양손에 쥐고,
(자진모리)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둥둥둥. "헌원씨 배를 무어 이제불통헌 연후에, 후생이 본을 받어 다 각기 위업허니 막대한 공 이 아니냐. 하우씨 구년치수 도산도주허옵시고, 바다를 만드시고, 신농씨 상고 마련 교역을 허게 허시니, 우리의 허는 직업 세인군이 내심이라. 우리 동지 스물네 명 상고로 위업하여 경세우경년으 표백서남을 다니더니, 인당수 용왕님께 인제수를 드리오니, 동해신 아명이며, 서해신 거승이며, 남해신 축융이며, 북해신 옹강이며, 강한지장과 천택지군이 하감하여 주옵시고, 비렴으로 바람 주고, 화락으로 인도허여 환란 없이 도우시고, 백천만금 퇴를 내어 돛대 우으 봉기 꽂고, 봉기 우으 연화 받게 점지허여 주옵소서!" 빌기를 다헌 후으, "심낭자 물에 들라!"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청이 기가막혀, "아이고, 하느님! 명천이 감동허사, 아비의 허물일랑 심청 몸으로 대신허고, 아비의 어둔 눈을 밝게 점지허옵소서! 여보시오, 사공님네! 도화동이 어느 쪽으로 있소?" 도사공이 북채를 들어, "저기 구름 담담한 저 밖이 도화동 쪽이로소이다." 심청이 이 말 듣고, "아이고, 아버지! 불효여식 청이는 요만큼도 생각 마옵소서!" 심청이 거동 봐라. 뱃전으로 우루루루루, 샛별같은 눈을 감고, 초마폭을 무릅쓰고, 만경창파 갈매기처럼 떴다 물에 풍!
(중모리) 묘창해지일속이라. 워리렁출렁 간 곳 없네. 흐르던 물도 머물렀고, 유유헌 갈매기도 빠지던 데를 굽어보며, "깍 까르르르르르르" 울어 있고, 무심헌 기러기도 돛대 우에 높이 떠서 "뚜루루 낄룩" 울어 있고, 사공들도 목이 메어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말 못허고 서 있는디, 영좌가 울음을 내어, "못 보겄구나. 못 보겄네. 사람의 눈으로는 못 보겄네. 우리가 연년이 사람을 사다가 이 물에다 제수허니, 우리 후사 잘 될소냐? 여보게, 동무네들. 명년부터는 아사지경을 당허드래도 이놈의 노릇을 그만두세. 닻 감고 노를 저어라. 참나무 디래따리를 잡고 돛을 달아라. 용총줄 벌리고 고작을 채워라." "어기야 에야."
(진양조) 둥덩 둥덩 떠나간다. 행화는 풍랑을 좇고, 명월은 해문에 잠겼도다. 이 때에 옥황상제께옵서 남해용왕께 하교하시되, "금일 오시 초에 출천대효 심낭자 인당수 들 것이니, 팔선녀로 옹위허여 수정궁에 모셨다가 인간으로 환송허되, 시각을 쪼끔 어기거나, 물 한 점을 묻히거나, 모시기를 잘못허면 남해용왕은 천벌을 주고, 수국 제신은 죄를 면치 못하리라!" 분부가 지엄허니, 용왕이 황겁허여 수국 충신 별주부와 백만 인갑 제장이며, 각 궁 시녀로 용궁 교자를 등대허고 그 시를 기대릴 제, 과연 오시에 백옥같은 한 소저가 물에 풍덩 빠져들거늘, 시녀등이 고히 맞어 교자 우으 모시는구나.
(아니리) 심청이 정신채려, "나는 진세천인으로 어찌 감히 용궁 교자를 타오리까?" 시녀등 여짜오되, "상제의 분부오니, 만일 아니 타시오면 우리 수궁은 죄를 면치 못허나이다." 사양타 못하여 교자 우에 올라앉으니, 시녀등이 모시고 수정궁으로 들어갈 제,
(아니리) 옥황상제의 영이어든 거행이 오직허리. 사해 용왕이 각각 시녀등을 보내어 조석으로 문안허며 조심이 각별헐 제,
(중모리) 그 때여 승상부인은 심소저를 이별허시고 애석함을 못 이기어, 글 지어 쓴 화상족자를 침상에 걸어두고 때때로 증험터니, 일일은 족자빛이 홀연히 검어지며 귀에 물이 흐르거늘, 승상부인 기가 맥혀, "아이고, 이것 죽었도다! 아이고, 이를 어이헐끄나." 이리 앉어 탄식헐 적, 이윽고 족자빛이 완연히 새로우니, "뉘라서 건져내어 목숨이나 살었느냐? 그러허나 창해 먼먼 길 소식이나 알 수 있나."
(아니리) 생각다 못하여 시비를 불러 분부허시되, "얘야, 오늘은 심낭자가 분명히 죽었나부다. 제물이나 좀 장만해라. 떠나던 강두를 찾어가서 불쌍헌 영혼을 한 잔 술로 위로허리라." 그날 밤 삼격시에,
(진양조) 주안을 갖추어서 시비 들려 앞세우고 강두에 당도허여,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슬픈 말로 제 지낸다. "심소저야, 심소저야! 아깝구나, 심소저야! 늙은 부친 눈 어둔 게 평생의 한이 되어 어복의 혼이 되니, 하나님은 무삼 일로 너를 내어 죽게 허시며, 귀신은 어이허여 죽는 너를 못 살린그나. 무궁한 나의 애를 너는 죽어 모르건마는, 나는 살어 유한일다. 유유향혼이여, 오호애재 시향이라." 제문 읽고 유식헐 제, 하나님은 나짓허여 제문을 들으신 듯, 별과 달이 희미허여 수심을 머금은 듯, 물결이 잔잔허여 어룡이 느끼난 듯, 청산이 적적허여 금조가 슬퍼헌 듯. 부인이 기가맥혀 심소저를 부르면서, 눈물 감장을 못허시는구나.
(아니리) 부인이 수백금 돈을 내어 강가에다 망녀대를 짓고, 매월 삭망으로 삼 년까지 제 지내게 허시는디, 도화동 사람들이 또한 심소저 죽은 것을 불쌍히 여겨, 망녀대 앞에다 타루비를 세워놓고 글 지어 새겼으되, 지위기친폐쌍안허여 살신성효행용궁을, 연파만리상심벽허니 방초연년한불궁이라, 뚜렷이 새겨노니, 오고가는 행인들이 비문 보고 아니 우는 사람 없는지라. 그 때여 심소저는 수정궁에 머무를 제, 하루는 천상에서 옥진부인이 하강을 허시는디, 이 부인은 심청의 어머니 곽씨부인이 죽어 광한전 옥진부인이 되셨는디, 심청이 수궁에 왔단 말을 들으시고 모녀 상봉차 내려오시것다.
