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BLUES “MORE BETTER BLUES”
신촌블루스 4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
MORE BETTER BLUES
토착화된 블루스를 선보이며 국내 블루스 음악의 저변을 넓히는 데 최전방에 섰던 신촌블루스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엄인호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지금껏 자신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스택스 레코드(Stax Records)의 소위 ‘스택스 쏘울’ 사운드를 신촌블루스의 색깔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신촌블루스의 음악은 일반적으로 블루스라고 이야기하지만,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을 들어보면 그 안에서 여러 시도를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집에 담긴 ‘환상’, 엄인호의 솔로 2집에 담긴 ‘너의 맘속에 잊혀진 나는’과 같은 곡은 그가 해석한 쏘울을 신촌블루스에 녹여낸 대표곡이다.
40년을 이어오는 활동 가운데 신촌블루스, 다시 말해 엄인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해외 블루스의 무조건적인 카피를 지양하며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블루스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스스로 ‘마구리 블루스’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가요가 가진 매력에 블루스, 쏘울, 레게 등을 접목해 만들어 온 음악이 신촌블루스의 음악인 것이다. 가요가 가진 매력에는 당연히 가사 역시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그 때문인지 이번 앨범은 이렇게 쌓아온 신촌블루스 음악의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는 느낌이다. 보컬리스트의 ‘절창’을 앞세운 화려한 트랙이 포진됐던 전작들과 달리, 제니스가 보컬을 맡은 ‘루씰’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차분한 전개로 이루어진 수록곡엔 지난 40년을 회고하는 중견 밴드의 여유와 원숙함이 그대로 담겼다. 그 원숙함은 참여한 멤버의 나이와 관계없는 신촌블루스의 나이가 만들어 낸 것일 것이며, 그 중심에 당연히 엄인호라는 음악인이 있다.
다른 앨범과 비교하자면 이번 앨범에서 엄인호는 중심에서 살짝 빠진 느낌이다. 우선 신촌블루스의 앨범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엄인호가 보컬을 맡은 곡이 하나도 없다. 객원 기타리스트인 최항석과 새로운 신촌블루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할 정재호에게 많은 솔로를 양보한 것도 그렇고, 보컬리스트에게 일일이 노래에 대한 창법을 특별히 요구하지 않은 듯 들리는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네 마음은) 바람인가’는 원래 풍선의 앨범에 수록하려고 했지만, 당시 제작자 서판석의 반대로 싣지 못하고 1985년 발매된 엄인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에 수록됐던 곡이다. 신촌블루스 1집에는 한영애의 버전으로, 2집에는 이영훈의 ‘빗속에서’와 접속곡으로 엄인호가 김현식과 호흡을 맞춘 듀엣곡으로 담겼다. 임지수는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특히 ‘싱어게인 3’에서 ‘루씰’로 신촌블루스의 보컬 강성희와 ‘진검승부’로 주목받았다. 특유의 저음역대 목소리의 매력으로, 오디션 참여 때와는 달리 무리하지 않아 전형적인 신촌블루스 여성 보컬리스트의 특징과는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었다. 엄인호와 최항석이 주고받는 기타 연주 역시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앤지’는 원래 2002년에 발표된 옴니버스 앨범 [국내 최고 아티스트 23인의 조화: Artist]에 엄인호 솔로 곡으로 담겼던 곡이다. 곡을 쓸 때 남성 보컬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신촌블루스 버전으로는 [신촌 Blues Revival](2014)에 제니스의 음성으로 처음 실렸다. 어쩌면 이번에 박광현이 보컬을 맡으며 본래의 자리를 찾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승철의 초기 히트곡을 작곡했던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했던 박광현은 피아니스트 이영경과 함께 재즈 밴드 데이지(Daisy)에서 활동했던 이력이 있는데, 당시 그의 보컬 스타일에 매료됐던 엄인호의 제안으로 이번에 참여하게 됐다. 데이지의 앨범이 1994년에 나왔으니 30년 만이다. 보컬이나 기타 모두 ‘어른들의 음악’을 듣는 안정적 자연스러움이 있다.
