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의 노래’
-도시정비사업(재개발)을 앞둔 장소를 기억하기 위한, 사라질 것들에 작별 인사를 건네는 노래 두 곡
*2020 도시기억프로젝트 [소제]
대전 소제동의 공사 중인 도로를 걸었다. 산처럼 쌓인 버려진 냉장고와 테레비를 보았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쓸 데는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 많은 나무는 다 어디로 갈까 궁금해졌다. 비가 내렸다. 수없이 많은 다른 날들처럼 비가 내렸다.
도시는 지워진다. 인간이 만든 수많은 다른 것들처럼, 칠하고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너무 당연해서 질문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지워지는 것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기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한 줌쯤은 있는 것 같다.
“... 그러나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도시와 기억 3’ 중
보이지 않을 도시, 소제동을 이리저리 곱씹으며 걸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 지는 잘 몰랐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도시와 기억’ 챕터 5개를 손으로 베껴 써 보았다.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제동을 다시 걸었고, 사라질 장소를 미리 애도하며 노래를 불렀다. 과거로부터의 단절,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단절을 어쩔 수 없어서 인류는 그 사이를 이야기로, 노래로, 춤으로 채워오지 않았던가.
마침 누운 햇살이 따뜻했고 바닥에 툭툭 떨어진 홍시 색이랑 같아서 단내를 맡으며 담장 위의 고양이처럼 느리게 느리게 걸었다. 마당에 감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제사상에 올리는 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것처럼 당연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지나가는 것들은 지나간다. 떠나가는 것들은 떠나간다. 아직은 마당에 남아있는, 그러나 곧 사라질 감나무의 기억을 제멋대로 상상해서 노래를 지었다. ‘안녕, 안녕’ 그렇게 인사라도 대신 전해주고 싶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