(중모리) 오색 채운이 벽공에 어리더니, 요량헌 선악 소리 수궁이 낭자하며, 우편에 단계화요, 좌편에 벽도화라. 청학 백학 옹위허고, 공작은 춤을 추며, 앵무로 전어하여 천상선녀 앞을 서고, 용궁선녀 뒤를 따러 엄숙히 오는 거동 보든 바 처음이라. 심청을 반겨 보시고, 와락 뛰어 달려들어 심청을 부여안고, "악아, 청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내가 너의 어미로다. 나도 본시 선녀로서 적하인간 수십 년의 너를 낳고 죽은 후으, 광한전 후토부인으로 상제의 명을 모아 오늘까지 지내더니, 내 딸 지극한 효성, 부친의 눈 뜨시기 위하여 이 수궁에 왔다기로 모녀상봉 하쟀더니, 오늘 예서 보겄구나."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는 세상에서 쓰지 못할 저를 낳고 그길로 상사 나서, 근근한 소녀 몸이 부친 덕에 아니 죽고 이만큼 자랐으나, 모친도 못 뵌 것이 철천지한이옵더니, 오늘 예서 모시오니 저는 한이 없사오나, 외로우신 아버님은 뉘게 의지허오리까."
(중모리) 옥진부인이 이 말 듣고, "기특허구나, 내 딸이야. 이슬같은 네 목숨이 동냥젖 얻어먹고 이만큼 자랄적으, 앞 못 보신 너희 부친 고생 오즉 허셨으랴. 세상에서 못 먹은 젖 오늘 많이 먹고 가거라." "어머님이 가신 길은 머나먼 황천이요, 소녀가 죽어 온 곳은 깊고깊은 수궁이오라, 황천 수궁이 달렀삽기 모친도 못 뵐 줄로 주야장천 한이옵더니, 어머님 덕택으로 예 와서 모셨으니, 부친 이별은 허였사오나 모친 따러가겠내다." "애정은 그러허나, 내 딸 지극 효성 명천이 감동허사 환송인간 헐 것이니, 세상을 나가거든, 너희 부친 뵈옵는 날 날 본 말을 올린 후으, 전생에 미진 한을 후생에 만나자고 세세히 아뢰어라. 유명이 다른 고로 사세가 부득하여 나는 올라 간다마는, 내 딸 너도 부디 잘 가거라." 눈물지며 이별헐 제, 문득 채운이 두르더니 공중으로 행허신다
(아니리) 심청이 기가맥혀, "아이고, 어머니! 무슨녀르 팔자로서 부모복도 이리 없는거나." 이렇듯이 탄식허니 시녀등이 위로헐 제, 그 때여 심청이 수정궁에 머무른 지 어언간 삼 년이라. 하루는 옥황상제께옵서 남해용왕께 하교허시되, "심청의 방년이 가까오니 인당수로 환송하여 어진 때를 잃지 말게 하라!" 남해용왕 명을 받고 심청을 치송헐 제, 연봉옥분에 고이 모시고 두 선녀로 시위하여, 조석 공대 찬수등물 금주보패를 많이 넣고 인당수로 나오는디,
(진양조) 꿈같이 번뜻 떴다. 천신의 조화이며 용왕의 신덕이라. 바람이 분들 흔들리며, 비가 온들 요동허리. 오색 채운이 꽃봉이에 어리어서 주야로 둥둥 떠 있을 제, 남경 장사 선인들은 억십만금퇴를 내어 고국으로 돌아올 제, 인당수 당도허여 용왕전 제 지내고, 다시 제물을 정히 채려 심낭자 혼을 불러 슬픈 말로 제 지낸다. "심낭자여, 심낭자여. 출천대효 심낭자여. 우리 남경 선인들은 낭자로 인연하여 장사의 퇴를 내어 고국으로 가거니와, 낭자의 방혼이야 어느 때나 오시랴오? 한 잔 술로 위로허옵나니 많이 흠향허옵소서."
(아니리) 사공도 울고, 영좌도 울고, 적군 화장이 모도 울며 제물을 물에 풀 제,
(중중모리)한 곳을 바라보니 난데없는 꽃 한 송이가 물 우에 둥실 떠 있거늘, "저 꽃이 웬 꽃이냐?", "금장취병 화중부귀 모란환가 허나니다." 영좌 듣고 허는 말이, "아니, 그 꽃이 아니로다. 죽림수면이 아니어든 무슨 모란화가 있겠느냐?" "그러면 저 꽃이 웬 꽃이오? 창파해상에 둥실 떴으니 해당환 듯허옵니다." "아니, 그 꽃도 아니로다. 명사십리가 아니어든 해당화 어이 있겠느냐? 옛 일을 생각허니, 왕소군이 고국 생각 죽어서 청초되고, 우미인 만고유한 죽어 풀이 되었으니, 심낭자의 출천효행 죽어 꽃이 됐나부다." 도사공 허는 말이, "그 말이 장히 좋다. 충신화 군자화 은일화 한사화. 사람의 행습 보아 꽃 이름을 지었나니, 저 꽃은 정녕코 심낭자 넋이니 효녀화가 분명쿠나." 그 말이 옳다허고, 가까이 가서 보니 과연 세상에 없는 꽃이라. 건져 놓고 살펴보니, 향취가 진동허며 크기가 수레 같다. 고이 실코 돌아올 제, 순풍이 절로 일어, 사오 삭에 다니든 길을 삼사 일에 득달허니, 이 또한 신명의 조환지라.
