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경 '포크' 진영이 양극화되었다는 점은 여러 번 지적된 바 있다. 일부는 대중매체를 통해 새로운 대중연예(이 말은 결코 '나쁜' 뜻이 아니다!)로 정착해 가고 있었고, 다른 일부는 '언더그라운드'를 고집하고 있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당시에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TV 쇼나 생음악 살롱 등 주류 음악인들의 무대를 거부하는 지향을 가진 '아웃사이더'형의 인물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명동의 무대를 예로 들어보면 오비스 캐빈과 쉘부르 등이 이미 스타가 된 포크 가수들의 무대였다면 내쉬빌과 디쉐네 등은 이들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무대였다. 이런 현상은 단지 음악인들의 '마음'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연주하는 사운드에서도 드러난다.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등장한 포크가 '일렉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