한영애와 신촌블루스의 버전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루씰’은 신촌블루스의 보컬리스트 가운데 가장 오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며 현재까지도 함께하는 제니스가 메인보컬을 맡았다. 2021년에 발표한 제니스의 첫 독집 [Sweet & Blue]에서는 마치 신촌블루스의 ‘산 위에 올라’처럼 업비트의 색다른 편곡으로 담겼지만, 이번 앨범에는 다시 원곡의 튠을 찾았다. 제니스는 살짝 ‘오버’한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앨범을 통틀어 가장 끈끈한 접근을 취하며 메인 보컬리스트로서의 위치를 확인 시켜준다. 후주 부분 이를 받쳐주는 엄인호와 최항석, 그리고 앞으로 엄인호와 함께 신촌블루스의 또 다른 날개로 활동할 정재호의 일렉트릭 기타 향연 역시 눈부시다.
‘그대 없는 거리’는 1985년 엄인호의 첫 독집과 한영애의 공식 1집으로 불리는 [여울목 / 건널 수 없는 강](1986)에 ‘도시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담겼던 곡이다. 이후 신촌블루스 1집에 다시 ‘그대 없는 거리’라는 제목의 한영애 버전으로 오프닝 트랙이 됐다. 보컬을 맡은 강성희는 이미 신촌블루스에서 활동하며 그 탁월한 가창력에 대해선 인정받고 있었지만, ‘싱어게인 3’를 통해 ‘위로를 주는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으며 더욱 주목받았다. ‘싱어게인 3’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상 클라이맥스의 고음을 강조한 노래를 불렀던 반면, 이번 앨범에 담긴 ‘그대 없는 거리’와 ‘고목’에서는 오히려 지난 신촌블루스의 앨범이나 솔로 앨범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내면에 침잠하는 접근을 취하고 있다. ‘고목’은 원래는 최종혁 작곡, 신병하 편곡으로 윤시내가 불렀던 곡이다. 엄인호는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블루스 성격의 원곡 느낌을 더 살리면 좋을 거란 생각을 했는데, 강성희에게 특히 잘 어울릴 것 같아 수록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강미희는 신촌블루스의 비공식 베스트 앨범 [신촌 블루스 Collection Lights](1997)에 참여해 ‘건널 수 없는 강’을 수록했던 보컬리스트다. 실력도 있지만 사정상 오래 활동을 할 수 없어 아쉬웠는데, 내년 40주년을 앞두고 계속 활동을 하고자 연락하게 됐고,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혀 엄인호가 이전에 불렀던 ‘L.A. 블루스’와 ‘당신이 떠난 뒤에도’를 불렀다. 엄인호는 이 두 곡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만한 보컬을 만나지 못해 직접 불렀지만, 강미희에게 맞춤인 것처럼 잘 소화했다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위스퍼링 창법으로 살짝 퇴폐적이고 몽롱한 섹시미를 한껏 뽐낸 강미희의 신촌블루스 합류는 기존 보컬리스트인 제니스, 강성희와 함께 완벽한 퍼즐을 채워줄 것으로 커다란 기대를 모으게 만든다. 마지막 트랙이라는 아쉬움을 대변하듯 ‘당신이 떠난 뒤에도’의 후주에 넉넉하게 이어지는 트윈 리드 기타의 향연도 감상의 포인트.
앨범 타이틀 [More Better Blues]는 여러모로 스파이크 리(Spike Lee) 감독의 1990년 영화 ‘모베터 블루스(Mo' Better Blues)’를 떠오르게 만든다. 직역하면 ‘더 멋진 블루스’라는 의미가 되겠지만, ‘More Better’가 섹스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의미가 됐던 신촌블루스의 새 앨범과 잘 어울린다. 엄인호가 자신의 음악적 출발점인 스택스 레코드의 쏘울 사운드를 지금까지 구축해 온 신촌블루스의 시그니처 사운드에 슬기롭게 녹여냈다는 점, 수록곡 대부분의 보컬이나 악기 파트에서 기량의 과시보다 전체적인 조화에 중심을 두며 노골적이지 않은 섹시함을 끌어낸다는 점이 그렇다. 신구 멤버의 조화는 물론 객원 멤버와 기존 멤버의 조화는 마이크를 내려놓으며 조연을 자처한 엄인호가 구상한, 40주년을 넘어 이어질 신촌블루스의 새로운 역사다. 그런 의미로 ‘더 멋진 블루스’란 ‘더 멋진 신촌블루스’라 표기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