(아니리) 고국에 돌아와 수다히 남은 재물 다 각기 짓대를 나눌 적으, 도선주는 무슨 마음인지 재물은 마다허고 꽃봉이만 차지허여, 제 집 후원 정한 곳에 단을 뭇고 두었더니 오색 채운이 항상 꽃봉이에 어렸것다. 이 때는 어느 땐고허니 임오년 삼월이라. 그 때 송 천자께옵서 황후 붕허신 후 간택을 아니허시고, 각색 화초를 구허시어 상림원을 다 채우고, 황극전 뜰 앞으로 여기 저기 심어두고 주야로 구경 허실 적으,
(아니리)천자님 흥을 붙여 날마다 보시더니, 그 때에 남경 갔던 도선주 궐내의 소식 듣고, 인당수에 얻은 꽃을 옥분 채 잘 모시고 대궐 밖에 당도허여 제 뜻을 주달허니, 황제 반기시사, "선인으로 정성이 지극헌 일이로다." 특히 상을 내리신 후 꽃을 딜여다 황극전에 놓고 보시니, 크기가 거륜 같고, 꽃빛이 찬란하며, 향취가 특이허여 세상 꽃이 아닌지라. 월중단계화도 아니요, 요지연의 벽도화를 동방삭이 따온 지가 삼천 년이 다 못 되니 벽도화도 아니요, 서천서역에서 해상으로 떠 왔는지, 그 꽃 이름을 강선화라 지으시고, 화계에 옮겨노니, 붉은 안개 어려 있고 서기가 영롱이라.
(진양조) 일일은 황제께서 심신이 산란허시고, 잠을 이룰 길이 없어 화계에 배회터니, 명월은 만정허고, 미풍이 부동헌디, 강선화 꽃봉이가 완연히 요동허며, 사람소리가 두런두런. 천자님이 고이 여겨 동정을 살펴보시니, 뚜렷한 선인옥녀 꽃봉을 반만 열고 얼굴을 들어 엿보다가, 인적 있음을 짐작허고 경각에 몸을 움쳐 꽃봉을 닫더니마는, 다시는 동정이 없는지라.
(아니리) 황제 보시고 심신이 황홀하여 무한히 주저하시다, 가까이 들어가서 꽃봉을 열고 보시니 일위 소저와 양개 시녀라. "너희가 귀신인다, 사람인다?" 시녀등 내려와 복지하여 여짜오되,
(중모리) "남해 용궁 시비로서 낭자를 모시옵고 해상에 나왔다가 황극전에 범했사오니 극히 황송허여이다." 천자님 내념에 옥황상제께서 좋은 인연을 보내심이라. 시녀등을 명하사, "내궐에 옮겨 두고 모든 궁녀로 시위허되, 만일 꽃봉을 열고 보면 죽기를 면치 못허리라." 날이 밝어 다시 보시니, 낭자 부끄러워 아미를 숙이고 앉았거늘, 보고 다시 살펴보시니, 만고의 처음 보는 짝이 없는 일색이라. 황제 더욱 기뻐하사, 조회를 파허신 후 제신에게 의논헌즉, 제신이 복지주왈, "국모 없으심을 상제께서 알으시고 좋은 인연을 보냈사오니, 종사의 주부시요, 조정의 모후시라, 응천순민허옵시와 가례를 행케 허옵소서."
(아니리) 황제 옳게 여기시사 태사관으로 택일허시니, 오월오일 갑자일이 음양무적이라 허였것다. 그렁저렁 길일이 당도커늘, 심황후 덕이 많으시사 당년부터 연풍허여 요순천지가 다시 되었겄다 황후 부귀영화 극진허나 심중에 숨은 근심 다만 부친 생각이라 일일은 수심을 못 이기어 시종을 물리시고 옥난간에 비기어 계실적으, (진양조)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 주렴으 비치어 들고, 실솔은 슬피 울어 나유원에 흘러들제, 청천의 외기러기는 월하으 높이 떠서, '뚜루루루루루루 낄룩' 울음을 울고 오니, 심황후 기가맥혀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울고 오는 저 기럭아! 너 무삼 설음 있어 저리 슬피 울고 오느냐? 짝을 잃고 네 우느냐? 도화동 우리 부친 슬픈 소식 전허자고 나를 불러 네 우느냐? 이몸은 불효막심이라, 일장 음신 못 올리나, 부처님의 영험으로 감은 눈을 뜨셨으며, 도화동 백성들이 옛 언약을 아니 잊고 시량이나 이우더냐? 눈 못 뜨고, 배가 고파 문전걸식 눈치를 받고, 나를 부르고 다니면서 아사지경이 되셨느냐? 고생이 그러셔도 살어나 계시오면 천행만행 되련마는, 만일 불행 병환 들어 적막공방 누워 계시면, 약 한 첩 물 한 모금을 어느 뉘라 줄 것이며, 혼자 기진 굿기신들 뉘가 염습 안장 헐꼬?" 이렇듯이 울음을 울다 창공을 바라보니, 기러기는 간 곳 없고, 별과 달만 밝었구나. 심황후 기가맥혀, "야, 이 무심한 저 기럭아. 내의헌 말 들었거던. 우리 부친전으 세세히 아뢰어 다오."
(중모리) 찾어가서 뵙자헌들 구중궁궐 깊은 곳에 지척을 알 수 없고, 황제께 주달허여 칙사 보내 모셔오면 그 수가 좋을 테나, 생사도 알 수 없고, 만일 발설허였다가 종적도 못 찾으면, 선녀로 아는 터에 치졸허게만 될 것이니, 부친을 뵈온 후에 발설함이 옳다허고, 이리 걱정 저리 생각 수심으로 앉었을 제,
(아니리) 황제 내전에 듭시와 황후를 살펴보시니 미간에 수색이요, 화용에 눈물 흔적이라. 고이히 여겨 물으시되, "귀허기 황후가 되시고, 부허기 사해를 누리셨으며, 금슬지우 종고지락이 있사온데, 황후는 무삼 일로 옥면 수색이 있나이까." 황후 나짓이 여짜오되, "폐하를 모시올 때 수색이 나타나서 황송무지 하옵거니와,"
(중모리) "주나라 때 태임 태사 이남덕화 장허시고, 우리나라 선대 황후 여중요순 송덕이오나, 신첩은 무슨 덕으로 만민국모 되었는지 부끄러운 주야 근심 천려일득허였사오나, 아뢰옵기 황송하와 섭유불발허옵더니, 하교가 계시오니 감히 주달허옵니다. 주 문왕은 첫 정사가 노자 안무허시옵고, 한 무제는 방춘화시 가긍헌 환과고독 사궁을 진휼허셨으니, 백성 중에 불쌍헌 게 나이 많은 병신이요, 병신 중에 불쌍헌 게 앞 못 보는 맹인이라 공부자도 일렀으니, 천하 맹인 다 모아서 주효를 먹인 후으, 그 중에 유식 맹인은 좌우에 모시어서 성경을 읽게 허시고, 늙고 병든 맹인이며 자식도 없는 맹인들은 황성에다 집을 주어, 한 데 모다 모아 두고, 요를 주어 먹이오면, 무고한 그 목숨이 전학지환 면헐 테요, 덕화만방 미칠 테니 깊이 통촉을 허옵소서." 황제 듣고 기뻐하사, "장하도다, 국모 말씀. 과인이 생각 못헌 바를 황후가 도우시니 만복의 근원이라. 소회대로 허오리다."
