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식지 않는 거장의 음악 열정, 그 끝은 어디인가?
<정악대금으로 연주한 이생강 명인의 원형 대금산조 음반>
글: 국악 평론가 / 김문성
정악대금은 주로 궁중음악이나 양반들의 풍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만든 악기로 다른 악기와의 합주를 위해 만들어졌다. 관이 길게 되어 있는 것도 다른 악기와의 음정을 고려한 이유이다. 정악대는 취구가 작아서 농음이 어렵고, 지공이 넓어서 다루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호흡에도 어려움이 있다. 산조대 같은 꺾기나 깊은 농음, 다루치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반면 산조대금은 대금산조 독주를 위해 만들어진 악기이다. 다양하고, 화려한 가락이 많아 손동작을 원활하게 하려고 정악대금보다 짧게 만들어져 손 움직임을 편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정악 대에 비해 다양한 시김새를 넣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산조대금이나 정악대금은 지공 수는 같지만 크기와 음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예전에는 산조대금은 6 관청 임종을 C로 정악 대금은 Bb 을로 장2도를 이루었으나 요즘에는 산조대금은 C#, 정악대금은 B의 장 2도로 불리기도 한다.
원래 대금산조는 산조가 정립되던 시절까지도 악기개량이 이뤄지지 않아 정악대로 연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악대산조가 자취를 감춘 것은 한주환이 산조대 개량을 통해 산조를 연주하면서부터라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이후. 모든 산조는 산조대에 맞게 음색, 음고가 정립되고 운지법, 호흡 등 연주의 기교도 역시 산조대에 맞게 변화하였다.
따라서 호흡에서 오는 문제, 운지법에서 오는 문제, 음색과 음고에서 오는 문제 등이 선결되지 않는 한, 정악대로 산조를 연주하는 것은 이제는 상식의 판을 깨는 그래서 조금은 무모한 도전으로 비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위험부담을 안고 연주할 연주자는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생강이 연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역의 존중일 수도 있지만, 완성된 음색의 전도(顚倒)가 산조를 망칠 수도 있다는 부담감과 불편함이 무엇보다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생강의 정악대 산조는 오히려 그러한 편견을 과감히 깨뜨리고 복고(復古)의 나선(螺線)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만나고 있다. 산조 그 자체가 기존의 음악 틀을 과감히 깨트리고 나온 19세기 창작물임을 고려할 때, 그리고 악기개량이 이뤄지지 않은 얼마 동안은 정악대로 산조를 연주했음을 고려하면, 그리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지만 이미 산조대에 의한 산조연주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형성된 오랜 편견과 고정관념과는 상당히 괴리가 있는 것이어서 '잡음'은 예견될 수밖에 없고, 그러한 심리적 불편함에 한 번쯤은 부딪힐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민간 음악의 본성은 고이는 게 아니라 흐르는 것이고 그 흐름이 쉽도록 길을 잘 터주는 것이 이생강 명인이 일생동안 벌여온 '수고'였음을 이 음반을 통해서 확실히 각인 받게 된다.
이 음반이 산조 악장 일부를 정악대로 옮기거나 흉내 내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산조 한바탕을 모두 소화해냈다는 점에서 특히 음악사에 기록될 만하다. 이생강이 정악대로 단지 음고만 달리해 산조대의 산조를 흉내 낸 것인지 아니면 투철한 도전정신이 빚어낸 작품인지는 진양 한 악장만 들어도 금방 확인하게 된다.
단순히 기계적 주법에 의지한 연주라면 그리고 음악적 고민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연주라면 한 악장이 아니라 진양조 한 장단도 못가 부아가 치밀겠지만 이생강의 정악대 산조는 산조가 얼마나 훌륭한 음악인지, 그리고 그 내면에 얼마나 많은 표츨 방식을 내재해 왔는지를 깨닫게 하는 방편임을 금방 눈치채게 된다. 그 옛날 박종기가 불던 우조가락을 접한 요즘 실기인들이 심심하다고 당황하면서도 마음속 한쪽에 '청성곡'을 듣는 것 같은 깊은 멋스러움에 매료되는 이치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신기의 뻐꾸기 소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원시적인 궁금증은 네댓 장단만 진행하면 금방 잊히게 되고, 정악대 만이 가진 묵직하면서도 청아한 소리 속에 실리는 산조의 새로운 느낌 그 자체에 푹 빠지는 것도 장점이거니와 산조대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묵직한 성음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며 들을 수 있는 독특한 경험도 이 음반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산조라는 고정관념에 묻혀 산조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할 기회를 상실할 뻔한 위기를 극복하고 산조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이생강의 일련의 작업들.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대중들의 음악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다양한 도전들. 그의 산조는 심방곡이 대세이던 시대에 산조를 타던 '간 큰' 명인들처럼 이미 한 시대를 앞서서 전통음악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선구안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규모 큰 시도가 생뚱맞은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존재했던 옛것에서 비롯된 '溫故知新(온고지신)'의 결과물임을 주지시키고자 한다.
박종기의 탁월한 예술성을 한주환이 극복하며 대금산조의 중시조로 등극했듯이 한주환의 천재성을 극복한 유일한 잽이가 이생강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의 정악대 대금산조 한바탕이 지니는 의의는 비로소 21세기 한국음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시작점'이 도래했다는 것으로, 구체화한 담론을 음악계에 공격적으로 던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것이다.
□ 수록곡
1. 진양조 24:10
2. 중모리 15:04
3. 중중모리.굿거리.시나위 13:05
4. 자진모리 11:03 총 63:23
* 정악대금 :이생강
* 장고: 이관웅
* 녹음: 훈스튜디오 2007.11.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