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악의 시작과 중심에 서있는 살아있는 전설 강호중. 그가 한국 재즈의 역사에 파란을 일으켰던 천재 피아니스트 이영경과 만나 음반을 발표합니다.
37년 전인 1985년 6월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MBC-FM 청소년음악회 무대에 패기만만한 20대 젊은 국악연주가들이 올랐습니다. 이날 가야금과 피리, 소금, 대금 등 전통 악기와 기타, 신시사이저 등 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이들의 ‘신국악’ 연주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두달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쏟으면서 구전민요 ‘꽃분네야’와 ‘쑥대머리’, ‘어디로 갈거나’ 등의 국악가요를 애절한 목소리로 들려준 강호중의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타자 전국에서 문의전화가 빗발쳤습니다. 바로 80년대 국악 대중화의 한 획을 그었던 창작국악 연주그룹 ‘슬기둥’의 첫 데뷔 무대였습니다. 그들은 전통 국악기 편성에 신디사이저(Synthesizer)와 기타(Guitar)를 도입하는 파격적인 행보로 인해 한때 ‘국악계의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탄탄한 연주실력과 창작성을 바탕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이 조화된 그들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는 곧 국악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들의 대표곡인 ‘산도깨비’, ‘소금장수’ 등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강호중은 전통과 현대, 안과 밖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제한받지 않는 우리 음악의 세계화 가능성을 타진해 왔습니다. 그가 이끄는 신국악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여기 한국이 배출한 천재적인 재즈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이영경은 서울대 음대에서 촉망받던 피아노 전공생 이었으나 교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즈로 전향한 이단아적 존재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재즈를 독학으로 수학해 국내 재즈계에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오랜 시간의 음악적 행보에서 스스로의 음악에 한국적인 가락과 색채를 담으려는 노력을 놓지 않았습니다.
클래식에 바탕한 음악 해석력이 뛰어난 그는 91년 히노 테루마사와 오사카에서 협연하는 등 정통 모던재즈 음악으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94년 가수 박광현과 그룹 '데이지'를 만들어 돌연 가요계로 진출했고 2년 뒤엔 힙합댄스그룹 '버트헤드' 를 결성하는 등 장르를 초월한 돌출적인 행보를 걸어왔습니다. 이영경은 독보적인 피아노 연주 테크닉과 즉흥 연주 능력을 바탕으로 20년 넘게 정통 재즈부터 아방가르드한 스타일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연주를 구사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시티팝 열풍으로 젊은 리스너들에게 90년대 시티팝의 선구자로도 재평가되는 중입니다.
한국 재즈의 살아있는 증거이자 우리 문화계의 작은 그릇이 담아내지 못한 천재 피아니스트, 그가 단 한번도 국악계의 중심을 벗어난 적이 없는 거장, 강호중과 만났습니다.
산뜻함과 비장함을 넘나드는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국악기와 서양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며 곡 각각의 분위기를 바꾸고 새로운 무드를 만들어냅니다. 호소하는 듯 애절한 목소리로 우리의 가슴을 뒤흔듭니다. 저 멀리 바다 건너부터 여기 한국까지의 정서를 관통하는, 또 저 멀리 1980년대부터 지금 2020년대까지의 흐름을 아우르는 음악입니다. 누군가는 파격적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신비하다고 말하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명인들의 비밀스런 연주가 담겨 있습니다.
☐ 음반 해설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인가. 강호중의 음반은 1980년대 중반부터 슬기둥의 노래를 들어왔던 이들과 어느새 그의 부재조차 잊어버렸던 이들에게 쌓인 시간의 더께를 털어낸다. 전통주점과 전통찻집에서, 공연장에서, 좋은 사람들이 모였던 수많은 공간에서 강호중의 목소리가 흘렀던 시간의 추억을 호출한다. 전통음악이 오늘의 자신에게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알려주고, 전통이 현재와 만나야 할 이유를 설득한 바로 그 목소리이다.
강호중은 그동안 대학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이제야 자신의 첫 음반을 내놓았다. 너무 늦은 솔로 음반임에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구성지고 질박하며 튼실하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살아왔다는 증거다. 타악그룹 공명의 멤버들과 해금연주자 노은아가 함께 한 음반은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이 더해져 더욱 깊어졌다. 귀에 익은 옛 노래와 새로 쓴 노래 9곡이 정갈한 연주와 함께 펼쳐질 때, 강호중의 노래는 2022년에 자연스럽게 안착한다. 강호중의 목소리가 형형한 덕분이고, 이영경이 서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연주로 감싼 덕분이다. 허투루 나이 들지 않은 예술가는 결국 꽃을 피운다. 그 향기로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모두 물들인다.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총괄제작 : 서인형
프로듀서 : 황경하
노래, 어쿠스틱기타 : 강호중
피아노 : 이영경
콘트라베이스 : 정수민
해금 : 노은아
피리 : 박승원
대금, 소금 : 송경근
꽹과리, 양금 : 강선일
북 : 임용주
코러스 : 김유리
레코딩 : 오디오가이, 예음스튜디오, 스튜디오 놀
믹싱, 사운드디자인 : 황경하
마스터링 : 이재수 @소노리티 마스터링
사진, 영상 : 박건주
디자인 : 김성은
소품 : 송수아
제작사 : OUTLAND MUSIC, 한국스마트협동조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