(아니리) 이렇듯 황후를 칭찬허시고, 이튿날 즉시 하교허사, "천하에 있는 맹인 궐내에서 백일잔치를 허되, 방방곡곡 지시문에 국경연으로 기송하라." 이렇듯 어명이 나리셨것다
(아니리) 각설, 이 때 심봉사는 도화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주 지경에서 지내다가 황성 잔치를 가게 되얐는디, 어찌허여 형주까지 가게 되얐는지 이야기를 한번 치더듬어 보던 것이었다.
(진양조) 그 때여 심봉사는 출천대효 딸만 잃고, 모진 목숨 죽지도 못허고 근근부지로 지낼 적으, 봄이 가고, 여름이 되니 녹음방초 시절이로고나. 산천은 적적헌디 물소리만 처량허다. 딸과 같이 노던 처녀들은 종종 와서 인사를 허니, 딸 생각이 더욱 간절허구나. 심봉사 마음이 산란허여, 지팽막대를 검쳐잡고 망사대를 찾아가서, 비석을 안고 울음을 운다. "악아! 청아! 인간의 부모를 잘못 만나 생죽엄을 당허였구나. 아비를 생각커든 어서 나를 다려가거라. 눈 뜨기도 나는 싫고, 세상 살기도 귀찮허다." 타루비 앞에 가 꺼꾸러져서 치둥굴 내리둥굴, 머리도 지끈, 가삼 쾅쾅, 두 발을 굴러 망지소지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이렇듯 낮이면 강두에 가 울고, 밤이 되면 집에 들어 울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디, 그 때 마침 그 근촌에 사는 아주 흉악한 홀어미 하나가 있으되, 이름은 뺑덕이네요, 별호는 뺑파라. 얼굴이 고금일색일는지 만고박색일런지는 몰라도, 심봉사는 뺑덕이네에게 대혹하여 저 허자는 대로 내비려 두었더니 뺑덕이네 이 몹쓸년은 심봉사 그 불쌍헌 전곡, 심청이가 마지막 죽으로 갈 때 앞 못 보신 늙은 부친 노래에 굶지 말고, 벗지 말으시라고 주고 간 그 불쌍헌 전곡을 꼭 먹성질로 조져대는디 뺑덕이네 행동거지와 먹성 속은 이일주 말과 조금도 틀림이 없던 것이었다
(자진모리) 밤이면은 마을 돌고, 낮이면은 낮잠 자고, 쌀 퍼주고 떡 사 먹고, 벼 퍼주고 엿 사먹고, 의복 잡혀 술 먹기와 빈 담뱃대 손에 들고 오고가는 행인들게 담배 달라 힐난허기, 머슴 잡고 어린양에 젊은 중놈 유인허기. 동인 걸어서 욕설허고, 초군들과 싸움허고, 여자 보면 내외허고, 남자 보면 빵긋 웃고, 코 큰 총각 술 사주기, 잠 자면서 이 갈기와 배 끓고, 발목 떨고, 한밤중에 울음 울고, 이불 속에서 방구뀌기. 삐쭉허면 빼쭉허고, 빼쭉허면 삐쭉허고, 힐끗허면 핼끗허고, 핼끗허면 힐끗허고, 술 퍼먹고 활딱 벗고 정자 밑에서 낮잠 자기. 남의 내외 잠자는 디 가만가만 가만가만 가만가만 들어가서 봉창문에가 입을 대고, "불이야!" 왼갖 악증 다 겸허여, 이 전곡을 모두 다 빨아먹은 연후에는 이삼일 먹을 양식만 남겨두고 도망헐 작정으로, 오뉴월 가마귀 곤 수박 파 먹듯 밤낮없이 파 먹는구나.
(아니리) 하루는 심봉사가 궤속을 더듬아본즉 엽전 한 푼이 없거든. "아니 여, 뺑덕이네! 아, 여, 뺑파!" "예?" "내가 이 근방에서 그 실없이 소문 없는 졸부자 말을 듣는 터인디, 여, 궤 속에 엽전 한푼이 없으니 이거 어떻게 된 일이여?" "하이고, 영감도! 아, 영감 디린다고 술 사오고, 고기 사오고, 떡 사오고, 담배 사온 것이 다 그 돈이지, 무슨 돈이다요?" 심봉사 듣더니, "흥, 많이 사다주더라. 그만 두소. 여편네 먹은 것 쥐 먹은 것이라고, 그만두고, 여, 재 너메 김동지댁에 맡긴 돈 백 냥 찾아오소. 우리 가용이나 쓰세." "하이고, 영감도! 아, 그 돈 벌써 찾어다가 꽃실네 집에 해장값 주고, 또 김순장댁 돈 일백오십 냥 찾어다가 불똥이 할미네집에 떡국값 주고, 엿값 주고, 단술값 주고, 이진사댁 돈 맽긴 놈 삼백 냥 찾아다가 복성값 주고, 능금값 주고, 앵두값 주고, 단술값 주고, 살구값 주고, 머!" 심봉사 기가맥혀, "잘 먹었다. 잘 먹었어!" 심봉사가 그 전곡 말만 들먹거리면 딸의 생각으 뼈가 저리는지라, 먼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중중모리) 아이고, 이것이 웬 말이냐! 네 이 몹쓸 뺑덕이네야. 이년아, 몹쓸 년아! 네가 이것이 웬 일이여? 출천대효 내 딸 심청 인당수 죽으러 갈 때, 앞 못 보는 늙은 애비 사후에 신체라도 의탁허라고 주고 간 돈, 네 년이 무엇이라고 그 전곡을 없앴느냐?" 여광여취 뛰어나가 지팽이 찾어 짚고, 심청이 가던 길로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더듬거려 나가다가, 그 자리에 퍼썩 주저앉더니마는, "악아, 청아! 예끼! 무상헌 자식아! 애비 신세를 어쩌라고 어디 가고 못 오느냐? 너는 죽어 모르건마는, 애비는 살어 고생일다. 내 자식아! 너 죽어 황천 가서 너의 모친 뵈았거든, 모녀간 혼이라도 나를 어서 잡어가거라. 눈 뜨기도 나는 싫고, 세상 살기도 귀찮허다. 날 다려가거라 나를 다려가거라 "
