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이하 속옷밴드)가 [사랑의 유람선]이라는 첫번째 미니앨범을 냈다. 정규 앨범이라기에도 EP라고 하기에도 머쓱한 이들의 앨범은, 고집스럽게 음악적 장르 없음을 지향하는 그들의 현재의 지점과도 유사하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기만 한 연주를 하는 이들, 속옷 밴드에게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인디 밴드들을 설명하던 수식어와는 다른 수식어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들의 음악을 지칭하는 이름을 찾자면 포스트 락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하나로 규정될 수 있을 만큼 명확하지는 않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어떤 음악적 장르로 묶여 규정되는 것이 싫어, 스스로 택한 묘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랑의 유람선]은 일렉트로닉 성향의 포스트락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불안하고 모호한 인디 밴드들의 약점을 속옷의 음악에서는 찾기 힘들다. 특히 그들의 연주를 직접 들어보자면 여타의 인디 밴드들과는 다른 안정감을 발견할 수 있다. 라이브 클럽 빵에서는 그들의 연주를 직접 보고서야 팬이 된 친구들이 많은데, 공연장에서 거칠게 직접 녹음된 싱글곡, ‘멕시코’라는 곡은 정말이지 이국적이며, 어느 다른 나라의 유창한 밴드가 연주했다고 믿어질 만큼 세련되어 있다.
더욱이 이번 미니 앨범은 보컬이 단 한 곡도 없이(명확히 말하자면, 단 한 곡 있으나, 거의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이 있는) 40여분이 7곡의 연주곡이다. 이러한 점 역시 우리 나라의 음반 시장에서는 상당히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지만, 이들의 연주 정도라면 충분하다. 2년 동안의 수정을 거쳐 마무리된 이번 앨범은 우리 나라에서의 포스트락 혹은 실험주의적인 정신에 입각해 음악을 하는 진지한 밴드를 간절히 원하던 많은 청자들에게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의 유람선]이라는 고전적인 어감의 이 타이틀의 앨범은, 사실 그 이름처럼 고전적이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사랑의 유람선]은 듣는 사람에게 어떤 거리감을 안겨주는데 그것은 앨범 전체에선 느껴지는 울림 때문이기도 하다. 공간에 의한 울림은 이들의 기타와 드럼 소리를 만나 더 새로워진다. 런닝 타임이 9분이나 되는 첫 곡 ‘폭우’는 마치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타, 빠르게 그러나 호들갑 스럽지 않은 드럼으로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연주는 인디씬이 흥한 지금의 우리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운드이다. 밴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 않은 채 앨범을 듣고 있다면, 이들이 먼 이국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터널’을 지나, 흘러나오는 ‘손짓을 취하다’는 라이브클럽 빵의 컴필레이션 음반 [lawn star]라는 앨범에 실린 곡이다. 그러나 ‘손짓을 취하다’라는 그들의 제목에서처럼 그들의 포즈나 연주는 요란하지 않지만, 누군가 했던 말처럼 한마디로 ‘Deep’하다. 그러나 속옷 밴드의 기타 연주의 멜로디는 우울하며 점층적인 미니멀 효과를 강조하고 있어 자신들의 음원을 상승시켜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말하자면, ‘속옷밴드’의 이번 앨범에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좀 더 달라진 감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 감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곡을 꼽으라면 ‘밤의 글라이더’ 일 것이다. 이들의 음악색을 따진다면 밤의 느낌과 비슷하지만, ‘밤의 글라이더’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나마 밝다. 특히 그들이 스스로 그렇게 들려지기 원했던 것처럼 ‘밤의 글라이더’는 듣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충만하게 해주는 곡이기도 하다. 한밤에 날아가는 밤의 글라이더의 이미지는 이번 미니 앨범에서 속옷 밴드식으로 연주된 것이다.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속옷 밴드는 2000년에 결성된 프로젝트성 그룹이었다. 각자 다른 그룹에서 활동하다가 속옷 밴드에 열중하게 되어, 속옷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속옷밴드의 밴드명은, 어느 책의 인상 깊은 구절 중 하나라고 한다. [사랑의 유람선]이라는 이번 미니 앨범에서도 아이디어 넘치는 속옷 밴드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속옷 밴드는 라이브 클럽 빵에서 서서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몇 개의 싱글곡이 MP3로 인터넷을 돌면서 그들의 이름을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랑의 유람선]에 실린 7곡은 2년 동안 많은 수정 과정을 거쳐 결국 처음과 전혀 다른 느낌의 음악이 되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벨벳 언더그라운드, 토오터스 같은 음악을 좋아하고, 최근에는 메시브 어텍의 근작을 인상 깊게 들었다는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이 어울릴만한 연주 장소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걱정했다. 인디 씬의 스펙트럼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인디 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연 장소와, 소규모 앨범 Ep를 내기에는 현실적 상황에서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속옷 밴드의 이번 앨범은 그 의미가 있으며 한국 인디 밴드들에서 보기 드문 익스페리멘탈을 보여주고 있는 속옷 밴드의 음악은 한국 인디 씬에 또 하나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그들은 주류 락의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자신있게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기타 연주의 멜로디는 우울하며 점층적인 효과를 강조함으로써 최소한의 방식으로 그들의 음악을 상승시킨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