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레 (adore) EP [눈을 감고 살면 낮도 꿈]
너무 많은 비유와 수식, 또 낱말들. 표현과 몸짓으로만이 드러낼 수 있음에 멀어지는 본질과 사유들. 머리를 내려친 번개를 포장함에 있어 박스 크기에 맞춰 잘려나간 그 숱한 모서리들. 손 끝과 입 끝으로 만들어낸 내 모든 창작체들이 멀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내가 나인 게 맞나요?
벼락은 구름 틈새 숨어 있다 내려왔고, 구름들은 하늘을 가리고 있다. 하늘은 세상 너머를 가리고 있고, 세상 너머는 세상 너머를 또 가리고 있다. 우주로 쏘아 올린 작은 카메라는 허공을 오랫동안 응시했고, 아주 오랫동안 응시한 나머지 허와 공 사이 무수한 우주를 만든다. 무수한 우주의 무수한 은하의 무수한 별들 중 하나에 무수한 사람 중 하나의 사람이 벼락을 들이받고 구름을 올려다본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세상 너머의 세상 너머를 올려다본다. 그 응시는 무수한 우주를 만들고 이윽고 그 무수한 우주에 오랜만에 태어난 나와 눈이 마주친다. 우린 서로 마주친지 모르지만, 분명 마주쳤을 거야.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건 세상 어디엔가 모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는 얘기야.
다시금 내 머리를 내려친 번개를 포장함에 있어 박스 크기에 맞춰 잘려나간 그 숱한 모서리들을 한데 모은다. 모서리들은 여전히 예리하고 위험하나 그 광채는 돌이킬 수 없고 누구에게 두렵지도 않다. 그 모서리들은 필요에 의해 불려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필요에 의해 붙어졌으나, 다시금 필요에 의해 쫓겨났다. 그 모서리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한 때나마 멋진 일부였던 그들이 광채를 잃은 채 희쭈구리한 모습으로 돌아다닌다. 그러나 여전히 예리하고 위험하다. 그들을 위한 너무 적은 비유와 수식, 또 낱말들. 표현과 몸짓으로는 결코 드러낼 수 없는 본질과 사유들. 끝과 끝이 닿아 만들어진 그 모든 창작체들이 멀뚱한 표정으로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나인 게 맞나요? – 아도레
(앨범 제목 “눈을 감고 살면 낮도 꿈”은 옌롄커의 소설 『캄캄한 낮, 환한 밤』 의 한 문장에서 따왔음을 밝힙니다.) .... ....