(아니리) 이렇듯 울음을 우니 뺑덕이네가 살망을 한번 피우는디, "하이고, 여보 영감! 아, 어쩐 일인지 저지난달부터 몸구실을 딱 거르더니마는, 밥맛은 도모지 없고 신것만 꼭 구미에 댕겨, 살구 좀 사먹은 것이 먹기사 얼마나 먹었더라요? 살구씨 일곱 섬!" 물색 모르는 심봉사 그 말에는 귀미 댕겨, "아, 여보게! 아 그 저지난달보텀이여? 그러면 그, 혹시 그 태기 있을라는가베. 히히, 그려. 남녀간에 무엇이거나 그 눈 먼 딸자식이라도 하나 낳기만 허게. 그러나 저러나 아들이 될지, 딸이 될지는 모르지마는, 원 시상으 살구씨가 일곱 섬이라니, 신것을 그렇게 많이 퍼묵고, 그놈의 자식 그것 낳드래도 신둥머러져서 그것 쓰까 몰라?" 이리 되어 그 고장에서는 부끄러워 얻어 먹을 수도 없다하고, 남부여대 길을 떠나 정처 없이 다니다가, 형주 지경을 당도허여 다 쓰러져가는 빈 집 하나 얻어 근근히 지내는디, 하로는 형주자사가 부르시더니 분부허시되, "지금 황성으서 맹인 잔치가 열렸으니, 만일에 불참허면 중벌을 면치 못할 테니, 어서 급히 올라가라!" 이리 되어 노자까지 얻어가지고 뺑덕이네를 다리고 황성을 올라가다가,
(중모리) 주막에 들어 잠잘 적으, 뺑덕이네 몹쓸년은 주막 근처 사는 봉사 중에 제일 젊은 황봉사를 발써 꾹 찔러 약조허여 주막 딴 방에 두었다가, 심봉사 잠든 연후에 둘이 손길을 마주잡고 밤중으 도망을 허였구나. 그 때여 심봉사는 초저녁잠 훨씬 자고 새벽녘에 일어나서 아무리 만져봐도 뺑파가 없는지라, "아니 여, 뺑파! 아 여, 뺑덕이네! 어디 갔어?" 이 구석 저 구석을 더듬는구나.
(아니리) 아무리 더듬어봐도 뺑덕이네가 없는지라 심봉사 팡겨가지고, "여보, 주인! 주인!" "예!" "그 안에 우리 마누래 안 들어갔소?" "아니오!" "아니 그러면, 여그서 같이 자던 마느래가 없어졌으니, 이거 어떻게 된 일이여? 아, 그 주인이 찾아 줘야지." "아, 그 여인 어떤 봉사와 새벽질친다고 벌써 떠나든디요! 아니 뭣이 어쩌고 어쩌? 아이고 이년 갔구나!"
(진양조) 심봉사 기가맥혀, "아이고, 이 일을 어쩔거나. 허허, 뺑덕이네가 갔네그려. 에기, 천하 의리 없고 사정 없는 요년아. 네가 버릴 테면 있던 곳에서 말이나 허제, 수백 리 타향에 와서 날 버리고 네가 무엇이 잘 되겄느냐, 요년아! 에기, 천하 몹쓸년아! 뺑덕어멈아, 잘 가거라. 앞 못 보는 이 병신이 황성 천 리 먼먼 길을 막지소향 어이를 갈끄나.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순인군은 성인이라 눈에 동자가 너이시고, 부처님은 무슨 도술로 눈이 천이나 되시는디, 나는 어이 무슨 죄가 지중허여 눈 하나도 못 보는그나. 몹쓸 놈의 팔자로구나."
(아니리) 예기 순 호랭이가 파싹 깨물어갈 년! 워라, 워라, 워라. 현철허고 얌전헌 우리 곽씨부인 죽는 양도 보고 살고, 출천대효 내 딸 심청 생이별도 허고 살었는디, 너같은 년을 생각허는 내가 도리어 농판이지. 내 다시 네년을 생각허먼 인사불성의 쇠아들놈이다, 이년!" 막담을 덜컥 지어놓고,
(중모리) 날이 차차 밝어오니 주인을 불려서 하례 닦고, 행장을 짊어지고 황성길을 올라간다. 주막 밖을 나서더니마는, 그래도 생각이 나서 맹서 헌 말 간 곳 없고 뺑덕이네를 부르넌디, 그 자리으 퍼썩 주저앉어, "뺑덕이네야! 뺑덕이네. 에기, 천하 몹쓸 년아. 네 그럴 줄 내 몰랐다. 황성 천리 먼먼 길을 어이 찾어가잔 말이냐? 내가 눈이 있거드면, 앞에는 무슨 산이 있고, 길은 어디로 행허는지 분별하여 갈 것인디, 지척 분별을 못허는 병신이 어이 찾어서 가잔 말이냐?" 새만 푸르르르르르 날아가도 뺑덕이넨가 의심을 허고, 바람만 우루루루루루루 불어도 뺑덕이넨가 부르는구나. "뺑덕이네야! 모지고도 야속헌 년. 눈 뜬 가장 배반키도 사람치고는 못 헐 텐디, 눈 어두운 날 버리고 네가 무엇이 잘 될소냐! 새 서방 따러서 잘 가거라."
