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이렇게 우아하게 노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품격 있는 노래를 새롭게 만들고 부르고 있다는 것은 드문 사실이다. 앨범 제목 「75」는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가리킨다.
「75」란 제목은 직관적이면서도 많은 함의를 갖고 있다. 정미조라는 위대한 보컬리스트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던 컴백 앨범 「37년」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37년」은 실로 놀라운 앨범이었다. 음악계 은퇴 후 37년이라는 공백의 시간에도 기품 있는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랬고, 그 기품 있는 목소리에 어울리는 음악이 그랬다. ‘37’이라는 숫자 안에 가수 정미조의 세월과 사연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75」는 「37년」이 발표된 지 8년의 시간이 지나 발표하는 앨범이다. 그 시간 동안 정미조는 어른의 품격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앨범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감히 말하건대, 그 음악은 그동안 한국에 없던 음악이었다. 50대의 나이만 되어도 ‘행사’를 위해 트로트풍의 노래를 부르고 이를 ‘성인가요’라 포장해 왔던 가요계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던 음악이었다. 정미조는 기성 성인가요와 어울리지 못했던, 어울릴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한 노래를 불렀다. 말하자면, 정미조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온 존재다.
「75」는 이를 또 한 번 확인시켜 주는 빛나는 결과물이다. 진짜 ‘성인’들을 위한 음악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빛나고, 시간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75세의 목소리에서 또 한 번 빛난다. 제작자이며 뛰어난 작사가이도 한 이주엽과 앨범의 음악감독으로 앨범 대부분의 곡을 만든 손성제가 여전히 정미조의 곁에 있었다. 이들은 정미조가 확장해온 영토의 당당한 구성원이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품격 있는 어른의 음악을 고민하고 모색하고 시도해 왔다.
앨범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feat’라는 로마자이다. ‘featuring’의 준말이 정미조의 노래 제목 옆에 적지 않게 적혀 있는 건 다소 생경하다. 정미조가 음반에서 다른 가수와 노래한 것은 최백호가 유일하다. 그래서 이렇게 한 장의 앨범에 다수의 후배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른 건 새롭다. 노래를 함께 한 손태진, 유채훈, 김민석(멜로망스), 존박, 이효리, 하림, 강승원은 각각의 세계가 있고, 현재 하고 있는 음악도 모두 다르다. 그 각기 다른 장르의 목소리는 정미조라는 고유의 세계를 만나 기품을 연출한다.
정미조의 목소리는 놀랍다. 75라는 숫자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가 ‘통영’에서 사랑의 마음을 고백할 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연인 같고, ‘노라’에서 세월을 충분히 산 화자가 되어 위로를 전달할 땐 그 절창에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떠나요’와 ‘양양’에서의 활력은 또 어떤가. 정미조는 함께 노래한 후배 가수들에게 노래의 연륜을 전하고, 대신 젊음을 얻는다. 조금의 과함도 없이 이 목소리는 한데 묻고 섞이고 어우러진다.
앨범은 함께 노래한 가수들의 재발견이란 역할까지 한다. 존박이 얼마나 멋진 중저음을 가진 보컬리스트였는지를 다시 깨닫게 해주고, 강승원이라는 개성 있는 음악인을 소개하며 그가 가진 무심함의 매력을 알려준다. 간절함 가득한 하림의 목소리도 있다. 이 각각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살리면서도 정미조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게 한 건 프로듀서 손성제의 공이다. 그는 ‘너의 눈망울’처럼 프로그래밍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으로 정미조의 세계를 더 확장하면서도 품격은 놓치지 않게 했다. 그래서 앨범은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형용모순 같은 이 표현은 「75」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정미조의 음악에 이주엽의 가사를 빼놓을 순 없다. 정미조가 돌아온 뒤부터 이주엽은 정미조의 가사를 책임져왔다. 오랜 시간 제대로 된 ‘어덜트 콘템포러리’ 음악을 만들고 싶어 해온 그의 열망은 정미조의 앨범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사랑과 이별의 많은 이야기는 그저 남녀 간이 아닌 삶에 관한 것이었다. ‘세월’, ‘엄마의 봄’, ‘집으로’ 같은 가사는 어른이 되어야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연습하며 많이 울기도 했다는 정미조의 그 마음은 그렇게 노래가 되었다.
75세에 발표한 앨범. 마지막쯤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걸 고백한다. 하지만 앨범을 반복해 들을수록 그런 생각은 달아나 버린다. 「37년」을 처음 들을 때 감탄케 했던 목소리는 「75」에서도 또 한 번 탄성이 나오게 했다. 이 목소리에는 수없이 많은 사연이 담겨 있고, 시간이 담겨 있다. 이 ‘어른’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되고, 기대하게 된다. 품격 있는 어른의 음악을 많은 이가 함께 만들었다. 귀한 존재다. 귀한 앨범이다.
[김학선 / 대중음악평론가]
정미조 ‘75’
1. 통영 (feat. 손태진)
2. 떠나요 (feat. 유채훈)
3. 안녕 (feat. 김민석(멜로망스))
4. 너의 눈망울 (feat. 존박)
5. 노라
6. 양양
7. 엄마의 봄 (feat. 이효리)
8. 살아있는가 (feat. 하림)
9. 세월 (feat. 강승원)
10. 아하, 봄
11. 집으로
12. 엄마의 봄 (Piano ver.)
1. 통영 (feat. 손태진)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Vocal featuring 손태진
EP 송영주
E.Guitar 오진원
Soprano saxophone 손성제
Fretless Bass 김현규
Drums 김형균
Percussion 손원진
2. 떠나요 (feat. 유채훈)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Vocal featuring 유채훈
Keyboards & midi programming 손성제
E.Bass 김현규
Drums 김형균
Percussion 손원진
3. 안녕 (feat. 김민석(멜로망스))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Vocal featuring 김민석
Keyboards 손성제
E.Bass 김현규
Drums 김형균
Trumpet & flugelhorn 한동호
Strings 육나겸, 이신행, 이영현, 김민진, 서예슬, 노소희, 서성은, 백현경
Midi programming 박현준
4. 너의 눈망울 (feat. 존박)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Vocal featuring 존박
Keyboards & midi programming 손성제
E.Guitar 오진원
E.Bass 김현규
Drums 김형균
5. 노라
작곡 작사 이규호
Piano 송영주
Contrabass 김현규
Drums 김형균
Trumpet 한동호
Strings 육나겸, 이신행, 이영현, 김민진, 서예슬, 노소희, 서성은, 백현경
Midi programming 박현준
6. 양양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Piano 송영주
E.Guitar 오진원
Contrabass 김현규
Drums 김형균
Percussion 손원진
7. 엄마의 봄 (feat. 이효리)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Vocal featuring 이효리
A.Guitar 이상순
Strings 융스트링
8. 살아있는가 (feat. 하림)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Vocal featuring 하림
Piano 송영주
Keyboard & tenor saxophone 손성제
A.Guitar 오진원
Contrabass 김현규
Drums 김형균
Percussion 손원진
9. 세월 (feat. 강승원)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Vocal featuring 강승원
Piano 송영주
EP 손성제
Contrabass 김현규
Drums 김형균
10. 아하, 봄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Piano 유승호
Keyboard & midi programming 손성제
Contrabass 김현규
Drums 김형균
11. 집으로
작곡 유승호, 작사 이주엽
Accordion 유승호
Strings 육나겸, 이신행, 이영현, 김민진, 서예슬, 노소희, 서성은, 백현경
Midi programming 박현준
12. 엄마의 봄 (Piano ver.)
작곡 손성제, 작사 이주엽
Piano 송영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