(중중모리) 더듬 더듬 올라갈 적, 이 때는 어느 땐고. 오뉴월 한더우라. 태양은 불같은디, 비지땀을 흘리면서 한 곳을 당도허니, 백석청탄 맑은 물이 흐르는 소리 들린다. 심봉사 거동 봐. 물소리 듣더니 반긴다. "얼씨구나, 반갑다. 유월 염천 더운 날 청파유수에 목욕을 허면 설은 마음도 잊을 테요, 맑은 정신이 돌아올 터이니, 얼씨구나 반갑다." 의관 의복을 벗어놓고 물에 가 풍덩 들어서, "에, 시원허고 장히 좋다." 물 한 주먹을 덥벅 쥐어 양치질도 허여보고, 또 한 주먹 덤벅 쥐어서 가슴도 훨훨 문지르며, "에, 시원허고 장히 좋다. 삼각산 올라선들 이어서 시원허며, 동해수를 다 마신들 이어서 시원헐끄나.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 좋네." 툼벙툼벙 다닌다
(아니리) 이렇듯 목욕을 헐 제, 심봉사보담 훨씬 더 시장헌 도적놈이 의관 의복을 죄주다 집어가지고 도망을 허였것다. 심봉사는 뉘가 농허는 줄로만 알고, "거 뉘기여? 거 누가 나허고 농헐라고 내 옷을 감춘 게로구나. 이리 가져와. 내가 암만 눈이 없어도 거 다 짐작이 있구만. 가져와. 안 가져와? 안 가져와? 예이, 시러배아들놈의 인사저석겉으니라고. 농도 분수가 있지, 아, 그 봉사허고 농을 헐라고 그려? 고연놈의 인사저석이로고. 안 가져와? 안가져와?" 아무리 소리를 헌들 대답헐 리가 뉘 있으리! 심봉사 그제야 도적맞은 줄을 짐작허고
(중모리) 허허, 이제는 죽었구나! 정녕 나는 꼭 죽었네. 옷을 훨씬 벗었으니 굶어서도 죽을 테요, 불꽃같은 이 더우에 데어서도 나는 죽겄구나. 예이 좀도적놈들아! 내 옷 가져오느라! 쓰고 먹고 입고 남은 재물도 많을 텐디, 눈 어둔 내 것을 가져가니 그게 차마 헐 일이냐? 네 이놈들아, 봉사 것 도둑질허먼 열두 대 줄봉사 난단다! 옷 가져오너라!" 죽어도 양반이라 체면을 아는 고로, 한 손으로 앞을 가리고, "내 앞에 부인네 지내거던 다 돌아서서 가시오! 내 어쩌다 벗었소!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천지 인간 병신 중의 날같은 이가 뉘 있으리. 일월이 밝었어도 동서 분별을 내 못허니, 살아 있는 내 팔자야! 모진 목숨 죽지도 못허고, 내가 이 지경이 웬 일이냐." 이리 앉어 울음을 울 적, 그 때 마침 무릉태수가 황성 갔다 오는 길인디, 벽제 소리가 들리거늘, 심봉사 듣고 좋아라고, '옳다. 여 어디 관장이 지나가시는 모냥이로구나. 인제는 살었다.' 행차가 점점 당도커늘, 심봉사 거동 보소. 벌거벗은 알봉사가 한 손으로 앞을 가리고, 한 손에는 지팽이를 짚고 엉금엉금 들어가며, "아뢰어라! 급창아, 아뢰어라! 황성 가는 맹인인디, 배알차로 아뢰어라!" 행차가 길을 머물더니마는, "어이! 나는 무릉태수거니와 어데 사는 소경인디, 어찌 옷은 벗었으며, 거 무슨 말을 허랴는다?" "아뢰어라!" "예, 소맹이 아뢰리다. 소맹은 황주 도화동 사옵더니, 황성잔치 가는 길에 하도 날이 더웁기로 이 물에서 목욕을 허다 의관 의복을 잃었사오니, 진소위주출지망량이요, 진퇴유곡이 되었으니 찾어주고 가시던지, 한 벌 무롸주고 가시든지 별반처분허옵소서.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 허였으니, 태수장 덕분으 살려주오."
(아니리) 태수 들으시고 가긍히 여기시사 통인 불러 분부허시되, "네 여봐라. 의롱 열고 의복 일습 내주어라. 급창은 벙거지 써도 탈 없으니 갓 벗어 소경 주고, 교군꾼은 수건 써도 탈 없으니 망건 벗어 소경 주라." 심봉사 받어 쓰고 입더니 "은혜 백골난망이오 내 황성 갔다 오는 길에 태수장님 꼭 찾어뵙지요"
자진모리 : 백배사례 하직허고 황성길을 올라갈 제, 낙수교를 얼른 건너 녹수정을 지내갈 제, 일력은 점점 황혼인디, 사람 자취 끊어져 물을 곳 바이없고, 근처 인가는 없는 모냥. 혼자 걱정으로 허둥지둥 가노라니, 어데서 방아소리가 얼른얼른 들러거나, "옳다. 이 근방에 동네가 있구나. 내가 찾아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제." 논틀로 밭틀로 더듬 더듬 더듬 들어가 부지불각 들어서며, 숨결고 가쁜 김에 뚝성으로 허는 말이, "말 조끔 물읍시다!" 그 중에 왈패 여인 하나 썩 나서면서 책망인지 욕설인지 호령을 내놓는디, "아니 남녀가 유별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바인디, 여인네만 모인 곳에 의관을 헌 작자가 불문곡직 달려드니, 저 제기붙을 손을 눈망울을 쑥 집어내라!"
(아니리) 심봉사 가만히 들어본즉, 말허는 그 여인네 말 성음부터 원체 싸나울 뿐 아니라, 밥 굶은 밤손님이 거센 체해서는 안 될 성싶어 턱 늦구어 허는 말이, "헤, 황성 근처 아씨들이 눈망울을 잘 뺀다기에, 나는 눈망울을 빼서 아주 우리집에 두고 왔구만." 왈패 여인 허는 말이, "네 그 손 눈 없는가 자세히 살펴보아라!" 여인 하나가 등불을 들고 가만히 쳐다보더니, "아이구메! 아이고, 참말로 이 손님 눈 없네!" 왈패 여인 듣더니, "아니, 눈망울도 없는 것이 이 밤중에 여기를 어떻게 찾어왔어? 기왕 온 것이니, 방아나 조깨 찧어 주제." 심봉사도 농으로 슬쩍 대답을 허는디, "제기, 참. 공연히 방애를 찧어 줘? 방애 찧어 주면 무엇이나 조깨 줄라간디?" "하이고, 그놈의 봉사 의뭉허기도 허다. 주기는 뭘 줘? 밥 주고, 술 주고, 고기 주고, 담배 주면 그만이지." 밥 주고, 술 주고, 고기 준다는 통에 방아를 한번 찧어보는디, 방아를 어떻게 찧는고 허니,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계셨다가 이미 고인이 되신 동초 김연수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으신 오정숙 우리 선생님께서 저를 가르쳐 주셨든바, 도저히 우리 선생님같이 헐 수는 없지마는 되던지 안 되던지 흉내라도 한번 내보던 것이었다.
(중중모리) "어유아 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얼크덩 떵떵 잘 찧는다. 어유아 방아요. 만첩청산을 들어가 이 나무 저 나무 베어다가 이 방아를 반들었나. 어유아 방아요. 유소씨 구목위소 이런 나무로 집지시며, 신농씨 유목위뢰 이런 나무로 따부 허셨든가. 어유아 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오고대부 죽은 후에 방아소리도 끊쳤더니, 우리 성상 즉위허사 국태민안허옵신디, 하물며 맹인잔치 고금에 처음이라, 우리도 태평성대 방아타령을 허여보세. 어유아 방아요."
(자진모리) "어유아 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얼크덩 떵 잘 찧는다. 어유아 방아요. 이 방아가 뉘 방아? 강태공 조작이로다. 어유아 방아요. 들로 가면 말방아요, 강을 끼면은 물방아로다. 어유아 방아요. 혼자 찧는 절구방아, 이 방아는 디딜방아다. 어유아 방아요. 방아 만든 제작을 보니, 사람을 비양튼가, 두 다리를 쩍 벌렸네. 어유아 방아요. 옥빈홍안의 비녈른가, 가는 허리에 가잠이 찔렸구나. 어유아 방아요. 길고 가는 허리를 보니 초왕궁인의 맵시든가. 어유아 방아요. 얼크덩 떵 잘 찧는다. 어유아 방아요. 머리를 들어오르는 양은 창해 노룡이 성을 낸 듯. 어유아 방아요. 머리를 숙여 내리는 양은 주문왕의 돈수든가. 어유아 방아요. (자진 자진모리)어유아 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얼크덩 떵 잘 찧는다. 어유아 방아요. 사철 찧는 쌀방아요, 명절 때면은 떡방아로다. 어유아 방아요. 지글지글 보리방아, 찧기 좋은 나락방아. 어유아 방아요. 호호 맵다 고추방아, 구수룸허구나 깨목방아. 어유아 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심봉사가 방아소리를 농을 청하며 메기는구나. 어유아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황성 천리 가는 길에 신명나기는 처음이로구나. 어유아 방아요. 어유아방아요. 저그 저 부인 넓적다리는 일성 보아도 심도 시구나. 어유아 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각시들도 똥 잘 뀌더라. 구린내 바람에 콧잔등 부러진다. 어유아 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이 방아를 어서 찧어 보리쌀 뜨물에 호박국 끓이라. 우리 방애꾼들 배충복허세. 어유아 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어유아 방아요. 오리락 내리락 잘 찧는다. 어유아 방아요. 삐걱삐걱 잘 찧는다. 어유아 방아요
아니리 : 이렇듯 방아 찧고, 밥 얻어먹고, 사랑방에서 편히 잘 자고, 아침밥까지 얻어먹고 또 황성을 올라가는디, 또 석양을 당도하여 한 모롱이 돌아드니, 어떠한 여인인지, "저기 가시는게 심봉사시오?" "거 뉘기오? 아, 그 이 근방서 나를 알 만헌 사람이 없는디, 괴이헌 일이로다." "심봉사시먼 이리 좀 오십시오." 여인을 따러가니, 집안으로 들어가 외당에 앉히고 저녁을 잘 대접헌 연후에, 여인이 다시 나와, "봉사님, 내당으로 들어가십시다."
(자진모리) 내당으로 들어가니, 내당에 어떤 부인 시비를 부르더니 좌를 주어 앉힌 후에, 그 부인 허는 말이, "당신이 분명 심봉사시지오?" "어찌 그렇게 아십니까?" "아는 도리가 있답니다. 내 성은 안가옵고, 십 세 전 안맹허여 점치는 법을 대강 배웠삽기, 삼십오 세 금년이라야 방년인 줄 내 이무 알었으나, 간밤의 꿈을 꾸니, 일월이 떨어져서 물에 가 잠긴 것을 첩이 선뜻 건져내어 품에다 안었으니, 천상의 일월이란 사람의 안목이라, 내의 배필 날과 같은 맹인인 줄 알었으며, 물에 가 잠겼기로 심씨인 줄 짐작하와 당돌히 청했사오니, 첩이 비록 용렬하오나, 버리지 않으시면 평생 한이 없겠내다
(아니리) 심봉사 속으로 어찌 좋던지 두부자루 터지는 웃음을 한 번 웃더니마는, "흐, 말이사 좋은 말이지마는, 그렇게 되기가 쉬우까 몰라?" 심봉사와 안씨맹인과 그날 밤 지낸일이야 뉘 알 수 있으리오 동방화촉에 호접몽을 꾸었것다. 모든 근심 다 잊어뻐리고 잠시라도 즐기더니, 그날밤 몽사가 괴이헌지라. 이튿날 일어 앉어 심봉사 걱정수심으로 한숨쉬고 앉었거늘, 안씨부인 묻는 말이, "우리가 백년가약을 맺인 후 첩은 평생 소원을 이뤘는가 허옵는디, 무슨 걱정이 있으신지, 첩이 도리어 불안허오이다."
(중모리) 심봉사 듣더니 허는 말이, "이 내 팔자 기박허여 평생을 두고 증험허되, 호사다마요 홍진비래를 날로 두고 이름인지, 좋은 일 있으면은 악헌 일이 삼기는디, 간밤에 꿈을 꾸니 내 몸이 불 속에 들어 보이고, 내 가죽을 벗겨 북을 매어 쳐 보이고, 나뭇잎 떨어져 뿌리를 덮어 보이니 나 죽을 꿈인가 허나이다." 안씨맹인 이 말 듣고 묵묵히 앉었더니, "그 꿈 장히 좋사이다. 해몽을 이를게 들으시오. 신함화중허니 회복을 가지라, 몸이 불 속의 들었으니 옛 일이 회복될 대몽이요, 거피작고허니 입궁지상이라, 가죽을 벗겨 북을 매어 쳐 보이니, 고성은 궁성이라. 몸이 궁중에 들 꿈이요, 낙엽이 귀근허니 자손을 가봉이라, 나뭇잎 떨어져 뿌리를 덮었으니, 자녀를 상봉헐 대몽이오. 이런 대몽은 고금에 드문지라, 경사 있으리니 아무 염려 마옵소서."
(아니리) 심봉사 이 말 듣고 탄식허여 허는 말이 "내게는 천부당 만부당이요, 만불성설이오. 무남독녀 외딱 하나 인당수에 죽었는디, 어느 자식이 있어 상봉을 헌단 말이오?"
(중중모리) 안씨맹인 이 말 듣고, "지금은 내 말을 허망히 알으시나 장차 두고 보옵소서." 만단으로 위로 허고 조반을 마친 후으, 그날 함께 길을 떠나 황성을 당도허니, 소경이 어찌 모였던지 소경냄새 진동허고, 지팽이 서로 닿는 소리 '따그락 딱 딱 딱' 깨를 볶는 소리 같은지라. 그 때여 소경들 잔치 참례허라 웨는 소리가 들리는디, 봉명사령이 역기를 메고 골목골목 다니면서, "각성 각읍 소경님네! 오늘이 맹인잔치 망종이니 어서 와서 참례허오!" 이렇듯 웨는 소리 원근선천이 떵그렇게 들린다.
(아니리) 심생원도 그제야 정신차려 "이것 내가 암만해도 이거 꿈을 꾸는 것 아닌가, 여?" 황후 부친을 붙들고, "아버님. 제가 죽었든 청이옵니다. 살어서 황송하옵게도 황후가 되었사옵니다." 심생원 깜짝 놀래, "에이? 아이고, 황후마마. 군신지의가 지중하온대 황송무지하옵니다. 어서 저 전상으로 납시옵소서." 심생원이 말소리를 들어보고 전후 모습을 잠꽌 보더니마는
(중모리) "옳제, 인제 알겄구나. 내가 인제야 알겄구나. 내가 눈이 어두워서 내 딸을 보던 못했으나, 인제 보니 알겄구나. 갑자 사월 초파일밤 꿈 속의 보든 얼굴 분명한 내 딸이네. 죽은 딸을 다시 보니 인도환생을 허였느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이것이 꿈이냐? 이거 생신가? 꿈과 생시 분별을 못 허겄네. 얼씨구나 좋을씨고, 절씨고나 좋을씨고. 아까까지 내가 맹인이라 지팽이를 짚고 다녔으나, 이제부터 새 세상이 되니 지팽이도 작별허자. 너도 나 만나갖고 고생 많이 했다. 이제는 너 갈 데로 잘 가거라." 피르르르르르 내던지고, "얼씨구나 좋을씨고."
(중중모리) "얼씨고나 절씨고, 절씨고나 절씨고. 얼씨고 절씨고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고 어둡던 눈을 뜨고 보니 황성 궁궐이 장엄허고, 궁 안을 살펴보니, 창해 만리 먼먼 길 인당수 죽은 몸이 한 세상에 황후 되기 천천만만 뜻밖이라. 얼씨구나 절씨고. 어둠침침 빈 방안으 불 켠 듯이 반갑고, 산양수 큰 싸움에 자룡 본 듯이 반갑네. 홍진비래 고진감래 날로 두고 이름이요, 부중생남중생녀 날로 두고 이름이로구나. 얼씨구나 절씨고. 여러 봉사들도 눈을 뜨고, 춤을 추며 송덕이라.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고. 이 덕이 뉘 덕이냐? 황후 폐하의 성덕이라. 일월이 밝어 중화허니, 요순 천지가 되었네. 태고적 시절이래도 봉사 눈 떴단 말 처음 들었네. 얼씨구나 절씨고. 덕겸삼황에 공과오제 황제 폐하도 만만세. 태임 태사같은 여중요순 황후 폐하도 만만세. 천천만만세 성수무강 허옵소서. 얼씨구나 절씨구. 심생원은 천신이 도와서 어둔 눈을 다시 뜬 연후의, 죽었단 따님을 만나보신 것도 고금에 처음 난 일이요, 우리 맹인들도 잔치에 왔다가 열좌맹인이 눈을 떴으니, 춤출 무 자가 장관이로다. 얼씨구나 절씨고. 얼씨고 절씨고 칠씨고 팔씨고 얼씨구나 절씨고!"
(아니리) 여러 맹인들도 눈을 뜨고 심생원과 함께 춤을 추며 노는디, 그 중에 눈 못 뜬 봉사 하나가 술이 얼근히 취해가지고, 아무 물색 모르고 함부로 덤부로 뛰어다니더니마는, 여러 맹인들 눈 떴다는 말을 듣더니 한편에 퍽썩 주저앉어 울고 있거늘, 심황후 보시고 분부허시되, "다른 봉사는 다 눈을 떴는데, 저 봉사는 무슨 죄가 지중하여 홀로 눈을 못 떴는지 사실허여 아뢰어라!" 눈 못 뜬 봉사는 다른 봉사가 아니라, 밤중에 뺑덕이네와 도망간 황봉사라. 황봉사 복지하여 아뢰는디,
(중모리) "예, 소맹이 아뢰리다. 예, 예, 예, 예! 소맹이 아뢰리다. 소맹의 죄상을 아뢰리다. 심부원군 행차시에, 뺑덕어미라허는 여인을 앞세우고 오시다가 주막에서 유숙을 허시는디, 밤중에 유인허여 함께 도망을 허였더니, 그날밤 오경시에 심부원군 울음소리 구천으 사모쳐서, 명천이 죄를 주신 배라, 눈도 뜨지 못했으니, 이런 천하 죽일 놈을 살려두어 무엇허오리까. 비수검 드는 칼로 당장에 목숨을 끊어주오."
(아니리) "죄상을 생각허면 죽여 마땅허거니와, 제 죄를 지가 아는 고로 개과천선할 싹이 있는지라, 특히 약을 주는 것이니 눈을 한번 떠보라." 용궁 시녀 약 갖다 발러주니, 황봉사가 한참 눈을 끔쩍 끔쩍 야단을 허더니마는, 한 눈만 계우 딱 떠논 것이 총 쏘기는 좋게 되었든 것이었다. 이런 일을 보더라도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요, 적악지가에 필유여앙이라. 어찌 천도가 없다할 것이오?
(엇중모리) 그 때여 황후께서 심생원을 입시시켜 부원군을 봉허시고, 곽씨부인 영위에는 부부인 가자 추증, 치산과 석물 범절 국릉과 같이 허고, 안씨부인 교지를 내려 정렬부인을 봉허시고, 무릉촌 장승상부인은 별급상사허신 후으, 그 아들은 직품을 돋우와 예부상서를 시키시고, 젖 먹이던 귀덕어미는 천금상을 내리시고, 화주승을 불러 올려 당상을 시키시고, 꽃 바친 도선주는 본성 태수 제수허고, 새로 눈 뜬 사람 중에 유식자 벼슬 주고, 무식자 직업 주어 각기 돌려보내시고, 무릉태수 형주자사는 내직으로 입시허고, 도화동 백성들은 세역을 없애시니, 천천만만세를 부르더라. 언재무궁이나 고수 팔도 아프실 것이요 이일주 목도 아플 지경이니 어질더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